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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걷기 (0) 2021/08/17 PM 03:21


 나는 평소에 거의 걷지 않는다. 평소의 동선에 전체에 걸쳐 걸음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다. 평소 출근하는 날에 걸음을 다 합해 봐야 이천 보, 많아야 삼천 보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걸을 일이 없어진 데에는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하게 된 것이 컸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할 때엔 좋으나 싫으나 꽤 걸었다. 정확히 세 본 것은 아니지만 출퇴근을 위해서만도 오륙 천 보 이상은 걷지 않았을까 싶다. 완전히 목적 있는 걸음. 출퇴근 혹은 어디를 가기 위한 목적 있는 걸음.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걷기는 운동이라고 하기도 애매할 만큼 지나치게 정적인 것이라,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걷기는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었고, 이런저런 운동의 어떤 부분부분(자전거를 빠르게 타며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라던가)을 좋아하지만 걷기는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자전거도 못 탄 지 2년 가까이 돼 간다. 한번 타면 꽤 격렬하게 타는 편인데, 마스크를 쓰고 그렇게 탈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타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는 여기저기에 참 많다.


 평소 걷기라고 해 봐야 집에서 바로 앞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회사 건물 주차장에서 사무실 내 자리까지.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까지의 왕복. 사무실 내 자리에서 주차장의 내 차까지, 다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 후 차에서 집까지. 중간중간 화장실이나 탕비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는 핑계도 댈 것 없이, 만 보를 걸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지금은 걷는 행동 차제가 의식적인 행동으로 바뀌었다.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행동. 일상생활 안에서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서 걸음 수를 늘린다. 그래봐야 3층인 집까지는 손에 무거운 걸 들고 있지 않는 이상 걸어 다니는 것 정도, 그 외엔 출근시와 점심 식사 후 하루 두 번 7층인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했으나 더위 핑계로 그마저도 안 한 지 오래다. 내 주변에 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 땀내 폴폴 풍기며 앉아 있을 순 없으니. 3보 이상 자차이동… 실제로 직선거리 이백 미터가 남짓의 우체국에 등기 보내러 갈 때에도 차를 타고 간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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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의 모토. 3보이상 자차이동. 

 

 그러던 와중 요즘 읽는 책의 한 문단에서 걷는 것에 대해 고찰한 부분을 읽었다(철학 책이다). 걷는 것을 굉장히 수준 높은 행동이라고 이야기하며 걷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톤이었는데, 반신반의하며 연휴의 가운데 날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아들과 더워지기 전에 짧게 함께 걸어봤다. 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목적 없는 걷기. 아들과 함께 뭔가를 해서 좋은 점은 있었지만, 그리 좋은 줄은 모르겠다…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에 나온 그 사람은 혼자 걸었다는 데에 생각이 닿는다. 나도 혼자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운 시간 내에 꼭.


 짧은 연휴가 끝나는 월요일의 저녁. 그리 고단하지는 않았던 일정이 끝나고 아들 옆에서 그 책의 후반부를(읽던 부분은 걷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읽다가 문득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같이 갈래? 하고 떠보듯 묻는 말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와서 잠시 걱정했지만 위기의 순간엔 바퀴벌레급 (최대 340이라고 함 / 측정 방식을 신뢰할 순 없음) 머리 회전을 발휘하는 내 머리가 순간적으로 답을 찾으려 짱구를 굴려본다. 걷고 들어오면 샤워를 다시 해야 한다는 말로 목적을 성취하는데 성공한다. 저 멀리서 와이프가 같이 갈까? 하는 공격이 다시 들어오지만 아들에게 그럼 혼자 잘래? 하는 말로 역시 2차 공격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나는 오늘 혼자 걷고 싶다.


 나온 시각은 밤 8시 반. 아직은 여전히 더운 날씨지만 말복이 지나기 전의 무덥던 한여름보다는, 내리쬐던 해가 많이 뜨겁던 한낮보다는 많이 선선해졌다. 간간이 선선하게 불던 바람이 내 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 준다. 내 몸이 생각보다 금방 끈적해져서 그런 상쾌함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어쨌든 처음 몇 분은 상쾌하다고 느꼈다. 꽤 오랜만에 하는 어떠한 목적도 없는 걷기. 주변에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나만의 시간. 본격적인 산책로에 들어서며 사람은 점점 많아지지만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잠시 의식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본격적인 걷기 루트를 탈만한 행색은 아니었다. 문화인이라면 양말을 신고 크룩스를 신는 해괴한 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맨발이더라도 크룩스를 신고 그런 본격적인 산책로에 나오진 않을 텐데 나는 맨발로 크룩스를 쓰레빠처럼 신고 산책로에 나갔고, 운동과는 맞지 않는 굉장히 큰 헤드폰을 끼고 음악에 맞춰 가끔 손을 까딱거리고 손가락을 작게 튕기기도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누구도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도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똑같고, 사무실에서도 나와 같은 공간에는 보통 사람이 없지만, 그럼 종류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사적인 공간 안에 들어감으로써 누군가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공개되어 역으로 존재를 감추는 방식으로 숨음으로써 생기는 그런 느낌인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해 봤지만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 어떤 느낌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되물으며 계속 걷는다. 걸을수록, 산책로의 중앙으로 갈 수록 주변에 사람은 점점 많아진다. 일부러 조금 느리게 걷고 있었는데, 굉장히 조그마한 여성분이 다이어트를 위해 나왔는지 앞뒤로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나를 앞질러 지나간다. 쓸데없는 괜한 승부욕이 일어난다. 저분에게서 멀어지지만 말자며.


 예전엔 걸음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 이렇게 걷지 않는 생활을 몇 년째 하다 보니 나보다 이십 센티는 작아 보이는 저분에게 뒤처지지 않고 걷는 것조차 힘이 든다. 편한 걸음에서 속도를 조금 내자마자 발목에서 종아리 사이의 근육들이 팽팽히 당겨지며 문자 그대로 내 발목을 잡는 것이 느껴진다. 이주 째 내 등에 꽤 강렬하게 존재하는 통증도 걸음을 강하게 걸을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누가 내 등을 꽤 강하게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발등과 크룩스가 맞닿는 부분이 마찰되며 물집 잡힐 것 같은 그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쓰레빠처럼 신던 신발을 샌들처럼 되도록 바꿔 신는다. 한결 낫다. 그렇게 바꿔 신는 사이에 이미 조금씩 멀어지던 그분은 이미 멀리 가버려 거의 점처럼 작게 보인다. 레이싱 게임할 때 자주 하던 말인데. 너는 십 초면 쩜이야… 다시 나만의 속도로 돌아온다. 다리의 근육이 내 발목을 잡지도 않고, 신발이 나를 불편하게도 하지 않는 속도로. 여전히 걷는 것이 기분 좋다. 평소라면 기분 좋을 것이 없는 이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혼자 걷는다는 것이 왜 좋은 것인지 내 머릿속을 뒤집어보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떠올랐지만 대부분의 생각들이 이내 사라진다.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더듬어본다. 꽤 만족스럽게 읽고 있는 책이라 책 안에 내 질문에 맞는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이미 며칠 전에 읽은 것이라 책에 있는 텍스트가 그대로 떠오르진 않는다. 텍스트가 아니라 느낌을, 어떤 톤으로 쓰여있는지 헤집다가 떠올린다. 사유, 책에서는 걷는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라 좋다고 했었다. 나도 그런 감정을 받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 시간이라 이것이 좋다. 나는 걷는 동안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누구를 상대하는 내가 아니다. 어떤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나를 규제하는 내가 없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척을 해야 하는 내가 없다.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을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할 때 가면을 써야 하는 나도 없고, 기준에 미달하는 동료 직원들을 성질대로 질책하고 싶지만 평판을 위해 참아야 하는 나도 없다. 내 눈치를 보는 누군가도 없고 봐야 하는 누군가도 없다. 그 누구도 아닌 채로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걷는다. 


 안전을 위해서도 신경 쓸 것이 많지 않다. 차를 운전할 때엔 모든 신경을 주위에 쓰고, 신호를 보고 차선을 바꾸고 해야 하고, 자전거도 마찬가지지만 걷는 것은 그렇지 않다.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호등조차 없는 그런 산책로에 들어가고 나면, 주변 어느 것도 신경 쓸 것이 없다. 내가 거슬리는 사람은 나를 피해서 걸어갈 것이고, 주변에 공간은 많다. 걷는 동안 나는 주변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이 주변에 있는 사물에만 내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주변을 신경 쓰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걷는 동안의 나는 그냥 ‘나’이면 된다. 


 내가 평소에 있는 모든 공간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집에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이어야 하고, 아내에겐 그리 나쁘지는 않은 동거인이어야 하며, 아들에겐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좋은 아빠여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인 직장, 회사의 상사들에겐 기대할만한 직원이어야 하며 동료 직원들에겐 믿고 따를만한 상사여야 한다. 거래처에겐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어야 하며 하다못해 차 안에서도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평소에 있는 모든 공간에서, 나는 누군가가 기대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내 생각이 나를 규제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 안 된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잠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을 걸으면서 굉장히 즐거운 해방감을 느낀다. 왕복한 시간을 더해도 50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시간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내가 살던 익숙한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 내가 나이기 위해 세상과 다투는 시간을 벗어나 걷는 동안 나는 온전히 혼자다. 그런 혼자인 시간을 천천히 즐긴다. 내가 원하는 속도로, 때론 빠르게, 때론 천천히. 앞으로도 종종 혼자 걷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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