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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변화하는 옷차림에 대하여. (2) 2021/09/27 PM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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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는 옥스포드야. 브로그는 안돼.

 

 

 예전에... 아주 오래전. 대략 십년하고도 훨씬 전.. 사회 초년생티를 아직 다 벗지도 못했던 시절에 나는 부동산 쪽에 종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그쪽 필드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동네에 있는 그런 부동산도 한때 굉장히 시끄러웠던 기획 부동산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업체들 대상으로 적절한 입점 매장을 컨설팅하는 그런 일이라고 보면 되겠다. 나랑 잘 맞는 그런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꽤 많은 부분에서 그리 신통하지 못했었다. 여튼 그때 사회적으로 굉장히 높은 분들을 꽤 많이 알고 지냈었다. 그분들의 사회적 지위처럼, 나이도 많은, 내가 그 핏덩이 같은 시절에는 여간해서는 알 수도 없던 그런 분들.


 그분들이 나랑 어떤 형태든 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들이 나에게 어떤 관심이 있다거나, 업무적으로 큰 접점이 있다던가 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그때 당시 모시던 실장님(여)의 손님들이었고, 실장님도 주로 업무적으로 만나는 분들이었으나 실장님에게 개인적인 호감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 분들도 몇 분 계셨다. 내가 그때 스물대여섯 정도였을 시절이고, 정확한 나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 실장님은 사십 언저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장님은 여러모로 굉장히 매력적인 분이셨다. 결혼은 시기를 놓쳐 과년하셨지만(아직도 못 하신 걸로 알고 있음), 얼굴도 예쁜 편이셨고 키는 작지만 가슴이 꽤 큰 편이셨는데 본인의 장점을 잘 부각시킬 수 있는 옷을 즐겨 입으셨다. 성격 또한 아주 발랄한 분이셨는데 본인의 다양한 매력을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잘 활용할 줄 아는 분이셨다. 나와 어떤 개인적인 관계였다면 엄청 싫을것 같은 부분이 있었지만 어른 여자는 이런 거구나... 하는 표본이라고 느껴질 정도. 그쪽 업계를 뜰 때까지 모시는 동안 해드린건 별로 없고, 해 주신 것은, 배운것은 많다.


 정확히 얼마큼 오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년, 2년 반 정도 그분 밑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나를 이용해 실장님과 어떤 선을 만들어보려는 분들이 몇몇 분 계셨었다. 그중에는 실장님과 나이가 비슷한 분들도 많았지만 실장님은 그런 분들과의 호감을 업무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아는 분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호감을 표시하는 분들 중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분들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더 많았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들의 그런 호감들 덕분에 나는 덤으로 비싼 밥도 많이 얻어먹고, 가끔 용돈도 받으며 즐겁게 지냈던 적이 있다.


 그런 분들 중에도 꽤 여러 번 뵌, 비교적 많이 가까웠던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나이는 듣지 못해 추측만 할 뿐이지만 얼추 오십 대 중반 정도 되시는 분이 계셨다. 평균보다 큰 키에 살이 찐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풍채가 좋은 분이셨는데, 술을 좋아하시는지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얼굴이 아주 많이 붉은 색이셨다. 평소 사용하시는 단어나 나를 대하시는 자세나 말투 등에서 어른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본받을만한 점이 많은 분이셨다, 그분은 꽤 큰 대기업의 임원분이셨는데, 옆에서 대충 보기에도 실장님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 했다. 나와 실장님에게 하시는 게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실장님을 대하실 때엔 유독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상반된 반응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이 결혼을 하셨는지 등의 여부는 모르겠다. 알고 싶지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나 알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괜히 물어봐서 좋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둘 중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었다.


 꽤 자주 만나던 분이고 만날 때마다 비싼 밥도 사 주셨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호텔에서 밥 먹은것을 모두 더해도 그분과 밥 먹은게 더 많다. 간 호텔들도 어정쩡한 곳이 아니라 다 좋은 호텔들. 아마도 실장님께 뭐 사다 드리며 덤으로 사신 것이었겠지만 사무실에도 이거저거 가져다주시곤 하셨었는데,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실장님은 그분에게 어떤 호감 비슷한 것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것 같다. 호감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눈웃음이나 미소 등을 보여주긴 했으나 내가 보기엔 영업용 미소인 것이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제3자인 내게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어떤 한 여자에게 반한 남자가 그것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과의 식사 자리에 내가 동석할 이유가 딱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를 동석시킨 이유가 어느 정도 선을 그르여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일적으로는 충분히 도움이 되는 분이니 관계 유지는 해야겠지만, 개인적인 호감을 직접적으로 표현 받는 그런 불편한 상황은 가급적 피하고 싶으신 것이었을거다.


 내가 그분을 뵌 기간은 대략 일 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항상 다림질이 잘 된 풀 정장, 베스트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으시던 분이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하루는 운동화에 청바지, 피케티 차림으로 약속도 없이 사무실에 불쑥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항상 잘 갖춰 입으시던 분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일까, 나는 그 차림이 굉장히 어색했었다. 나는 실제 두 분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겉보기에도 나이 차이가 꽤 나 보였었는데, 그렇게 찾아오신 건 아마 실장님께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고 싶으신 마음에서 그렇게 입고 오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러나 실장님의 그... 다소 당황스러웠던 얼굴은 불쑥 찾아오신 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패션 센스에 대해서 누군가를 지적질할 상황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분의 얼굴 톤과 옷이 굉장히 대비되어... 어울린다고는 거짓말로도 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은 그런 본인의 변화된 스타일이 마음에 드셨는지 옷차림에 대해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웃으며 이야기를 하시며 다음에 나에게도 한 벌 사주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꽤 강하게 사양했었는데, 안 사 주셔서 감사할 따름.


 그 이후에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시곤 했다. 구두를 평소와 다른 형태의 것을 신으신다거나, 베스트와 정장 재킷 대신 가디건만을 걸치고 오신다거나. 그런데 그 변화의 방향성들이 본인이 너무 젊어 보이려는... 그런 노력이 눈에 보이는 시도들이었다. 내가 어떤 선입견에 갇혀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분의 '갖춰 입은'모습을 너무 좋게 본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분의 그런 변화가 싫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시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시도들은 점점 과감해졌다. 하루는 정장에 넥타이가 없이 뭐 이상한... 목걸이 비슷한 걸 매고 오셨는데 굉장히 흡족해하면서 내게 길게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그분의 흡족한 얼굴이나 말투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비주얼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차라리 안 매면 안 맸지 저게 대체 무슨 그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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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이 풀 정장에 매고 오신 그것...


(이름도 지금 찾아보면서 알았지만) 슬링 타이 자체를 까는 것이 아니다. 나랑은 평생 상관없을 아이템이지만 슬링 타이도 멋들어지게 연출하면 어울릴 수 있겠지. 다만 풀 정장에... 베스트까지 갖춰 입으시고는 젊어 보이려는 열망으로 똘똘뭉쳐서 전체적인 컨셉에 맞지 않는 저런 악세서리를 하고 계시니... 거기쯤 가서는 아니 정말 왜 이러시지? 하는 생각뿐. 멋지지 않냐? 이러시는데 그냥 건성으로 네 네... 멋지네요... 밖에 할 수 없던 젊은 시절의 나.... 지금의 나라면 다른 말씀을 드렸을 텐데... 상무님 그거는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저한테 잘해주셨었는데 솔직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나도, 최근에 옷차람이 꽤 많이 달라지고 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대략 06년 정도서부터 항상 풀 정장을 입는 일만 해왔는데 최근에 머리도 좀 커지고 사무실에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나서부터 사무실에 가는 차림도 조금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안이라는 소리도 꽤 들었고, 비즈니스적으로 사람 만나다 보면 어려 보이는 것보다는 적당히 있어 보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으니 일부러라도 꽤 차려입고 다녔는데, 최근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래 봐야 큰 변화는 아니고, 수트 상의 대신 가디건을 걸친다거나 가끔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거나 하는 변화. 그런데 오늘은 왠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싶었다. 베이지색 바지는 매년 여름에만 입는데, 이 바지는 특히 반팔 셔츠(혹은 긴팔 셔츠를 접어서 입는)를 입을 때에만 입는다. 그런데 이제 10월이 코앞인데, 반팔 셔츠를 입기엔 날이 추울 것 같은데도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싶었다. 그러나 내 옷장에 베이지색 바지와 매치되는 색의 수트 상의는 없다.


짙은 색의 수트는 위아래로 몇 벌이나 있지만 왠지 저것들 중 하나를 입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여름처럼 셔츠만 입기도 뭔가 애매할 것 같은 그런 날... 그리 넓지도, 걸려있는 옷이 많지도 않은 내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출근할 때엔 한 번도 걸쳐보지 않은 어두운 감색(곤색)계열의 여름용 블레이저를 셔츠 위에 걸쳤다. 원래는 외출하는 날에, 갖춰 입어야 할 이유가 있는 날에만 위에 걸치는 옷인데(ex. 결혼식) 처음으로 출근할 때 입어 봤다. 보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차림일 수 있겠지만 내 스스로 내가 걸친 옷의 촉감이, 거울에 비친 내가, 바지와 상의 색의 배치가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도 왠지 만족스럽다. 조금 젊어진 느낌. 틀을 깼다는 느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나이 들었음을 반증한다. 젊을 때엔 젊어지고 싶다는 생각 안 했거든...


그렇게 비즈니스 복장이라기엔 조금 언밸런스하게, 편하게 입고 출근했는데 오늘 마침 처음 뵙는 분들이 사무실에 방문하시겠단다. 내가 수요일날 뵙는거 어떠시냐 했을 때 금요일을 저쪽에서 다시 말씀하셨었는데, 재기위해 잠깐 머뭇거리는 척을 했더니 당장 방문을 하시겠다는 것. 이런 갑작스러운 미팅은 꼭 복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날에 생긴다.차나 사무실에 수트를 한 벌 가져다 놓던가 해야겠다. 가끔 이렇게 옷을 입으며 약간의 해방감과 자유로움, 젊어졌다는 나름의 만족을 포기하기도 싫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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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이유가 있지만
매번 똑같이 입는 거는 지겹죠

다만 아침잠이 많아서 옷고르는 시간도 아깝다보니 회사는 정장을 애용합니다ㅎ

츄푸덕♬♪    친구신청

슬링 타이라니 세상에 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진짜 잘 어울리려면, 영국의 귀족 학교 자제들이 교복 입고 착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ㅋㅋㅋㅋㅋ 아이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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