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비교적 최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역시 내 핏속에 진하게 흐르는 반골 기질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접하지 않았던 것 처럼, 이 작가의 책도 반쯤은 고의적으로, 반쯤은 접할 기회가 없다는 핑계로 일부터 눈을 돌려왔다. 일본 작가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인데, 히가시노게이고 또한 작년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으니, 둘 다 접하는 시점이 많이 늦었다.
이 작가는 작품 외적인 내용으로도 꽤 유명한데 일본의 극우주의나 과거사들을 잘못됐다고 꽤 이야기 하는 편. 일본의 우익들이 안 좋아할만한 발언들을 꽤 여럿 한 전적이 있다. 아마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매할 시점이었을거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책의 발매 시점 즈음에 했던 발언들을 보고 오호…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책을 사 보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 그냥 저런 말 하면 책 판매에 그리 도움이 안 될 텐데…? 하는 정도. 물론, 이 분은 책 판매량을 걱정할만한 수준 자체가 아닐 거다. 우리나라에서만 지난 10년간 350만권… 에서 400만권이 판매됐을거라 추산한다고 하니까. 작품활동을 하면서 판매 부수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지…
중고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정말 흥미롭기 짝이 없는 제목일 수 없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제목은 성적인 제목 외에 가능할리가 없다. ‘여자없는 남자들’이라니. 나는 결혼했지만 왠지 너무나 공감이 가는 제목이다. 여자없는 남자들… 책을 집기 전에는 일본에 굉장히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있는 초식남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찌질한 남자들의 찌질한 이야기. 거기까지 생각이 닿진 않았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선 어쩌면 히키코모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상대적 위안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들의 모음인데, 첫 이야기부터 나의 그런 알량한 기대감을 무참히 부숴버린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리 크게 성공했다고는 어렵지만, 어쨌든간에 개인적으로 기사까지 쓸 수 있는 상황의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야기들은 각각의 주인공들의 상황에 맞게, 남자들이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답게 시종일관 굉장히 건조한, 그러나 읽기 편한 문체로 쓰여져있다. 다양한 이야기에 다양한 상황,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어떤 이야기든지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는 나를 대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더 몰입하게 되는 사람도 있어 그 부분은 더 즐겁게 읽었다. 어떤 찌찔한 이야기보다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 상실 후의 이야기들… 그러고보니 이 작가가 상실의 시대도 쓰지 않았었나. 언젠가는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이지만, 애들이 없는 일요일 오전 카페에 혼자 앉아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만에 다 읽은 듯 하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나의 짧은 방학은 이제 끝났다. 나는 이렇게 짧은 방학을, 휴가를 상실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꽤 만족스럽기도, 여러모로 아쉽기도 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