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발췌
………바닷가재는 바다 깊은 곳에서 서식한다. 바닷다재의 본거지 위에서 다른 바다생물들의 학살과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런 혼돈의 부산물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바닷가재는 자기 영역 안에서 먹잇감을 사냥하고, 먹을만한 부스러기를 찾아 주변을 뒤적거린다. 바닷가재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 수렵과 채집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 바닷가재에게도 인간만큼이나 안락한 보금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다. 안전한 보금자리는 적고 그런 곳을 원하는 바닷가재는 많기 때문이다. 만약 바다 밑바닥에 사는 바닷가재 두 마리가 같은 시작에 같은 영역을 차지하고 같은 곳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 바닷가재 수백 마리가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좁은 곳에서 얼마 안 되는 부스러기를 두고 다퉈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닷가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이런 문제에 부닥친다. 봄에 북쪽으로 날아오는 작은 새들도 치열하게 영역 다툼을 벌인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아름답고 평화롭게 들리지만, 사실은 ‘이 영역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사방에 알리는 위협의 함성이다. 맑고 고운 소리로 자신의 주권을 강력히 주장하는 작은 전사인 것이다<후략>
이런 문제는 비단 바닷가재나 작은 새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보금자리를 위한 싸움에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동물의 세계, 자연의 세계에서는 좋은 보금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번식과 생존에서 모두 탈락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지만, 다행히 인간 세계의 패자들에게는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어떤 개체나 이 싸움의 승자 쪽에 있길 바라겠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마도 앞으로도 당분간은 확실히 패자의 쪽에 있다. 이 싸움에 한해서는.
매매 7억 5천만 원. 전세 4억 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시세다. 나쁘지 않은 집이다. 이리저리 가기 위한 교통도 편리하고 출퇴근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주변에 편의시설도 부족하지 않게 있다. 뭘 하고 싶든 간에 반경 5백 미터 안에서 하고 싶은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병원도, 쇼핑도 가능하다. 차로 10분, 15분 정도 거리에 아울렛, 이케아, 코스트코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그런 랜드마크 비슷한 것들도 있어 살기 불편하지 않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여기서 6년째 전세 2억 2천만 원에 살고 있으며 내년 2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다. 몇 개월 안 남았다. 매우 당연하겠지만 내가 들어올 시기… 처음부터 집의 시세가 이렇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대략 6년 전, 그땐 나도 집을 가지고 있었다. 바닷가재의 싸움에 비교하자면, 그리 좋은 영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 이름으로 된 나의 영역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지만 여튼 나는 그때, 내 이름으로 된 집을 팔고 지금 사는 집에 전세로 들어왔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이미 그때에도 집값이 더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대략 세배만큼 틀렸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때 2억 5천에 구매할 수 있던 집은 지금 7억 5천이 되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 향후 1~2년 안에 네 배 만큼 틀리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6년… 정확히 5년 8개월 동안 매매금액이 5억이 올랐다. 5억… 말하거나 쓰기엔 굉장히 쉽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손에 쥐기 굉장히 어려운 돈임이 분명하다. 이 집에 들어온 후로 집의 가격이 5억이 오를 동안, 내가 번 돈이 5억이 안 된다. 꽤 많이 모자란다. 상대적으로 보든, 절대적으로 보든 내가 그렇게 돈을 못 버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깔고 앉아있는 물건의 상승분 만큼도 노동 수입으로 창출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주 5일,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여 하루 열두 시간씩일 한 것보다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 한 것보다, (우리 집주인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감옥에 가 있더라도 이 집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었다. 훨씬 더 많이. 갭이 적지 않다. 흔히들 하는 말로 놀고먹었어도 집 깔고 앉아있는 게 훨씬 더 많이 벌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당연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니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집을 당연히 구매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매하지 않고 전세로 들어왔다. 이 집에 들어올 시점에 집주인이 아예 사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그때도 집값이 오를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간 부동산에 전혀 관심이 없긴 했지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이런 집값의 상승이 어떻게 가능한지 메커니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대출의 힘으로, 돈의 논리에 의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오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실제로 많이… 비일비재하게…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일반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지는 쪽에 계속 있는 것이겠지만서도, 기본적으로 어디서 나오는 돈을 베이스로 어떻게 대출을 받는 것이고, 그것을 상환은 어떻게 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예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는 정상적인 대출은 물론이고 심지어 강아지 이름으로도, 혹은 죽은 사람 앞으로도 대출을 해 줬다고 하는데 대출 관련한 다양한 부동산 대책이 시행된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의 오름세는 멈출 줄을 모르고 되레 더 가팔라지고 있다. 나는 그런 돈이 없어봐서 그런가, 대체 어디서 그 대출의 베이스가 되는 돈이 나오는지도 모르겠고, 이자와 원금을 합쳐 그 큰돈을 어떻게 갚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부동산 가격에 대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닐 수 있는 3억 원을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이자인 3프로로 대출받는다고 쳐도 한 해에 이자 관련한 금액만 1천만 원 가까이 내야 하고, 원금균등 상환 방식으로 20년 동안 갚는다고 치면 원금만 매달 125만 원씩 갚아야 한다. 이자를 더하면 매달 2백만 원 가까이 갚아야 한다. 20년 동안. 단 3억 대출에.
저게 상환이 가능한 금액인가…? 나는 이런저런 베네핏을 계산하면 조금 더 되겠지만, 대충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를 번다. 많이 번다고 하기는 조금 애매한 액수지만, 적게 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실제 소득 분위로 보면 꽤 앞쪽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월급을 가져다주고 난 후의 일은 와이프의 몫이니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하지도, 돈을 어디에 썼나 확인하거나 추궁하지도 않으니 돈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는 못하나 수입과 지출이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애 앞으로만 꽤 큰돈이 들어간다… 고만 알고 있다. 물론 내 앞으로도 입고 먹는 데에, 놀고 쓰는 데에 꽤 많은 돈이 들어갈 터다. 집을 사기 위한 베이스 자금도 물론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해준다고 해도 갚을 수가 없다. 매달 2백만 원 언저리의 추가 지출. 현실적으로 나는 그런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 답은 맞벌이… 일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으로 떠밀고 싶진 않다.
남 탓 하긴 쉽다. 남들 하는 것처럼 쉽게 정부 탓, 세상 탓하면 내 기분은 잠시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값을 지금 정부가 올렸나?라는 질문을 해보면 저렇게 남 탓, 정부 탓 하는 것은 듣는사람앞에서 하는 자위행위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한국의 집값은 되려 덜 오른 수준… 이것은 정부 탓이 아니다. 일부 정책을 잘못 쓰거나 쓰지 않은 잘못은 있겠지만 정부탓으로 이렇게까지 오른것일리는 없다. 많이들 비정상적인 과열이라고 얘기하지만 유동성이라는 시장 논리대로 움직인 것이고, 그런 흐름을 못 읽고 아예 부동산을 쳐다보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이런 사회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고 웅변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내 선택을 후회한다. 후회한다고 해서 뭔가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