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서재 한달 무료 체험이 끝나고, 이제 돈을 내고 구독하기 시작했다. 밀리의 서재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책의 양이 리디셀렉트보다 훨씬 많다는 이유 하나로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단점을 넘어 불만스러운 부분도 꽤 여러 가지 있으나 가장 큰 부분은 대체 뭔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읽고 싶은 책이 안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얘들이 나에게 추천해주는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ai시대에 맞지 않게, 아직 개인화가 덜 된 건지 뭔지 몰라도 추천목록이 근래 보기 드물게 구리다.
리디셀렉트는 제공하는 책의 양은 정말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이 나에게 제공하는 추천 목록에서 몇 권은 항상 내 호기심을 끌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있을까. 어떤 세상을 만나게 해 줄까. 이 글을 쓴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호기심을 일게 했었는데, 여기서 추천해주는 책들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책으로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책이 다 있는건 아니고, 있는 책 보다는 없는 책이 더 많지만 그렇게 읽지 않던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권이나 그런게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읽기 시작한 첫 책.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것은 너무나 편리하다.
책 제목만 보면 블러핑 잘 치는법이나 너도 될수있다 포커의 달인. 이런 느낌이지만 그런 기대를 배신하고 포커의 ㅍ자도모르던 사람이 프로 포커 플레이어가 되는 길을 죽 따라가며 겪었던 다양한 어려움과 마주치던 벽을 극복하는 법을 다룬다. 당연하게도 복권당첨에 가까운 운에 기댄 잭팟이나 큰 돈을 따는 방법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포커의 기법이나 족보등은 책의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생과 꽤 많이 닮아있는 그 여정에서, 본인이 겪었던 어려움과 실수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었다.
포커는 여러 컨텐츠에서 어찌보면 식상할 수도 있을 만큼 이미 많이 소재로 등장했다. 포커를 소재로 다루는 컨텐츠는 일일히 이름을 대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포커나 갬블링 자체가 터부시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은 강원랜드가 유일하며 현금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머니를 놓고 다투는 게임조차도 성인인증을 하고 나서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음성화된 도박판 ‘하우스’가 영화나 드라마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증권사에서 자기들을 스스로 ‘하우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등장할 수록, 포커의 이미지는 점점 좋지 않아지고, 점점 더 터부시 되면서 점점 더 음지화된다.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을 없애기 위한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차라리 이런 것들은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그냥 순간의 유흥거리가 아니라 포커를 시간을 들여 하는 취미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처음 들게 했던건 원사운드의 만화 ‘텍사스 홀덤’ 이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만화였는데, 비정기적인 연재로 보는 내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만화에서 등장했던 닉네임인 나노노코같은 반가운 이름이 책에 등장하기도 했다. 포커의 어떤 면에 이렇게 끌리는 걸까. 포커는, 이런 승부는 사람을 본모습이 나올 만큼 극한으로 몰기도 한다.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사람을 알아보려면 술을 먹여라, 혹은 운전을 시켜봐라, 아니면 고스톱을 같이 쳐보라는 말(개인적으로는 더 빠른 다른 방법을 선호한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분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람을 많이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식 표현으로 ‘웨이터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라’).
포커는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매우 쫄깃한 승부의 순간을 제공한다. 블러핑, 히어로 콜, 마지막 드로에서의 역전, 그것을 다시 뒤집는 승부의 세계.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에게도 운이 작용하여 쉽게 그런 긴장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에 덧붙여 일확천금의 꿈까지. 누가 한번쯤 상상해 본 적이 없을까. 자신의 두뇌로 팽팽한 승부를 겨루어 결국 이기고 큰 돈을 버는 상상. 나도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 홀덤을 할수있는 게임 몇개를 깔아봤으나, 베팅 금액이 낮은 테이블에서는 바닥에 깔리는 커뮤니티카드를 보기도 전에 거의 매 게임에 올인이 나와 제대로 플레이 하기 어려워 금방 손을 뗐다.
책은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작가의 말 처럼 이 책은 포커를 플레이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플레이하는 방법에 따라 다뤘고, 그것을 굉장히 잘 해냈다. 이 책에서 배운 많은 교훈들은 포커에서 만나는 상황들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대입할 수 있다. 주식을 잘 하는 법, 자기의 일을 대하는 방법,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을 다룬다. 세상을 플레이하는 방법의 그야말로 액기스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대로 하면 너도 포커 잘 칠수 있다’가 아니라 ‘이대로 하면 너도 인생 잘 살수 있다’ 에 가까운 책. 특히 투자에 대해서 이 책에서 하는 말들을 놀랄만큼 똑같이 대입할 수 있다. 주식투자 하는 분들은 꼭 한번씩 보셔야 한다.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그러나 솔직하기는 어려운 경험들. 그것들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놓은 경험담들을 보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와닿는 부분도 많았다. 다양한 실수들을 보며 내가 비슷한 실수를 했던 적을 생각하기도 했다.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닥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책도 두꺼워 많은 분들이 보기 어려운 책이겠지만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 당연한 부분, 이미 아는 부분을 읽어나갈 때엔(꽤 많았다)지루하기도 했고, 책을 보다 잠시 덮기도 했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 몇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포커의 목적이 뭐죠?’ 에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 자신에게 거듭 물었던 질문이다. “누군가가 ‘돈을 따는 거요’라고 말하지. 그러면 그는 ‘아닙니다’라고 말해. 다른 사람이 ‘큰 판을 이기는 거요’라고 말하지만 역시 그는 ‘아닙니다’라고 하지. 그러곤 ‘포커의 목적은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겁니다’라고 말해. 나는 이게 포커를 바라보는 정말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해.” 에릭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카드가 안 좋게 나와서 지는 건 괜찮아. 별일 아냐. 하지만 나쁜 결정이나 실수 때문에 지면 훨씬 마음이 아파.
꾸미지 않은 진실은 이것이다. 나는 할수 없어서가 아니라 원치 않아서 나의 판단을 바로잡지 않았다.
때로는 플레이를 멈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진작 발을 뺐어야 하는 판에 머무른다.
카너먼은 이를 ‘비합리적 끈기’라고 불렀다. 그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자 프로젝트가 아니라 합리성을 포기했다.”
에릭은 뛰어난 포커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유연성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할 줄 아는, 모든 결정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성 말이다. 확신은 줄이고 질문을 늘리라는 그의 말은 더없이 명확했다. 어떤 판을 플레이하는 단 하나의 올바른 길 같은 건 없다. 목표에 도달하는 단 하나의 올바른 길도 없다.
사람들은 실패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지는 법을, 패배로부터 배우는 법을 알지 못하며 탓할 대상만을 찾는다. 그들은 한발 물러나 자신의 결정, 플레이, 잘못을 저지른 지점을 분석하지 않는다.
여기 있는 말들의 전후 상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테니.
글을 쓰다보니 텍사스 홀덤이 보고 싶어져서 흔히 하는 말로 쿠키를 구웠다. 대략 2만원. 웹툰에 처음 돈 써봤다. 매우 오랫만에 보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만화의 초반에 나가 겪었던 상황이 그대로 있다. 많이 함축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 하는 말과 만화가 놀랄만큼 비슷하다. 이런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나는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