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반까지만해도 나이먹는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반 농담처럼 나이가 드는게 아니라 멋이 든다는 얘기를 잘 하고 다녔다. 사실 뭐 그렇지않은가.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중요한건 얼마나 꼰대인가(물론 난 대단한 꼰대이다), 겉보기는 어떤지, 체력은 또 어떠한지. 얼마나 건강과 외모 관리를 잘 했는가, 얼마나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는가, 잘 서는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내 기준은 매우 관대하긴 하지만, 나 스스로 보기에 나는 저 기준에 문제가 없었다. 딱히 관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이정도면 됐다 싶었다. 사실 뭐 지금도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잘 스고, 잘(?) 쓴다.
근데 그저 숫자일 뿐인 나이를 먹기가 싫다. 매우 격렬하게 싫다. 작년 쯤에 한 사진을 본 이후로 너무나 격렬하게 나이 먹기가 싫다. 오래된 온라인 게임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었는데 내가 지금 딱히 온라인게임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 나온 모습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겠지… 라고 실감하게 된게 큰 것 같다. 사진에 찍힌 그분들이 보기 안좋다거나 그런것은 절대 아니었고, 그냥 갑자기 절감하게 됐다고 하는게 맞겠다. 나도 늙겠구나 하는 것을.
얼굴이(아직까진 다행히 탱탱한것 같지만) 덜 탱탱해 지는것도, 주름이 생기는것도, 그다지 크지도 않은 키가 줄어드는것도 싫다. 허리가 굽게 될 것도 싫고 그나마 내 몸뚱이에서 좋다고 할 만한 목소리가 변하게 될 것도 싫다. 언젠가는 서야 할 것이 서지 못하게 될 것은 정말 너무 싫다. 안 서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늘을 찌르는 내 자존감의 반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언젠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삶의 의욕을 매우 강하게 잃을 것 같다. 내가 두 발로 일어설 수 있는 동안에는 부디 잘 서 주길…
갑자기 절감하게 된 그 순간부터, 전에 안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겨울에 얼굴이 말라 비틀어져서 피가 나기 전까지는 안 바르던 로션(올인원이지만)을 매일매일 챙겨 바르기 시작했고 피부에 바르는 에센스를 난생 처음으로 발라봤고, 심지어 매일 바르고 있다. 머리자를때가 다 돼서는 머릿결이 상하는것 같아 헤어에센스도 바르고, 안하던 운동도 하고 있다. 심지어 새해가 되고 나서부터는 피부에 생기가 없어지는것 같아 리프팅도 알아봤었다. 물론 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하기는 어렵겠지만 정말 격렬하게 나이 먹기 싫다. 젠장 ㅋㅋㅋㅋㅋㅋ
해가 바뀔때 즈음에 93년살들 근황이라고 해서 많은 짤들이 올라왔다. 이제 30살이 됐다며 시무룩 하는 짤. 그러나 내 나이인 83년생을 대상으로는 그런 짤도 안 올라온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었나, 누군가 자기의 코메디에 관한 생각을 설명할 때, 부자가 넘어지면 웃지만 거지가 넘어지면 웃지 않는다는 톤의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40이 된 사람들을 비웃는건 너무하다. 30은 아직 젊으니 웃을 수 있지만 40은 웃을 수 없다. 그건 너무하니까. 다행히 그런 너무한 글은 못 만났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나는 아직도 세상 사는 많은 것에 미숙한 애새끼일 뿐인데, 더 이상은 애새끼일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다. 그게 아닌척 필사적으로 숨기면서 살아야 한다. 20대때는 같이 게임하고 이야기하던 30대 형들이 그때의 나는 그냥 마냥 어른같았었는데,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려진 그 때의 형들도 그저 병아리 들이었고 나에게 꽤 열심히 어른인 척 했었다는 것. 나는 아직도 그냥 애 같은데, 어른인척 하고 살아야 하는것이 가장 힘들다.
30대 마지막은 엄청 아쉬웠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