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북툰에서 영상을 보고 재밌을 것 같아 구매했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 이은 두 번째 책. 산지는 한참 됐으나 읽지 않고 밍기적거리고 있다가, 설 연휴에 할 게 없어 빈둥대다가 생각이 나서 읽었다. 인류가 처음 발견한 성간 천체 ‘오무아무아’에 대한 책이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어떤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쓴 책으로, ‘오무아무아’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다뤄주길 바랐으나 책의 포커스는 그것 자체가 아닌 그것의 의미, 불확실한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원론적인 내용을 다룬다. 꽤 괜찮게.
‘오무마우아’는 2017년 10월에 인류가 처음으로 발견한 성간 천체(태양계 바깥, 외계에서 온 천체들)로 첫 번째로 발견한 것이라는 의미 외에도 일반적인 천체들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이 있어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천체다. ‘오무아무아’ 란 하와이어로 ‘먼 곳에서 온 찾아온 메신저’라는 뜻을 갖고 있다. 2019년 ‘오무아우마’이후 또 다른 성간 천체 ‘보리소프’도 발견되었으나 ‘오마아무아’에서 발견되는 그런 특이성 없이 일반적인 천체의 특징만을 띄어 오무아무아같이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책은 이미 관측 불가하게 된 ‘오무아무아’에 대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아주 큰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이 외계 문명의 잔해라는 전제를 깔고 그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왜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과학자이면서 철학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쓴 책으로, 책의 많은 부분에서 철학적인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과학을 철학적으로 다룬 책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을 위해 펼치는 논리의 근거가 상당 부분 합리적으로 들리긴 하나 결론은 너무 급진적인 생각이라 동의하기 어렵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꼰대인가 보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렇게 꼰대인 것을. 물론, 나의 동의나 비동의가 주류 과학에 어떠한 의미가 있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나에게 이 책은 작가의 결론에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이슈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저자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동의하며, 많이 배웠다.
걸리적거리는 띠지와 겉표지는 바로 날려버렸죠...? 마음에 들지 않는 양장제본. 내구성도 낮다.
외계인이라는 게 있는가. 우리의 현재 상상과는 많이 다르더라고, 지능을 가진 외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생물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지구 밖에 생명체는 있는가. 그것이 단세포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생명이 있을까. 책의 가장 큰 물음인 이것에 대한 의견은 3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전엔 골디락스 존에 있는 행성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모든 항성의 1/3 정도에서 골디락스 존에 있는 행성들이 있다고 발견된다. 다 셀 수는 없지만 우리 은하에만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천억개(추청치 기준 2천억~ 4천억개)가 넘는 별(항성, 태양)이 있고 전 우주엔 또 다시 천억개(관측 가능한 우주에 2천억개 추정) 이상의 은하가 있다. 그리고,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2020년 말, 금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측 결과가 발표되었다. 작가는 이런 점을 들어, 외계에는 분명히 고도의 기술을 갖춘 문명이 있을 것이며, '오무아무아'는 그 문명의 잔재다. 라고 주장한다.
과연 외계인은 있을까? 외계 생명체는 있을까? 그것이 아무리 단순한 미생물단위의 단세포생물이더라도 존재는 할까? 많이들 들어봤겠지만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너무나 큰 공간의 낭비다 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이 질문은 사실 답이 없다. 이런 질문은 답보다는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그럼 문제를 조금 바꿔보자. 외계인이 아니라 신은 있나? 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있는가? 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자. 기독교도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논쟁거리가 아니겠지만 이 질문은 사실 나에겐 외계인이 있는기? 정도의 말과 비슷한 수준의 질문이다.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의문.
저런 질문엔 논리적으로 명확한 답이 없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각자 확인할 수 자신의 신념만을 영원히 되풀이해서 주장하며 어느 한쪽도 끝내 이길 수 없다. 이런 질문이 던져지고 서로 의견을 굽히지 않을 경우-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대립되는 양쪽 모두 정신승리가 얻을수 있는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신이 있는가?나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 아니라 '신(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것이 좋은가?'로 질문을 바꿔보자. 이것에 대해 책에서 굉장히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져줘서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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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이 규정한 유명한 내기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신의 존재 여부를 놓고 목숨을 건다. 파스칼은 신이 있다고 여기고 사는 편이 좋다고 주장했다. 파스칼의 추론은 이렇다(신이 있다고 여기고 사는데)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이 밝혀지면 당신은 평생 단지 몇 가지 즐거움만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신이 있다고 여기고 사는데)신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천국으로 가고 거기서 무한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또한 모든 가능한 결과 중 최악의 결과, 즉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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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이야기를 외계 문명에 도입하며 외게 문명(적어도 생명체)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좋다며 그것에 대한 주장으로 있다고 생각해야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나중에 그것이 발견되었을때, 그것에 대응하는것 자체가 너무 느려진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이 외계 문명에 대한 것 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굉장히 많은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외계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작가도 책 전체에 걸쳐 외계문명은 있다.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이득은 책에서 설명하는것 조차 굉장히 추상적이다. 혹시 외계인이 있다면, 혹시 그들이 어느 순간 우리 머리 위에 나타난다면, 혹시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면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없을것이다, 우리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의 과학 수준에 있을 테니. 또 없으면 어떤가.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류는 인류의 남은 여정을 누릴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과학 수준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기대 수명이 천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 짧은 시기는 우주의 역사로 보면 너무나 찰나이고, 관측가능한 우주만 보더라도 너무나 넓다. 여담으로, 세기의 천재 폰 노이만도 이 이야기에 감화를 받아 (암에 걸려 시한부 상태이긴 했지만) 카톨릭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건강할 땐 불가지론자였다는게 함정…
나는 지구 외의 다른곳에 생명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그들이 문명을 이뤘을거라고도 생각하지만 우주는 너무 넓고 인류의 예정된 삶은 그리 길지않다. 인류가 그들과 의미있는 어떤 교류를 할거라고 (적어도 지금의 과학 수준에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몇 광년의 거리를 한순간에 뛰어넘는 워프(여기에도 매우 많은 과학적 모순이 있다)라도 있으면 모를까... 작가가 생각하는 ‘결과’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서 굉장히 좋은 책이었?다. 번역이 거슬리는 부분이 꽤 많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