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목을 봤을 땐 ‘나의 해방일지’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재미 좀 보려는 그저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유시민 님의 추천사를 보고 별 거부감 없이 집어 들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해방일지라는 제목에 공감할 수 없게 내용은 추상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재밌다는 추천에 별다른 공감을 못하면서 대충대충 봤는데 이 책은 굉장히 밀도 있게 봤다. 아마 유시민 님의 세대에선,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훨씬 더 그랬을 것이다. 훨씬 더 진한 감정으로 봤을 것이다. 아마 나의 아버지도 살아 계셨다면, 분명히 그러셨을 거다.
일견 추상적인 제목으로 보이는 제목은,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보다 더 직접적일 수 없겠다는 인상으로 바뀐다. 아버지가 실제로 해방을 위해 노력하던 삶(일반적으로 쓰는 해방과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좇게 되는 딸이 자기가 평생 모르던, 모르려 했던 아버지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그린다. 꽤 많이도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를 그야말로 사람 냄새 나도록 그려 놓았는데, 특히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 하나는 행동 하나하나를 굉장히 생각하면서 봤다. 왜 이렇게 됐을까 혹은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읽으면서 아버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나의 아버지는 별로 좋은 분이라거나 현명한 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분이셨다. 뭐… 어머니도 크게 다르진 않으셨지만. 다만 두 분 다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은 확실한 분이셨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은 확실히 물려받은 듯. 주인공 아버지의 삶이 나의 아버지의 삶과 겹치는 부분들이 등장할 때 마다 책을 놓고 가만히 아버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 우리 아버지도 이런 분이셨지. 처음 보는 삼촌이 여럿 생기기도 했고, 동네 오지랖은 다 부리시던 분이셨고, 남들은 잘한다 편 들어주기 어려운 운동을 하기도 하셨었지. 이런 분이셨지.
일반적으로 화목한 가정과 비교하면 많이 다른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부모님의 책임감 덕에 뭐 특별히 많이 불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정말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는 내가 사춘기를 겪을 때 즈음에 집을 나가셨고, 그 후로 거의 15년 가까이 한 번도 못 뵈었다. 안 뵈었다는 표현도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후 결혼할 때 즈음에 뵌 아버지는 나보다도 키도, 덩치도 작아져 있으셨다. 굉장히 오랜만에 뵌 아버지는, 대단했던 내 기억 속의 그 남자보다 많이 시시해 져 있었다.
그 느낌이 나의 성장 때문인지, 실제로 아버지가 예전보다 조금 시시해졌기 때문일지, 혹은 둘 다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그렇게 느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확실히 그렇게 느꼈었다. 그 후로도 왕래가 없었고, 여러 히스토리가 있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후로 날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확실히 아버지를 모르고, 앞으로도 알 길이 없다. 나같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같이 사는 아버지를, 같이 사는 사람을 잘 안다고 표현하기는 내 기준에서는 많이 어려운 일이다. 나는 볼 수 없는 상대의 모습들. 나를 대할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상대의 다른 모습들. 그런 생경한 모습들을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된 주인공이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한다.
16살에 집을 나가신 후, 30살 즈음에 몇 번 뵈었고 30후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보지 않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도 아버지가 궁금했다. 자존심 세우기도 했었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단한 분도, 좋은 분도 아니었고 그저 시시한 한 남자였을 뿐이지만, 나는 사실 아버지가 많이 궁금했다. 이제는 알 길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