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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보며 나를본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 윤정은 (0) 2023/05/02 PM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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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들을 잘 읽지 않았다(바로 전에 독후감을 쓴 ‘나중에’ 도 다 읽은지 두 달 정도 됨). 여러 가지 핑계가 있겠으나 그동안 중간중간 읽으려 했던 책들이 별다른 즐거움을 주지 못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중간중간 책을 집어 들고 읽었으나 책들이 내 기대와 많이 달랐던 것… 요즘 책을 고를 때 깊은 고민 없이 표지나 제목을 보고 끌려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선구안이 정말 형편없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점점 더 놓게 되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사실 안될 것도 없는데 말이지…) 읽기 편한 소설책을 골라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읽기 시작한 책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보리라 생각하고 집어 들었다. 결과는….. 제대로 똥 밟았다. 평소 같았으면 반의반도 마저 안 읽었을 책. 꾸역꾸역 읽느라 정말 힘들었다.


표지의 잡화점, 백화점, 편의점을 잇는 힐링 소설 완결판이라는 광고 문구를 봤을 때 피했어야 했을까. 잡화점은 아마도 물 건너 나미야 씨네 잡화점을 말하는 것일 테고, 백화점은 달러구트, 편의점은 불편한 곳일 텐데, 두 책 모두 읽었으나 그리 좋은 평을 주지 못 했던 적이 있다. 잡화점은 참… 인생 책 중의 하나인데... 힐링소설의 계보를 이렇게 그냥 막 같다 붙이나...? 정확한 상호들을 쓰지는 않았지만, 책 좀 본다하는 사람들은 다 알 텐데, 이래도 되는거야????


정말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누더기를 보고 입이 닳도록 고급지다고 억지 칭찬을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훌륭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초등학교 저학년스러운 대사를 치며 리액션을 하는 어른들. 백만 번을 다시 태어났다고 정확히 세는 주인공. 백만 번의 윤회를 거치려면 호모 사피엔스로는 무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윤회를 거쳤다고 해도 평균 생존연령은 세 살 정도이다. 이런 핍진성 쌈 싸 먹은 설정들을 이야기의 앞부분에 깔고 가니, 책에 몰입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현실에선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들, 백화점처럼 상상력은 좋으나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부족…하다고도 표현하기 어렵다. 크고 훌륭한 이야기를 끌어갈 힘이 전무하다. 초등학교 학예회를 어른들의 몸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이런 수준 이하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집어 든 것이 아닌데.


그러나 기억을 지워주는 세탁소라는 개념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것처럼 머리에 주렁주렁 장치들을 달고 엔지니어들이 밤새 작업하는 것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몽환적으로 잘 와닿는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느낀 것처럼 작가의 큰 줄기의 상상력 자체는 좋다. 다만, 옴니버스식으로 이야기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케이스에 집중해서 인물들을 평면적으로(초딩, 혹은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깊게 파고들어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인물들의 기억이 지워지고 난 후의 이야기도 깊게 다루는 방향으로 책이 쓰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훨씬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텐데.


PS. 성차별적인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여자 작가들의 책을 보고 만족한 적이 없는 듯하다. 정말 대단한 상까지 받은 '채식주의자' 도 나에겐 별로 와닿지 않았으니. 나의 문제일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자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어떤 정서나 문체같은 것과 내가 사대가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다 보면 노땅되는거 순식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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