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매우 좋아하고 여러번 본 영화,
지지난 주 업무차 미팅 중에 부친상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지내던 분이 이직을 하셔서 인사차 들렀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주에 부친상을 당하셨고, 미팅 바로 전날까지 휴가셨다는 것. 오랫동안-10년 넘게- 와병하셔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계셨었다고. 그 즈음 한번 찾아뵙겠다 꽤 자주 통화를 하곤 했었는데도 나에게 말씀을 안 해 주셨었다. 아니 우리 요즘 매주 통화하는데 어찌 그러실 수 있었냐 섭섭하다 말씀드렸더니 업무상으로 알게 된 분들에게는 누구한테도 말씀드리지 않았고, 저 먼 지방(대구)이라 말씀드리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고 반쯤 변명 같은 말씀을 하셨다. 뭐… 이해는 십분 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저러나 나는 섭섭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조사를 다 챙길 수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경사는 못 가도 조사는 가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조사 중에도 부친상이라니.
부친상과 모친상 모두 큰 일이지만, 두 일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남자에게는 조금 더 다를 수 있겠다. 흔히 하는 말로 가장의 무게 같은 것에 공감 가서일까. 나도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 되면서 느끼는 압박감과 책임감 등으로 살아온 시대는 다르지만 아버지를 반쯤 전우 같은 눈으로 보기도 하고, 이 힘든 일을 해 오셨구나, 내게 해 주셨구나 하는 존경심 비슷한 것도 가지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가지는 데에는 개인마다 차이는 당연히 있겠으나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웠느냐 아니냐는 별로 상관이 없다. 아버지와 가까운 것이 아니라 적개감을 심하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직장 동료이지만 일적으로는 어느 정도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다. 2019년 기준 평균수명은 73.1세이고, 평균수명은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지만 내 부모님은 단명하시어 두 분 다 환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평균 수명에 비해 꽤 크게 단명하셨는데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길다고 할 수 없다. 16년이었나,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그 다음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난소암, 아버지는 간암. 암도 유전된다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암은 나에게 유전될 일이 없지만, 그 외 다양한 병력을 남기고 가셨고 돌아가신 이후 나는 생명보험을 꽤 빵빵하게 들어두었다. 두 분 다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더라도 좋은 사람이라 이야기하긴 힘든 분들이었다. 내 기구한 팔자인 것인지, 내 성격이 잘못돼서 그런 것인지-물론 내 성격이 잘못된 탓엔 부모님 지분이 매우 크다-둘 다일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에도, 그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가더라도 부모님과 화목하지 않았다. 중학교 이후로는 집에서 안정감,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중학교 시절-에 이혼하셨고 특별한 경제적 능력이 없으셨던 어머님이 나와 동생을 참 고생하면서 키우셨다. 그 고생을 본인 속에다가 묵히지 않고 아래로 내리시는 경향이 있으셨지만, 아버지에 비해서는 참 훌륭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는 이혼한 뒤로 정말 가끔… 몇 년에 한 번씩이나 보다가 내 결혼을 계기로 완전히 틀어졌고, 그 뒤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못-혹은 안- 만났다. 내가 아버지한테 돈 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글을 쓸 때엔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창피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패스. 내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은 편이지만 그때 아버지와 틀어지는 데에 내 지분은 정말 전혀 없었다. 나이 든 미성숙한 남자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아집과 자존심. 자기 스스로 굴에 들어간 사람을 꺼내긴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에게 그걸 해낼만한 열정은 없었다.
아버지와 그렇게 되고 나서 일 년에 몇 번씩 연락드리며 관계를 회복해 보려 했었으나, 아버지가 내 연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시어 잘 되진 않았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관계에서 관계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손을 뻗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나는 그런 어려운 일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잘 하지도 못했다. 몇 년이나 했을까. 결국 그것도 완전히 끊어지고 정말로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원래 내 인생에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언젠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에게 물려줄 유산이 있는 것도, 얼마 될 것 같지도 않은 유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만났을 때 즐거운 사람도, 즐거울 사람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손을 뻗을 수 있던 것은 내가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고, 아버지는 잘못 한 사람이라 자존심 세우며 내 손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서로 잘못해서 그런 건지, 아무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는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우습게도 지금은 머리가 큰 내가 갑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관계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착각. 그런데 내 아버지는 시쳇말로 자주 하는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 가오가 이번엔 나에게 발휘되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그 ‘가오’가. 그 가오를 보면서
부모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변명할 거리는 많지만 결국 부모님들과의 관계에서 나도 잘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사이를 회복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그때의 나는 부모님들에게 똑같이 존심 세우고, 목에 핏대 세우며 소리 지를 것도 뻔하다. 세상에 정말 무수한 수의 평행우주가 있다고 해도, 부모님과의 갈등 상황에서 부모님에게 져 드릴 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부모님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실제로는 그리 잘난 것도 없고 부모님이 제공해 주신 좋은 교육을 받았을 뿐이면서. 정말 늦었고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지금은 없지만 부모님들과의 관계는 많이 후회된다.
나는 후회를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이 후회는 돌이킬 수도, 지금에 와서 개선할 수도 없는 탓인지 시간이 지나도 전혀 작아지지 않고 계속 커지기만 한다. 내가 져 주는 사람들은 정말 몇 사람 안되긴 하는데, 부모님은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좀 져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나 들기 시작했고 그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 나는 갑도 아니었고, 당연히 잘못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내 부모님은 날 이렇게 키워주신 훌륭한 분들이셨고, 보고 싶은 분들, 그리운 분들일 뿐이다. 엄마를 다시 한번 안아볼 수 있다면, 아버지와 5분만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부모님들께도 좀 져 드려도 좋았을 텐데.
알지 못해 못 한 것이었지만 조문하지 못한 죄송함 반, 갑자기 듣게 된 당황스러움 반에 부끄럽지만 내 얘기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는데 얘기하고 보니 말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볼 것도 아닌 글에서도 쓰지 못할 얘기를 얼굴 아는 사람에게 횡설수설하며 해 버렸다. 남이 알아서 좋은 얘기도 아닌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