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러니까 1996년
내가 그때 살던 아파트가 복도식 아파트였다.
한층에 10집 정도 쭉 이어져 있는거.
근데 우리 층에 신혼부부가 살았는데
둘이 밤이면 밤마다 싸웠다.
그때 엄마한테 들은 얘기로는 원래 둘이 결혼할 생각 없었는데
애기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고 한다.
밤이면 밤마다 싸워서 우리 층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아파트 단지 사람들까지 그 집 엄청 싫어했다.
근데 그날도 싸우다가 실수로 그 집 아저씨가 아줌마 배를 쳐서 임신하고 있던 애기가 유산됬다.
그 휴유증으로 아줌마가 약간 미쳐가지고 평소에 괜찮다가 갑자기 막 소리 지르고 미친짓 하고 그랬었다.
동네 아줌마들도 시끄럽긴 해도 그 아줌마가 불쌍해서 이사 가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무시하자 이러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밤에 또 심하게 둘이 싸우는거였다.
우리집을 포함한 이웃 사람들은 '아 저 집 또 시작이네' 이러면서 그냥 무시하고 잘려고 하는데
우리층이 10층이였고
그 부부집이 1001호 그러니까 복도에서 제일 끝이였다. 우리집은 1007호였고.
근데 저쪽 복도에서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
1002호부터 문을 두드리는 거였다.
근데 괜히 부부싸움에 말려들까봐 10층 사람들이 문을 다 안열어줬다.
문을 두드리면서 두 부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렷다.
막 욕하면서 죽인다 죽인다 이러면서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
별 말도 없이 문만 계속 두드리는 거였다.
1002호부터 1010호까지 계속 문을 두드렷다
쿵쿵쿵쿵쿵!
그러다 어느순간 잠잠해졌고
나는 '오늘은 복도까지 나와서 심하게 싸우네. 괜히 남의집에 피해까지 주고..' 이런 생각 하면서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 학교 갈려고 일어나는데
밖에서 무슨 웅성 거리는 소리가 나고 경찰차 구급차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해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1001호부터 1010호까지 복도에는 핏자국으로 범벅이 되있었다.
10층 집집마다 현관문에 핏자국이 손모양으로 나 있고
복도에는 핏자국이 쭉 이어져서 복도 끝 1010호 앞까지 나 있었다.
난 어린 나이에 너무 충격 받아서 그 날 학교도 결석하고 며칠간 밥도 잘 못먹었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1001호 아저씨가 술먹고 홧김에 칼로 아줌마 찌르고 아줌마가 놀라서 피 흘리면서
복도로 나가서 집집마다 문 두드리면서 살려달라고 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