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최북단에 설치된 건물이 있습니다. GOP라 불리는 남방한계선 안 비무장지대에 세워진 GP. 철책 선을 가운데 두고 남한은 북한을, 북한은 남한을 좀 더 경계하기 위해 설치된 GP는 이미 몇 년이 지난 28사단 GP총기난사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6.25사변 이후 남과 북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UN 관리 하에 아직까지도 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승인 된 인원만이 경계 하에 출입할 수 있으며, 그곳에 세워진 GP는 국군중 수색대에 소속된 병사들이 지켜가고 있습니다.
1.
이 일은 제가 입대 후 GP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때는 2006년 4월 경. 제가 자대배치를 받고 한 달여 가량이 지났을 때 일입니다. 당시 저희 중대에서는 두개의 GP를 맡고 있었는데 XX2GP와 XX3GP이었습니다. 각 GP는 1개 소대가 100일여 가량을 경계 작전 수행후 주둔지에서 40여일을 보내는 순환 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대에 온 후 한 달 뒤 3GP를 교대하기로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이유는 작전 간 GP와 중대본부 거리가 멀어서 타 연대 GP와 교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포반에 소속되있던 저는 GP간 인수인계로 하루에도 수차례 경계 작전 지역인 GP를 왕복했습니다. 서류간 인수인계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을 때……. 이상한 서류 한 장이 중대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문서에는 교체하기로 한 1GP 해당 경계 작전 소대의 GP 문제점이 적혀 있었는데, 군 서류에 없을법한 눈에 띄는 사항이 있었습니다.
-소대원들이 특정침상에서 자주 가위에 눌리고, 귀신이 있다하여 병사들이 소원수리를 작성한 적이 있음.
처음에는 모두 타연대를 비웃었습니다. 귀신이 나온다고 상부에 소원수리를 쓴 부대가 어디 있을까요?
"귀신 잡는 해병대라도 보내야 하나?"
저 역시 이런 식으로 놀렸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중대장은 GP교체는 중요한 사항이기에 이러한 부분마저 그냥 넘어 갈 수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삼일 뒤……. GP견학 겸 동숙을 위해 간부 셋과 병사 둘이 1GP로 파견되었습니다. 중대원들이 농담 삼아 가위 눌리는 자리가 있는지 진위 여부 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1GP에서 철수한 인원들로 인해 또 다시 중대가 시끌벅쩔 해졌습니다. 정말 가위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5명 전원이 똑같은 남자를 봤다고 하며 말입니다.
2.
5월 중순…….
한 달이 지나 GP간 인수인계가 완료되고 3소대가 처음으로 1GP에 투입됐습니다. '은행나무 침상'이라고 부르던 가위눌리던 장소는 휴게실로 교체하였고, 하루하루 별다른 문제없이 경계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귀신에 대한 소문도 어느새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7월이 되어 여름 속 경계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GP에 투입된 3소대에 전역자가 생겨 포반이였던 제가 대리근무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3개 분대중 새벽대를 맡고 있는 후반야 분대에 들어가 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문득 사수와 얘기를 나누던 중 1GP에 대한 괴담이 생각났습니다.
"귀신얘기 전부 뻥이지 않습니까?"
제가 웃으며 묻자 사수는 표정이 싹 굳어지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 투입하고 귀신 봤다는 사람 나 포함해서 지금까지 열 명도 더 될 거다."
사수였던 조 병장은 투철한 불교신자인데다 소대 상담병으로 가장 착하고 거짓말도 안하기로 소문난 사람이기에 그 대답에 의심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 정말 있단 말씀이십니까?"
조병장은 귀신인진 모르겠지만 살벌하긴 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GP내 귀신이 목격 된 곳을 일러주었습니다. GP는 지상, 지하로 나뉘는데 지상은 주로 근무를 서게 되는 초소가 설치되어 있고, 지하에는 내무실과 취사장 등이 있으며 바깥쪽을 시계방향으로 12개의 벙커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귀신을 목격한건 2분대였던 장상병. 전반야 근무를 마치고 잠이 들었던 그는 밤 2시를 넘긴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다 합니다. 피곤한 몸으로 화장실에 가 소변기에 서 용변을 보던 장상병은 무척이나 졸려서 머리를 벽에 기댄 체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그 때 복도에서 화장실로 다가오는 전투화 소리를 듣고 선임인가 해서 다시 머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 발자국 소리에 주인공이 문을 열고 장상병의 뒤를 슥 지나갔는데, 누군지는 보지 않은 채 있었지만 흘겨봤을 때 군복인걸로 보아 근무자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변을 마친 뒤,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화장실 입구에 설치된 거울로 보이는 대변기 사로 문들. 뒤를 돌아 그 앞으로 가보니 문이 모두 열려 있었고,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분대원이 모두 믿지 않았다 합니다. 하지만 3일 후…….
농담한마디 안하며 과묵했던 부소대장이 한 밤중에 12번 벙커에서 울고 있는 남자를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시작으로 내무실, 휴게실, 벙커, 초소 등등 여러 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속출 했습니다. 정말 존재했던 걸까요?
3.
2주가 지났습니다. 3일이 지나도록 비가 그치지 않은 채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GP에서는 귀신에 대한 얘기들로 술렁이며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소문들이 무수히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귀신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GP를 교체한 타 연대 인원들이 참모와 함께 GP점검을 온 것입니다.
사실 아무도 귀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괜한 호기심에 타연대 경계병들에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타연대 병사들은 자기들이 1GP를 맡고 있을 때 있었던 기이한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겪인 일과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들은 귀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낡은 전투복에 전투화, 눌러쓴 방탄헬멧……. 때는 GP가 세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80년대였다고 합니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병사들은 지금의 GP에서보다 훨씬 긴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때로, 경계 작전에 사열을 기울이고 있던 어느 여름이었다고 합니다.
천둥소리와 빗소리가 전지를 뒤덮은 비무장지대에 폭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모든 병사들도 재빠르게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총과 탄을 갖춰 각자의 위치로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폭음은 없었습니다. 5분정도 지났을까? 한 병사가 폭음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건 북한군의 도발도, 낙뢰로 인한 대인지뢰의 불발도 아니었습니다.
12번 벙커에서 한 병사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한 손에 편지와 한 손에 수류탄을 들고.
그 편지는 여자친구로부터 온 이별통지서였다고 합니다. 12번 벙커는 정좌로 앉아있는 하반신과 이리저리 흩어진 상반신의 살점들로 피범벅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후 소대는 사체 근처로의 출입을 금한체 그의 부모가 당도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 내 사망자는 조작여부의 문제로 부모가 직접 사체를 확인하기 전까진 시체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3일 후, 그의 부모가 도착했답니다. 해외에 계셨던 부모님은 형체가 없어진 외아들을 보고 말을 잃었고……. 이건 이후에 접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사망한지 이틀 방치된 동안 살쾡이들이 사체의 살점을 물어가고, 한 여름이라 파리가 들끓어 시체 속에는 구더기들까지 기어 다녔다고 합니다. 부모는 오열하다 못해 기절하고, 직후에 여자친구가 도착했다고 했습니다. 소대원들이나 부모나 그 여자친구를 좋게 볼 리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상반신이 없어진 남자친구를 보며 울고 있는 그녀에게 모두가 욕설을 퍼부었다 합니다. 이후 그녀도 자살을 시도하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내용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소대원 전원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몇몇은 거짓말이라 했지만 12번 벙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한 듯 했습니다. 그 벙커는 12개중 유일하게 벽이 세워져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4.
"탕-탕-탕……!"
"이병 황**입니다. 근무교대 왔습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천둥소리가 곧 있으면 낙뢰도 칠 것 같이 거칠었습니다. 순환식으로 각 초소근무를 교대하던 저는 장병장과 함께 고가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고가초소는 초소 중 가장 높은 초소로 2층 이상 높이로 설치되어 철재로 된 계단을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단을 오를 때면 탕-탕-탕 소리가 항상 들려왔습니다.
근무 투입 후 30분쯤이 지나자, 주간작업으로 녹초가 된 나와 장병장은 말없이 서 있다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쾅-!!!
장병장과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뗬습니다. 벼락소리였습니다. 아마도 곧 낙뢰조치가 이루어져 고가초소 병력을 철수 시킬 듯 했는데…….
"탕-탕-탕-"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앉아있던 장병장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근무교대 시간이 아니므로 이 시간대에 올라온다면 소대장 아니면 부소대장일 겁니다. 아마도 철수를 전하러 온 것일겁니다.
"탕-탕-탕-탕."
계단소리가 문 앞에서 그쳤습니다. 저는 문을 열며 관등성명을 댔습니다.
"근무자 이병 황**입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장난치나 싶어 옆에 있는 빈 공간으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초소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으며 장병장에게 아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분명 누군가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였고 숨을 곳은 없었습니다. 장병장과 내가 서로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초소 밖에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탕탕탕탕탕탕탕탕-!"
누군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5.
이틀 뒤, 나는 휴가로 인해 GP에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GP에 대한 괴담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전역하기 1주일 전에도 중대장마저 귀신을 봤다고 합니다.
새벽 1시경 쯤, 근무자들이 각자의 초소로 투입됐을 때 이었다고 합니다. 휴게실에서 나와 초소를 살피던 중대장이 2초소에 멈춰 섰습니다.
"거기 누구야?"
옆에 설치된 1초소에 근무자들이 자기들을 부르는 줄 알고 고개를 내밀었다 합니다.
"야, 거기 누구냐니까?"
1초소에 있던 병력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중대장이 2초소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중대장님."
"야! 2초소 지금 누구야?"
"지금 2초소 투입 안했습니다."
중대장이 1초소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2초소를 가르켰습니다.
"야, 그럼 저기 나 쳐다보고 있는 놈들은 누구야?"
물론 중대장이 직접 2초소에 들어갔을 땐 그곳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재 XX1GP는 무사고 상태에서 북한군에 맞서 항시 철통경계를 수행해 나가고 있으며 괴담은 우리가 GP를 교체 할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될까 부대위상을 생각해 거의들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GP에 무언가 있다고는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1GP가 세워진 자리는 38도선을 긋기 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 전쟁의 마지막 접전을 벌인 수많은 위령들이 묻혀있는 고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