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연애 상담을 해주곤 하는데 예전에 선배 연애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
카페에서 나와 선배와 후배(女)가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100일 기념 선물'이었다.
선배는 어떤 선물을 생각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책과 상품권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와 후배는 이구동성으로 '미쳤어요?' 라고 외쳤다.
선배는 우리에게 잔소리를 신나게 듣고나서
내가 추천해준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와 함께 화장품을 선물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후에 후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좋은 하루를 보냈으며 여자친구분도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책은 '100일'이라는 특별한 날의 무드를 생각해서 기각된거였지만
아마 다른 상황이었어도 나는 책은 아니라고 만류했을 것이다.
실제로 책은 선물로서 굉장히 보편적으로 선택된다.
만약 천하제일 선물 대회가 열린다면 4강의 한 축은 항상 책이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책이 우승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책은 선물로서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니까.
정확히는 리스크가 큰 선물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예전에 선물에 대해 글을 썼을 때 선물에서 가장 중요한건 상대의 니즈의 충족이라고 했다.
이는 책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상대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대체재로서 무난하다고 생각해 책을 고르는 것인데 책은 애석하게도 니즈를 굉장히 필요로 하는 품목이다.
무난하다고 하기에는 책만큼 취향을 많이 타는 것도 없다.
일단 독서는 의외로 보편적인 취미가 아니다. 책 안읽는 사람이 참 많은 사회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책을 선물한 사람은 독서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면 만사 OK일까?
물론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은 굉장히 취향을 타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알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내가 읽어봤더니 괜찮더라. 남들이 좋다고하더라. 베스트셀러더라.' 같은건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독서를 좋아해도 취향에 맞지 않는 책에는 손이 잘 안가기 마련이다.
결국 많은 선물로 들어온 책들이 책장으로 직행한 후 읽혀지지 않는다.
선물이니 버리기도 뭐하고 막상 읽지도 않게 된 책은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자, 그럼 다행히도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선물을 줄 상대는 책을 좋아하며 그 취향도 뚜렷하다. 이제 취향의 책을 골라 선물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보통 자신의 확고한 취향의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신작을 이미 가지고 있을 확률이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이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기을 바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상대가 다음에 만날 때 감상 말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
그러면 비로소 책은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뭐, 그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책은 좋은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선물이 나쁘다는건 아니다.
다만 그 리스크가 굉장히 크기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는거지.
무난하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선택하는데 있어 다른 선물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선물이 책이다.
실제로 책 선물은 하는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으니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음. 그래서 나는 책선물을 전혀 안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책 선물을 하긴 한다.
…사실, 올해에도 이미 책선물을 했다 히히.
올해에 내가 책을 선물한 이유는 일종의 보답의 선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던 소중한 작품을 선뜻 나에게 빌려준게 고마워 그에 대한 답례였다.
내가 선물한 책은 그 책의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로 나온 책이었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거라고 추측했기에
이 책을 받으면 완벽하게 좋아할거라는 어느정도의 확신이 있어 책을 선물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여기에 덤으로 동생이 읽을 수 있는 동화같은 만화책을 포함시켰다.
이 덤은 그야말로 덤으로 그저 동생이 좋아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선택했으며
동생한테도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고른 일종의 덤 같은 느낌인지라
애초에 기대도 안했다. 그냥 재밌게 읽어주면 고마운 그런 책.
그렇게 올해 초에 책을 선물하고나서 한번도 그 책에 대해 물은적이 없다.
이 책을 최대한 빨리 읽고 감상을 말해줘야한다는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상대가 좋아해줄지 확신이 안서기 때문이기도하다.
좋아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지금도 그 책을 읽었을지는 확신을 못한다.
책선물이라는게 그렇다.
이 사람이 이 책을 고맙다고 받아들였다고해서 이 책을 읽을거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읽었냐고 묻자니 상대가 부담을 느낄까봐 망설여지고.
물론, 선물을 한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상대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는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무난하다고 선물하기에는 책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 뿐.
어떤 선물이던 받은 사람에게 있어 애물단지로 존재한다면 준 사람에게도, 받은 사람에게도 슬픈 일이니까.
그러니 좀 더 상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상대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선물을 선택하는게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