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은 노량진에 살았다. 곧장 수산시장 밑에 닿으면, 할리스 앞에 오래된 컵밥 집이 서 있고, 재수학원 뒤에는 원룸촌이 널렸는데, 에어컨도 없는 방은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책 읽기나 좋아하고, 그의 인 서울 비(非)상경계 출신 여친이 보험 인바운드를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여친이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씨파(CPA, 공인회계사)를 보지 않으니, 회계의 역사는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채용 전제형 인턴이라도 못 하시나요?”
“비상경계는 지원도 못 하고 정규직 전환은 본래 안 시켜 주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스타트업은 못 하시나요?”
“스타트업은 눈먼 정부 돈 받아낼 연줄과 열정 페이 받고 개발해줄 개발자가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여친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인턴도 못 한다. 스타트업도 못 한다면, 9급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융복합 인문학 소양을 쌓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고시식당으로 나가서 밥 먹던 공시생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한국에서 제일 부자요?”
이건희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이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 씨와 그 옆 이가 아들에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1조 원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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