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던 것은 어느 날 어느 이름 모를 소녀의 부드러운 뱃가죽을 뜯고 있었을 무렵
입안엔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달큼하면서도 고소한.. 감미로운 맛이 감돌고 있었다.
내가 여지껏 얼마나 이 짓거릴 해가며 삶을 이어온걸까 . .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정말 새삼스러운 깨달음, 새삼스러운 결심.
그 끝엔 곡기를 끊기로 결심한 내가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 베지테리언으로 살 것이다.'
짐승같이 흉하게 쭈그려 앉아, 소녀의 배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일어나 입에 묻은 피를 채 닦지도 않고서 한 결심.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망하기 전엔 작심삼일이란 말도 있었다지.
정작 나는 잃어버린 단어였지만, 세상은 아직도 그 단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좀비인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보다 지금은 눈앞에서 날 약 올리는 이 꼬맹이가 거슬린다.
"역시 너 뭔가 달라, 병이라도 걸린 거야?" "갑자기 입맛이라도 잃을 만큼 으응?"
"날 먹으라니깐?! 나 이 세상에 딱 홀로 남은 마지막 생존자라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살아있는 고기라고 라스트 원 몰라?"
분명 내가 곡기를 끊기로 한 것을 눈치채곤 이렇게 개념 없이 구는 거겠지. 겁줘서 쫓아 보내기로 한다.
"그어어어-!!!"
- "그래, 너라면 좋으니깐.."
...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계집애 같다. 이 아이는 틀렸어 등 뒤로 버리고 한적한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일까. 이렇게 곡기를 끊어서 무얼 어떻게 하려고? 뭐가 되고 싶은 걸까 나는.
- "날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등 뒤에서 또 그 정신 나간 계집애가 말하기 시작했다.
- "네가 갑자기 이상해진 거 왜 그런지 몰라?" " 그거 나 때문이야 자 봐-"
계집애가 자신의 옷을 걷어 붕대 감은 복부를 보여준다, 피가 맺혀 있는 게 상처를 입은지 얼마 안 되어보였다. 정말인가.
문득 새삼스레 그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빨갛게 달아올른 뺨, 두근 거리는 맥박, 따스한 체온. 무심코 그 아이의 어깨를 잡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뒤로 쓰러진다.
그래 나는 살아 있고 싶은 거구나.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아니라 저 계집애 처럼 진정 살아 있고 싶은 거구나.
#옆집이웃좀비씨는베지테리안
아무래도 좀비 로맨스다보니 웜바디스가 안 떠오를 수가 없는데
최대한 캐릭터를 차별화 해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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