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ITV
제작자: 줄리안 펠로우즈
개인적으로 영국 드라마는 별로 안보는 편입니다. 여태까지 본 것중 가장 영국 드라마에 가까웠던 작품은 HBO와 BBC 합작의 <롬>이였고,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셜록>은 파일럿만 본 상태인데다가, <닥터후>는 손댈 엄두도 나지 않더라고요. 그런 제게 있어서 <다운튼 애비>는 첫 영국 드라마입니다.
<다운튼 애비>는 영국 요크셔의 다운튼 애비라는 대저택에 거주하는 그랜썸 백작가문과 그들의 고용인들의 이야기를 20세기 초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따지고 보면 소프 오페라 장르로써, 로맨스, 인물들간의 감정적 대립등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시대극으로써의 고증도 철저한데다가, 일단 등장인물들부터 시청률을 노린 극단적인 성격은 자제하고, 오히려 모든 인물들의 배경을 폭넓게 다루고 있어 다른 소프 오페라들과 비교하기엔 좀 억울한 면이 많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도 담백하고 순수할때가 많으면서도, 본격적으로 1차세계대전 전시상황을 다루는 시리즈2부터는 바뀌는 영국사회, 군인들의 PTSD, 여성인권, 보수 vs 진보, 전쟁중 영국 국내전선 상황등 묵직한 테마들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줍니다. 어떨때는 <작은아씨들>이나 <오만과 편견>에 <닥터 지바고>를 섞은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사회적 갈등과 개인적 갈등의 상호작용을 멋지게 잘 표현합니다.
물론 이야기의 가장 달콤한 요소는 메인 커플 두명의 츤츤이 가득한(...) 로맨스이지만(그 커플이 누구인지는 스포...), <다운튼 애비>는 그저 평범한 로맨스일뿐라고 치부하기엔 20세기 초 바뀌는 영국사회에 대한 탐구를 심도있게 진행합니다. 이 테마야 말로 <다운튼 애비>의 진정한 장점이라고 생각되네요. 멋진 로맨스는 다른 많은 드라마에도 있지만, 그 로맨스를 철저한 고증을 거친 시대적 배경과 테마와 함께 이렇게까지 적절하게 잘 버무린 작품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심도깊은 묘사도 드라마에 깊이를 더합니다. 시리즈 인기톱인 돌직구 여사 그랜썸 백작 노부인(<해리포터>의 맥고나걸 교수님을 맡으신 매기 스미스 여사님께서 호연하셨습니다)부터, 인자하기 그지없지만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때때로 가족과 불화를 일으키는 그랜썸 백작, 츤데레(...) 메리, 착한남자 매튜, 여장부 시빌, 공기(...) 이디스등 크롤리 가문 인물들은 물론이고, 악당같이 보이지만 시리즈가 계속될 수록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토마스, 순진하기 그지없는 데이지, 무뚝뚝하고 엄격하지만 알고보면 좋은 사람인 칼슨, 언제나 나사한두개가 빠진듯한 몰슬리등.... 연기도 연기지만, 이야기 전개와 탁월한 대사들 덕분에 딱히 싫어할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다운튼 애비>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같이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인 다운튼 애비 대저택 그 자체를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리즈3의 피날레에서 욕나올 정도(...)로 뜬금없는 사건이 터졌지만, 그래도 <다운튼 애비>는 시리즈4에서도 굉장히 재밌고 의미있는 이야기로 전개할거라 생각합니다.
한줄평: 바뀌는 시대를 배경으로한, 품격도 있으면서 소소한 웃음과 훈훈함까지 주는 시대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