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때야 말로 가장 집중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러 영화 감독들도 당연히 자기가 만들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면 시너지를 발휘하는데요, 기예르모 델 토로 역시 B급 액션물의 본좌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거대로봇물과 괴수물을 실사영화화한 <퍼시픽 림>에서도 마음껏 그 역량을 발휘합니다. 애초에 옛 거대로봇물과 괴수물의 오마쥬적인 작품으로 플롯자체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클리셰로 범벅된 물건이라 그리 흥미롭진 않지만, 애초 고의적으로 자신이 오마쥬라는 것을 강하게 알리는 연출을 주기에 처음부터 관객들은 그냥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인 "엄청나게 큰 로봇이 엄청나게 큰 괴물이랑 싸우는 액션"에만 집중할 수 있게 길을 터줍니다. 여기서 그러면 이 영화의 평가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점은 "과연 액션만으로도 재미있나"가 되겠죠.
<퍼시픽 림>의 액션은 두가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덩치 큰 로봇들의 육중함과, 엄청난 스케일로 느릿느릿하게 치고박고 싸우는 투박함입니다. 예거가 나오는 그 모든 씬은 마치 고흐의 "거인"처럼 무섭고 경외심이드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바라보게 카메라 앵글을 잡습니다. 그리고 예거들이 카이주와 싸우는 장면은 전혀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투박함이 오히려 아날로그적이고 "크다"라는 이미지를 더욱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보여주어 관객들을 압도시키는 효과를 줍니다. 이 화려함보다 투박함에 올인한 연출은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흠을 잡을만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거의 모든 전투씬이 비가 오는 바다에서 이뤄지고 있는데요, 시각적 압도감과 신비함을 극대화 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액션이 잘 안보이는 경우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어둠칙칙한 느낌이 들어서 재밌게 봤지만요.
예거와 카이주들 자체도 언뜻보면 비슷하지만 각각 세세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어 관객들이 편하게 구별할 수 있게 만들고, 하나하나마다 캐릭터를 부과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카이주들은 딱히 구별하는게 쉽지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적어도 중반의 카이주들은 똑같아 보이는 클론 개채들보단 보다 다양성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굉장히 심플합니다. 캐릭터들도 그다지 많은 변화를 겪지 않는데다, 고의적인 클리셰에 범벅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뭐가 일어날까, 하는 의문은 딱히 없습니다. 이런 심플함이 오히려 맘놓고 액션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보이기도 합니다만, 더욱 더 복잡하고 재밌는 등장인물들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은 아니므로 그다지 플러스가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분위기를 그냥 액션/전쟁물보단 재난물의 성격에 더 가깝게 해두었는데(옛 괴수물이나 에반게리온처럼), 이것도 화려함보단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스케일을 부각시켜 탁월한 선택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남주인 롤리나 여주인 마코도 스토리에서 필요한 장치로써 소요되는 느낌이 더 강하고(게다가 롤리를 맡은 배우의 대사처리가 너무나도 오그라드는지라 거부감이 느껴질때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전혀 아닙니다.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스태커는 그래도 이드리스 엘바의 스크린을 압도하는 존재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꽤나 진부한 클리셰로 이루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다지 재밌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는 아니였습니다.
다행히도 액션만으로도 영화를 이끌어갈 힘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액션마저 재미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액션의 빈도가 떨어지는 초반부는 전개가 루즈해지는 감이 확실히 있습니다. 델 토로 감독의 B급 센스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초반부지만, 일반 관객들이라면 지루할만한 부분이지요. 그래도 기승전결을 충실하게 따라가 투박하긴해도 할일은 하는 스토리가 있는데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델 토로 감독의 팬들이라면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센스가 많이 빛을 보지 못한 것에 많이 실망을 하실 수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거대로봇물"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라곤 할 수 없습니다. 대중성과 오마쥬를 위해 자신의 기괴한 컬트호러 성격의 색을 많이 줄였으며, <헬보이>같은 영화와는 어느정도 비슷하지만, <판의 미로>나 <악마의 등뼈>같은 작품을 생각하고 가시면 절대 안됩니다. 델 토로 감독의 B급 센스는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감독 자신의 진정한 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성격상 오히려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색을 죽인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오마쥬를 때려박아 재밌게 가지고 논 느낌이 많이 드니깐요.
결국<퍼시픽 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영화자체가 오마쥬라는 것이네요. 이 오마쥬라는 성격이 과연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관객들 개개인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당연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한줄평: "딱히 흠잡을 것도 없고 제 할일을 다하는 전형적인 시원한 블록버스터"
전 마코 좋았는데. 귀엽기도 하고.
룰웹에선 평이 별로 안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