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이 나왔을 때부터 굉장히 기대감이 높았던 영화였는데요, 다름아닌, 현재 영화계에서 환상적인 롱테이크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엠마누엘 루브즈키 촬영감독(알폰소 쿠아론은 물론, 테렌스 말릭 감독과도 자주 같이 작업합니다)이 <칠드런 오브 멘> 이후 6년만에 같이 만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일반팬들뿐만 아니라 영화팬들에게서도 굉장히 뜨거웠던 영화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영화가 과연 좋은 영화인가, 별로 좋지않은 영화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스토리가 재밌다, 없다"보다 훨씬 깊이 들어갑니다. 영화라는 미디엄이 워낙 비주얼-오디오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매체인지라 스토리 하나만 가지고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그리고 영화사엔 가끔가다 비주얼의 압도적인 황홀함이 내러티브적인 불만을 해소시켜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비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비티>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극찬했듯이 비주얼적으로 완전 미쳤습니다. 발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지구부터, 3D로 멋지게 표현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우주 파편들까지, 정말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의의는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있습니다.
<그래비티>의 촬영기법은 천재적입니다. 알폰소 쿠아론하면 롱테이크의 달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알폰소 쿠아론의 최고 장점은 그 롱테이크를 어떻게, 어떤상황에서 찍는 가에 있습니다. <이 투 마마 탐비엔>과 <칠드런 오브 멘>에서의 롱테이크들은 전부 비주얼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영화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내러티브 방식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비티>의 롱테이크 샷도 비슷한 의미로 존재합니다.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에서 철저히 계산된 카메라워크와 편집을 보여준 덕분에 관객들은 "아 멋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라는 기분을 받게 만듭니다. 여러 POV샷들도 우주의 광활함과 공포를 알려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스토리는 굉장히 직선적입니다. 내러티브 시점이 한 캐릭터의 시점에서 밖에 진행되지 않고, 얼굴이 나오는, 캐릭터가 제대로 성립된 인물들이 2명밖에 존재하지 않아 인물들간의 관계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래비티>는 "체험"에 중점을 둔 영화라 내러티브 요소는 굉장히 적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무턱대고 "보여주기만"하는 영화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는게, 주인공인 산드라 블록의 연기가 굉장히 몰입감이 있기에 그다지 불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클리셰지만 연출은 굉장히 섬세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주얼에만 치중하고 자주 까먹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사운드입니다. <그래비티>는 첫장면부터 "우주에는 소리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사운드 이펙트의 자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배경음악을 제외하면 굉장히 조용합니다. <스타트렉> 리부트에선 이런 무음이 액션 연출의 한 요소였다면, <그래비티>는 우주 그 자체를 표현합니다. 영화중 전혀 사운드가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조용해서 옆상영관 소리가 들릴정도입니다), 사운드가 없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운드 연출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주에선 옆사람이 움직여도 그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외롭고 떨어져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사운드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토리에서도 우주의 적막함이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개인적으론 <칠드런 오브 멘>이 더 충격적이고 잘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비티>에 "영상혁명"이라는 칭호를 주어도 전혀 아깝지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한줄평: "압도적인 비주얼과 천재적인 촬영으로 관객의 자유자재로 쥐었다 놓는 연출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