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에너미 (Enemy)
감독: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개봉일: 2014년 3월 14일 (캐나다/미국), 한국 개봉 미정
장르: 싸이코 에로틱 스릴러
2010년 <그을린 사랑>으로 평단의 눈을 사로잡았고, 작년 <프리즈너스>로 스릴러 팬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입니다(만 일단 <프리즈너스>보단 더 전에 찍었습니다). <프리즈너스>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숨막힐것같은 느릿한 서스펜스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만, 그렇다고 <프리즈너스>를 기대하고 갔다가는 큰 일(?)날 영화이기도 한데요, 다른게 아니라 <프리즈너스>가 데이빗 핀처의 영화와 비슷했다면 <에너미>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데이빗 린치가 생각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빗이 참... 많습니다).
<눈 먼자들의 도시>로 노벨문학상을 탄 주제 사라마구의 <더블>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인데요, 사회성이 없는 한 사학과 교사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영화에서 보고 찾아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보면 그냥 좋은 미스테리 스릴러의 개요나 다름없지만, <에네미>는 미스테리 스릴러와는 조금 많이 다릅니다. 위에 장르를 "싸이코 에로틱 스릴러"라고 적어놨는데, 실제로 저것만큼 제대로 표현한 게 없을 정도로 굉장히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기둥은 주인공이 찾아나서는 미스테리 플롯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들이 직접 도대체 스크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 자체일 정도로, 굉장히 불가사의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맞는 사람에겐) 굉장히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생각해보면 <프리즈너스>는 영화의 가장 큰 모티프가 바로 미로였는데, <에너미>는 그냥 영화 자체가 미로(...)일 정도로 자칫하다간 관객이 심각하게 헤매게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타나는 거미와 거미줄 모티프, 영화가 가면 갈 수록 점점 햇갈리는 캐릭터들의 정체, 그리고 아마 최근 영화중 가장 괴랄한 엔딩까지, 캐나다 인디 영화답게(...) 굉장히 실험적입니다.
하지만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그 센스는 헐리우드 그 어느 스릴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습니다. 느릿느릿하고 서서히 끓어오르는 듯한 그 연출은 등장인물이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에너미>에선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리즈너스>에선 육중하고 처절한 감정이 주를 이루었다면, <에너미>에선 마치 히치콕의 "대낮의 서스펜스"와 린치의 "괴랄함"이 적절히 얼버무려져 있다고 할까요. 특히 마지막 20분의 클라이막스(?)는 기괴함을 넘어 현실과 환상의 벽을 완전히 허문 느낌까지 나기 때문에 정신이 붕괴되는 스릴(?)을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프리즈너스>와 만찬가지로 촬영이 영화의 느낌을 전하는데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이번엔 공중샷과 스카이라인 샷들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요, 다른 영화들의 스카이라인 샷과는 달리 분명 공중샷이긴 한데 색감과 편집으로 인해 굉장히 탁하고 공간이 조여오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자체가 뭔가 답답하고 숨막히는 연출로 가득찬 영화라 그런지 굉장히 효과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음악은... 직접 들어보셔야 합니다.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는 역시 좋습니다. 두명을 서로 다르게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후반에 갈 수록 영화가 전개되는 방향에 맞춰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보이더군요. 개인적으로 빌뇌브 감독 다음 작품에서도 페르소나로써 계속 출연을 해줬으면 하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멜라니 로랑 (<바스터즈>, <콘서트>)의 역은 별 비중이 없는 반면, 사라 게이든이 연기하는 헬렌은 신선한 충격일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예술영화, 특히 초현실주의 영화에 면역이 없으신 분들은 아마 보고도 이해가 불가능해 오히려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으십니다. 영화자체가 원래 기괴하고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배우들이 계약을 할 때 영화 엔딩과 여러 심벌의 의미에 대해 누설하지 말라고 계약을 했고 감독 본인도 인터뷰등에서 전혀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한번보고 제대로 이해하는게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영화라 보시면 됩니다) 이런 이질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아마 90분동안 고문받는 듯한(...)느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실험적이면서도 수준높은 서스펜스를 체험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면서 정신이 천천히 붕괴되는 것을 느끼고 싶다), 하시는 분들에겐 강력추천합니다.
물론 한국 개봉은 안될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한줄평: "기괴함의 아름다움,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괴함(?)."
p.s. 여주인공인 헬렌역의 사라 게이든이 저희 학교를 다닌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제 학부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