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수색자 (The Searchers)
감독: 존 포드 (John Ford)
제작년도: 1956년
장르: 서부극
서부극의 대부 존 포드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인 존 웨인이 합작한 수많은 서부극 중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수색자>는 제목 그대로 두명의 남자가 가족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때는 텍사스-인디언 전쟁 시절, 남북전쟁 당시 남군으로 싸웠던 주인공이 전쟁이 끝난 후 3년 후, 자신의 형제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지내다 자신의 형제 가족이 코만치 원주민들에 의해 죄다 몰살당하고 딸 둘만 인질로 끌려가는 참사를 당하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형제 집에 얹혀살던 청년인 마틴과 함께 조카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수색자>에선 흔히 서부극과 연관되는 대결씬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악역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도 결국 긴장감이 고조된 대결이 아닌 습격을 당하고 얼떨결에 총을 쏜 끝에 죽어버리게 되는, 서부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싱거운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결다운 대결이라면 마틴과 다른 청년이 여자를 두고 주먹다짐을 하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은 오히려 영화내내 대결이 안나온다는 것과 서부극에서 대결이라는 것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일인지 자체적으로 비꼬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수색자>는 대결이란 요소를 배제한 대신, 학살과 기습, 그리고 일방적인 공격 혹은 방어로 액션을 풀어나갑니다. 4, 50년대 존 웨인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주인공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는 언급이 있고, 실제로 자신을 기습하려는 적을 등 뒤에서 쏴버리는 짓까지 합니다 (존 웨인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서 상대방 등 뒤에 총을 쏘라는 감독의 지시를 거부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원주민들과의 싸움도 일방적인 학살이나 방어에 가깝고 (백인들이 학살하거나, 원주민들이 학살하거나), 명예라는 것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의외로 담담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전투 장면은 전형적인 원주민 학살 장면이고, 배경에 들리는 경쾌한 트럼펫 소리가 오히려 불편함을 더욱 부각시켜 관객들이 이런 위선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물론 56년도 영화이고, 고전주의 헐리우드 영화인 만큼 지금의 시점으로 봤을 땐 그다지 파격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수색자>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의외로 진보적인 설정과 연출이 많은 수정주의적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명예롭다고 하기엔 거의 미쳤다고 묘사가 가능할 정도로 어딘가 싸이코 기질이 보이는 인물이고, 오히려 가장 명예로워 보이는 인물은 "정당한 복수"를 행하는 원주민 족장이기도 합니다. 서부극의 장르적 테마중 하나가 바로 커뮤니티의 중요성인데, 다른 서부극에선 원주민들은 커뮤니티에 대한 위협을 상징한다면, <수색자>에선 원주민 부족또한 또다른 하나의 커뮤니티라는, 시대에 비해 굉장히 입체적인 묘사를 합니다.
사실 <수색자>에서 커뮤니티, 즉 편안한 집과 안정이란 개념은 영화의 수정주의 색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화 전체를 꿰뚫는 테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드 감독의 영화는 수동적인 여성상만 보여준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포드 감독은 여성으로 집과 문명이라는 개념을 상징한다고 보아 고전주의 헐리우드 시절 감독들중 포드 감독을 높게 쳐주는 페미니스트 영화학자들도 있는데, <수색자>는 그런 포드식 여성상을 강하게 어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두번째 주인공인 마틴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로리 요르겐슨이 바로 그런 심벌리즘을 내포하고 있고, 납치된 여자아이인 데브라도 마틴과 주인공에게 이젠 사라져버린 고향을 상징합니다.
영화의 흐름도 그런 테마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몇년간이고 고향을 떠나 납치된 아이들을 찾으며 미국 남부를 떠돌아다닙니다. 인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내러티브적 시각으로 봤을 땐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납치된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집도 잃어버렸죠. 그런 상황에서 황야를 떠돌아다니며 "수색자"가 된다는 것은 포드 감독이 중요시하는 고향이라는 테마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며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는 주인공과 사라져버린 고향의 마지막 남은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데브라를 찾아다니면서 결국 집에 있는 애인을 놓쳐버릴 상황까지 오게되는 마틴을 보면 고향이라는 테마가 <수색자>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결국 <수색자>에서 주인공들이 수색하는 것은 납치된 아이도 아니고,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원주민 족장도 아닙니다. 오히여 이들이 실제로 "수색"하는 것은 자신들이 있을 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존 웨인의 캐릭터가 결국 집을 다시 떠나는 마지막 장면도 그저 서부극 클리셰에 맞춘 것이 아닌, 주인공이 결국 자신이 있을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고향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되찾았지만 고향에 돌아오니 남은 것은 안정이 아니라 폐허와 공허였고, 결국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조금 더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마음을 반영하듯 주제가인 "The Searchers (Ride Away)"가 울려퍼지며 끝을 맺습니다.
한줄평: "드넓은 황야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