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감독: 존 휴스턴 (John Huston)
제작년도: 1948년
장르: 드라마, 모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각본을 집필하기 전날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을 봤다고 합니다. 실제로 <데어 윌 비 블러드>와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연관점은 많습니다. 탄광이라는 장소에서 탐욕에 의해 증폭되는 인간의 광기와 의심이라는 테마도 그렇고, 톤은 많이 다르지만 결국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같은 점은 비슷한 엔딩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끈적하고 질퍽한 검은 석유는 인간의 광기의 엑기스를 상징하는 절대 악인 반면,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사금은 조금 더 니힐리스트적인 색채를 띄고, 이 심벌리즘은 영화 전체를 꿰뚫습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제목만 들었을 때는 클래식 보물찾기 모험물같은 느낌입니다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모험물이 여정을 미화시켜 서스펜스와 흥미도를 고조시키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성취감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반면,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의 여정은 열차 강도씬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건조하고 지치기만 합니다. 실제로 영화의 이야기 구조로 봤을 때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보물"을 발견하고 나서야 제대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영화의 대부분도 이 "보물"을 일행끼리 나누는 장면부터 보물을 외부인으로부터 지키려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룹니다.
1948년도 영화 답지 않게 존 휴스턴 감독은 <시에라 마드레 보물>에서 다른 고전주의 헐리우드 작품들과 차별화를 두는데요,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리얼리즘입니다. 고전주의 헐리우드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환상을 부여한다는 목표를 두고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위해서가 아니면 현실성보단 신빙성으로 간략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 존 휴스턴 감독은 약간 다른 방향을 택하는데, 관객들이 현장감을 더욱 절실히 느끼기 위해 당시로썬 굉장히 이례적인 로케이션 촬영(멕시코 타피코 시와 실제 듀론고 주의 시에라 마드레 산맥)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대사 한줄이나 특별히 중요한 대사를 하지 않는 비영미권 캐릭터들이 장시간 스크린에 나와 자막없이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관객들에게 대사대신 시각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현장감으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의 캐릭터들이 느끼는 광기에 의해 내면에서 무너져가는 도덕성을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것보다 더욱 현실감있게 직접 느끼게 되고, 결국 영화의 여운이 더욱 오래 남게되게 합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돕슨은 초반엔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점점 의심의 구렁텅이 빠져들게 됩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휴스턴 감독이 돕슨이 변화되는 과정을 극적인 연출보단 자연스러움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로 인해 관객들은 사람의 마음에 독을 퍼트리는 "보물"이란 존재를 훨씬 현실적으로 보게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사금은 당연히 현실의 돈을 상징하며, 극 중 한 인물은 금의 비싼 값어치는 희귀성 때문이라기보다 금을 찾아내는데 사용되는 노동력 때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의 휴스턴 감독은 가공되어 시중에 보석이나 돈으로 유통되는 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금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값어치를 죄다 벗겨내고 금 그 자체의 덧없음을 관객들에게 역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낸 사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산맥이 주인공 3인방에게 건낸 사금은 금처럼 보이지도 않는 물질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모래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사람에 따라, 시각에 따라 값어치가 변하는 물질을 보편적인 "보물"이라 생각하고 자신(과 남)의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휴스턴 감독은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휴스턴 감독이 리얼리즘을 추구한 이유도 아마 이 테마를 역설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연출된 미화가 기본인,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영화라는 매체에서 물질주의적인 미화를 없애고 금이란 금속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만큼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를 비판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깐요.
한줄평: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속에서 찾은 삶의 유쾌함."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오슨 웰스 감독의 <악의 손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