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몰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감독: 존 휴스턴
제작년도: 1941년
장르: 미스테리, 필름 느와르
만약 <악의 손길>이 마지막 정통 느와르 중 하나라면, 존 휴스턴 감독의 데뷔작인 <몰타의 매>는 첫번째 느와르 영화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와르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바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인물들이 어느 한 목표를 쫓는 전체적인 스토리와 그런 인물들이 내면 묘사를 드라마틱한 조명과 촬영으로 연출하는 것인데요, <몰타의 매>는 그런 느와르 특징들을 확립시킨 느와르 영화의 대부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몰타의 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험프리 보가트의 하드보일드 연기입니다. 본래 갱스터 영화의 악역으로 많이 타입캐스트 되었던 보가트는 첫 주연작이라 할 수 있는 <몰타의 매>에서도 전혀 정의롭다고 할 수 없는 역을 맡았는데요, 실제로 배우의 마스크가 마스크인 만큼, 인생에 찌들고 자신을 위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의는 지키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사립탐정의 역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하지만 <몰타의 매>가 그저 미스테리 영화가 아닌 느와르인 이유는 바로 휴스턴 감독의 연출에 있습니다. 몰타의 매라는 상을 둘러싼 암울한 미스테리를 연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배경을 즐겨 쓰고, 서로를 속여들려고 하는 등장인물들의 지능싸움을 느와르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미화시키기 보다는 더욱 지저분하게 만들어 결국 이들이 그토록 손에 넣으려는 몰타의 매를 그저 보물이 아닌, 위험한 집착과도 같은 무언가로 여겨지게끔 만듭니다.
저번에 접한 휴스턴 감독의 다른 작품인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과도 마찬가지로, 휴스턴 감독은 <몰타의 매>에서도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이 몰타의 매를 찾으려는 집착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사금과도 마찬가지로 <몰타의 매>의 상도 본래 가치를 숨기기 위해 황금빛이 아닌 검은색 에나멜로 덧칠한, 언뜻보기엔 별 의미도 없는 상으로 둔갑되어 관객들의 눈에 보여집니다. 이런 시각적 상징은 보물이라는 영화의 인물들이 쫓는 물질주의적 목표에 대한 비판이자 물질에 대한 덧없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영화의 엔딩에서 노골적으로 다시한번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휴스턴 감독의 세계관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휴스턴 감독은 "실패한 여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였는데, 이는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물론, <몰타의 매>에서도 역시 드러납니다.<몰타의 매>의 주인공인 샘 스페이드는 자신을 협박하려는 자들을 등쳐먹으려하지만, 이 것은 두뇌싸움중 반전이라는 영화적 카타르시스로 표현되기 보다는 샘 스페이드도 결국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 다른 제 3의 힘의 손바닥 위에 놀고 있었을 뿐이였다는 뉘앙스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운명이라는 패러독스에 의해 실패한 인물들의 이야기였듯이, <몰타의 매>도 결국 물질적 목표를 지닌 여정의 실패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그런 여정의 무의미함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휴스턴 감독이 진정으로 집중한 테마는 여정이 아닌, 여정으로 드러나는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이자 그 내면에 공존하는 냉혹함과 따뜻함입니다. 이 테마는 샘이 마지막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헤너시 양과 하는 대화에서 드러나는데요, 샘에게 오헤너시란 이성적으론 믿을 수 없는 여자이면서도 결국 감정적으론 사랑하기도 하는 여자이기도 합니다. 이 두 시각 사이에서 샘은 갈등을 하게되면서 이렇게 영화는 인간 내면의 이면성을 보여주고, 결국 단순명쾌한 마무리를 거부하고 샘 나름의 정의에 따른, 어찌보면 안티 클라이맥스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무리에 다다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1931년에 영화화된 버젼은 샘과 오헤너시의 로맨스를 확인시켜주는 에필로그가 존재하는데, 휴스턴 감독의 작품은 그런 달콤한 마무리를 추구하기 보단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샘이 걸어가는 것을 끝으로 영화를 끝맺는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 내면을 부각시키려는 연출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존 휴스턴 감독이 데뷔작으로 <몰타의 매>를 미스테리가 아닌 느와르로 만들 것을 택했던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몰타의 매란 인간의 추한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그는 몰타의 매라는 상보단 그 상에 비춰진 인간들의 내면을 탐구하고 싶었던게 아니였을까요. 영화도 그런 그의 생각을 반영하듯 상을 비추며 끝나기 보단, 모든 것이 끝나고 이 상에 얽힌 모든 사람들의 불행한 결말을 봐버린 주인공을 카메라에 비추며 끝납니다.
한줄평: "검은 집착이라는 소용돌이에 갇힌 사람들."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잉마르 베리히만 감독의 <제 7의 봉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