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The Lives of Others)
감독: 플로리안 폰 헨켈 도너스마르크 (Florian von Henckel Donnersmarck)
제작년도: 2006년
장르: 드라마, 스릴러
독재정부의 가장 무서운 점은 국가가 시민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폭력적인 억압도 있지만, 그보다 더욱 은밀하게 시민들을 감시하고 감찰하며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나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게 하는 억압이야 말로 장기간 시점으로 보면 독재정부가 한 개인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억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타인의 삶>에선 바로 이런 억압을 소재로 국가가 한 시민의 삶에 얼마만큼 개입을 하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데요, 그런 행위로부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국가적 억압으로 인해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타인화시켜버리는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타인의 삶>은 1984년, 아직 고르바초프에 의한 글라스노스트가 제창하기 전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냉혹하면서도 완벽한 슈타지 요원이면서도 소외되고 쓸쓸한 삶을 살아가는 비즐러는 어느 한 젊은 극작가인 드레이만을 감찰하라는 작전을 부여받아 그 작가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비즐러에게 게오르크 드레이만은 '타인'이자 자신의 관할하에 있는 작전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비즐러는 드레이만의 삶을 관찰하며 점점 그의 삶에 빠져들게 되는 걸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이 영화가 <타인의 삶>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영화의 줄거리가 다른 사람을 감찰/감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삶'이 아닌 '타인'입니다. 드레이만은 비즐러를 모르는 채로 살아갑니다. 드레이만의 여자친구인 크리스타에게도 비즐러는 모르는 '타인'이죠. 그리고 비즐러에게도 드레이만과 크리스타는 '타인'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영화의 주역들이 공개적으론 '타인'이라는 것을 부각시켜 영화의 흐름을 이어나갑니다.
정부가 감찰을 하며 시민들이 서로를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의심하게 만드는 독재정권의 현실을 <타인의 삶>에선 각각 개인이 결국 다른 이들을 타인화시키면서 살아간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의식이 바로 사회에 의한 한 개인의 고립이며, 이런 고립이 결국 자살을 초래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고립이 이뤄지는 방식은 다름아닌 정권에 의한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도 상실이며, 이렇게 이웃을 믿지못하고 친지를 의심해야하는 사회는 결국 그 구성원들을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실제로 이에 부합하듯, <타인의 삶>에선 비즐러가 자신의 감찰 대상인 드레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하게되며 비즐러의 내면이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 이입을 하며 그들의 삶은 더 이상 모르는 '타인'의 삶이 아니게 된 것이죠. 영화 후반 슈타지로써의 자신의 의무를 해야할 때 한번 더 그는 냉혹한 심문관로 탈바꿈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결국 끔찍한 참사를 초래하게됩니다. 결국 독재정권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의 구성원들은 함께 살아가게 되고, 독재에 의한 그런 트렌드의 거부는 사회에게든 개인에게든 거대한 독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영화 마지막은 이런 테마에 적합한 엔딩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에게 건내는 손길이야 말로 동독시절 반정부적인 드레이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니까요. 이렇게 영화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국가와 개인이 아닌 개인과 개인, 즉 '타인'과 '타인'의 연결을 보여주며 끝을 맺습니다.
한줄평: "타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벌써 30일 중 반까지 왔네요. 처음에 할 땐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온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뭔가 매일같이 배우는 게 있는 것 같아 보람있네요. 어제 고다르 감독 영화를 두개나 백투백, 논스톱으로 보면서 멘붕이 왔었지만(...) 그래도 이젠 마지막까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영화를 하나 더 봤습니다. 존 휴스턴 감독의 <아프리카 여왕>이라는 작품인데요, 휴스턴 감독 작품답게 잘빠진 상업영화이면서도 영화 곳곳에 심벌리즘이 많아 역시 휴스턴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여배우 레전드중 레전드인 캐서린 헵번에게 첫 오스카를 안긴 작품답게 헵번 여사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일의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폴리테크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