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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영화] [DAY18]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4) 2014/05/28 AM 03:35

제목: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감독: 밀로쉬 포르만 (Milo? Forman)
제작년도: 1975년
장르: 드라마

<아마데우스>로 잘 알려져 있는 밀로쉬 포르만 감독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감독으로, 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 운동을 이끌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이 한창일 때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조국을 뒤로 하고 망명길에 오른 감독입니다. 포르만 감독이 체코어로 만든 마지막 작품은 1967년에 만들어진 <소방수의 무도회>라는 코미디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그 당시 공산권 사회를 절묘하게 비꼬는 풍자 영화로 포르만 감독의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을 알려주는 작품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또한 그런 풍자 영화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에 대한 공포'라는 주제와 함께 정신병원이라는 장소를 메타포로 사용하여 현대 사회의 축소판을 구상합니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에서의 사회적 메타포는 굉장히 직설적인 편입니다. 일단 정신병원이라는 기관 자체가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기관중 하나라는 클리셰는 여러 작품에서 많이 보여지고 (일단 같은 포르만 감독의 작품인 <아마데우스>에서 그런 묘사가 있지요), 아예 <셔터 아일랜드>에선 이런 클리셰를 가지고 반전 스릴러를 만들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가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정신병원의 이런 이미지를 가져와 쓰기보단 정신병원 그 자체에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탐구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세심한 장소 묘사를 통해 영화는 정신병원의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유를 완벽하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정신병원이란 언뜻보면 평화로운 사회입니다. 배경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리고, 환자들은 간호사들이 정한 스케쥴에 순응하며 폭력없고 문제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죠. 이들에게 없는 것이란 바로 자유지만, 이들은 정신병자죠. 제대로된 생각을 할 수 없는이 들에게 과연 자유란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조심스래 관객들에게 물어봅니다. 이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될 정도로 정신병원은 아기같은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간호사들 간의 하모니로 가득 찬 공간입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영화의 첫 메타포와 접하게 됩니다. 바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인데요, 이 음악은 바로 병원 스태프가 틀어놓은 음악으로 사회의 안정을 상징합니다. 이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정신병원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암울하거나 으스스한 분위기가 아닌 굉장히 평화롭고 안정적인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환자들 또한 이 음악을 배경으로 평화롭게 행동하고 있죠. 후에 잭 니콜슨의 캐릭터가 이 음악을 꺼달라고 부탁할 때 거절당하는 이유가 바로 늙은 사람들이 듣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인데요, 이렇게 정신병원이란 '기관'은 사회 전체의 안정을 핑계로 개인의 권리를 묵살합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사회 전체의 순응 강요하는 것을 음악의 사용으로 표현한 것이죠.

이런 곳에 맥머피라는 이름의 환자가 들어옵니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맥머피는 본래 형을 받아 봉사활동을 하는 신분으로써 일을 하기 싫어 정신병으로 꽤병을 부리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 그가 온 정신병원은 그날부터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먼저 맥머피는 루이즈 플레쳐가 연기한 래치드 간호사와 대립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근사근하지만 속은 굉장히 토털리테리안적인 래치드 간호사는 자신의 방식을 뿌리부터 송두리째 뒤엎으려는 맥머피에 자연히 반감을 가지게 되죠.

맥머피는 60년대 후반의 히피 운동 세대와 굉장히 흡사합니다. 안티컬쳐적인 (이 케이스에서는 정신병원의 문화에 대항하는) 반발심은 물론이고, 클래식 음악을 거부하는 것도 그것이지요. 그는 섹스와도 같이 본능적인 것을 추구하고, 상향식 개혁을 선호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그와 동지 격인 정신병원의 다른 환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래치드 간호사와 적대시키는데 주력합니다. 전형적인 60년대 히피 운동권의 모습이죠. 하지만 포르만 감독이 영화를 만들 당시는 이미 1975년으로, 히피 운동에 대한 환상이 깨진 시점이였고, 이런 사회적 변화를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영하죠. 결국 맥머피는 술에 빠져 자신이 원한 것을 눈앞에 두고 못이루게 되고, 간접적으로 엄청난 비극을 부르게 됩니다. 이런 결말이 바로 히피 세대에 대한 비판인 것이죠.

영화 중반 맥머피가 동지들과 함께 잠시 병원에서 탈출에 배를 모는 장면이 바로 이런 히피 운동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정치 풍자 만화에서 '정부'나 '사회'를 배로 묘사하는데, 이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묘사됩니다. 기껏해야 도망쳐서 한다는 것이 느긋하게 낚시나 하는 것이고 (히피 운동의 안일주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맥머피는 여자친구와 방 안에서 섹스를 하고, 결국 능력없는 자가 배를 몰다 패닉하여 되돌아오는, 히피는 안티컬쳐일 뿐 현실적인 대안책은 아니다 라는 것을 비꼬는 것이죠.

래치드 간호사는 위에서 말했듯이 굉장히 토털리테리안적인 인물입니다. 미국 극우파부터 공산당 고위 인물들, 히틀러같은 파시스트등, 이런 인물들이 전부 연상되는 캐릭터죠. 이런 그녀의 성향과 맥머피와의 정치적 대립을 굉장히 잘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다수결 장면이죠. 월드 시리즈가 너무나도 보고싶은 맥머피는 래치드 간호사에게 제안을 합니다. 만약 다수결로 환자들 대부분이 월드 시리즈를 보고싶다고 결정하면 스케쥴을 따라가는 대신 TV를 보게해주는 것으로요. 맥머피는 결국 끈질긴 노력으로 그의 동지들로 하여금 자신의 뜻에 찬성하도록 손을 들도록 하는데요 (이 장면 또한 선동이라는 요소를 굉장히 절묘하게 묘사합니다), 래치드 간호사는 다수결 방식의 교묘하게 이용하여 거부합니다. 히틀러나 다른 여타 독재자들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시스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틀어 사용하는 것이 생각나는 장면이죠. 또한 다른 환자들은 래치드 간호사가 상징하는 권위주의적 공포에 무릎을 꿇고 굴복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래치드 간호사와 정신병원의 다른 환자들 사이에서의 다이나믹으로부터 영화를 꿰뚫는 주제인 '자유에 대한 공포'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텔리젠시아를 상징하는 하딩은 꽤나 정상적이면서도 '자유에 대한 공포'때문에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살고 있는 사람이죠. 실제로 하딩은 굉장히 위선적인 인물로써 다른 이들에 대한 오만함은 물론이고, 공포에 따라 이리 저리 편을 옮기는 인물입니다. 이런 하딩이란 인물로 영화는 인텔리젠시아조차 사회가 만들어내는 공포에 휘둘리게 된다는 비극을 절실히 보여줍니다.

또다른 환자는 바로 빌리입니다. 빌리는 병원의 막내로써, 자신의 어머니를 굉장히 무서워 하는 청년이죠. 빌리가 가지고 있는 '어른'에 대한 공포는 그의 말더듬는 버릇으로 나타나고, 그가 그 나름의 '성인식'을 치루는 사건조차 '사회'에 의해 억압되고 결국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죠. 그리고 영화는 이 일련의 사건이야 말로 '사회'가 만들어내는 '자유에 대한 억압'과 그로 인한 '자유에 대한 공포'에 그 책임이 있다고 역설합니다. 사회의 안정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그 사회에세 가장 잘 보호되어야할 젊은 세대를 안정과 정 반대되는 길을 택하게 한다는 패러독스가 바로 포르만 감독이 본 세상이고, 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40년이 지난 2014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영화는 모든 것이 미쳐간다는 결말로 치닫습니다. 미친 사회에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야 말로 미친 것이고, 비정상적인 사회의 정상화는 바로 모든 사람의 비정성화를 뜻하죠.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그들이 강요하는 안정이란 결국 패러독스적인 환상일 뿐이고, 결국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죠.

"광기란 같은 일을 두번 하면서 다른 일이 일어날거라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는 길이 멀리 돌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는 것보단 훨씬 의미있는 일이죠. 하지만 '자유에 대한 공포'를 맛본 인간들에게 앞으로 가는 것이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을까, 라는 공포에 빠져 결국 인간은 패러독스적인 권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영화는 한 비극적인, 위대하면서도 결점이 있는 현대적 혁명가에 의해 이 미친 사회에 구멍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보여주지만, 과연 이 구멍은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에겐 '탈출'일까요, 아님 '공포'를 뜻할까요.

한줄평: "미친 것은 사회인가, 개인인가."



이 글은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30일 영화 챌린지"중 하나입니다.
"30일 영화 챌린지"는 그다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랜덤하게 고른 30개의 영화를 랜덤하게 순서를 정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영화 하나씩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분석을 쓰는 겁니다.
제가 볼 영화들의 리스트는
여기(클릭)에 있습니다.

가족여행을 다녀오느라 한동안 잠수를 탔습니다.
잠수타면서 영화 세편을 봤는데요, 헐리우드 전성기 시절 최고의 코미디라고 불리우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재밌게 본 하워드 혹스 감독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그리고 히치콕 감독의 최고 작품인 <현기증>을 봤습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모두 마릴린 먼로의 작품인데요, 먼로가 꽤나 수동적으로 나온 <뜨거운 것이 좋아>보단 드센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하워드 혹스 감독 영화 중에서도 유별나게 여성중심적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였던 것 같습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는 주제가 어찌보면 굉장히 된장녀스럽긴 하지만 혹스 감독 특유의 유쾌함으로 인해 의외로 재밌고 불편하지 않게 풀어내어 정말 감탄을 하며 보았네요. 마릴린 먼로의 대사와 그녀의 실제 지적인 면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뜨거운 것이 좋아>는 그냥 정말 절묘하게 골때리면서 재밌고.
<현기증>이야 뭐... 할말이 없네요. 너무 명작이라.

내일의 영화는 (드디어) 조지 큐커 감독의 <필라델피아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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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겟타    친구신청

2년전쯤에 보게된 영화인데 블루레이 소장중입니다~~ㅎㅎ 또 보고 싶어지네요~

그레이트존    친구신청

그래도 적어도 아마데우스보단 가볍게 볼 만한 영화는 아닌것 같네요 ㅎㅎ
아마데우스는 그냥 재밌어서 많이 봤는데

오들히햇반    친구신청

잘 읽었습니다. 엔딩이 어렸을때 좀 충격적이었어요

그레이트존    친구신청

많이 암울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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