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명량
감독: 김한민
개봉일: 2014년 8월 18일 (북미), 2014년 7월 30일 (대한민국)
장르: 역사, 드라마, 액션
말도 많고 탈이 많은 <명량>입니다. 흥행도 있고 충무공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어떻게 비평하느냐가 굉장히 민감한 작품으로 보이죠. 하지만 저에겐 그런 작품 외적인 요소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일단 한국인도 아니고, <명량> 또한 그 어떤 것이기도 전에 일단 영화니까요.
<명량>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영화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워털루>입니다. 둘다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로 첫 1시간은 전투 전의 심리묘사에 할애하고 있고, 나머지 1시간은 전투의 전체적인 양상을 심도 깊게 묘사하려 합니다. 그리고 워털루 전투는 근대 유럽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고 명량해전 또한 어찌보면 동아시아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중 하나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두 작품 모두 전투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구도만 비슷할 뿐, 실제로 <명량>은 <워털루>와는 굉장히 다른 전개 방향을 보여줍니다. <명량>은 이순신을 위한, 이순신에 대한 영화이고, <워털루>는 나폴레옹과 웰링턴 공작의 라이벌리와 심리 싸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원톱 영화인 <명량>은 이순신의 묘사에 압도적인 분량을 할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워털루>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들은 지금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투장면이 아닌, 바로 로드 스타이거가 연기한 나폴레옹과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한 웰링턴의 심리 싸움이였습니다. 영화는 이 둘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이 둘의 완벽한 대칭덕분에 드라마가 거의 없어보이는 페이스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일관성있는 균형이 있습니다. 하지만 <명량>은 다릅니다. <명량>은 이 첫 1시간을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이 1시간은 인물들의 대립 구도와 심리묘사를 표현하는데 할애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1시간동안 의미있는 캐릭터들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같은 테마의 에피소드들이고, 이 또한 (원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선군 진영과 일본군 진영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어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에 제대로된 깊이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순신이 어느정도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순신'이기 때문이고, 그걸 연기한 사람이 다름아닌 최민식 씨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순신이란 캐릭터도 아쉽습니다. 영화는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할지 전혀 감을 못잡은 듯 싶습니다. 영화는 '인간 이순신'이라는 것을 찾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영화 내에서 '인간 이순신'을 조금이라도 찾은 사람을 최민식 씨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가 <악마를 보았다>나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심리묘사에 비하면 <명량>의 이순신은 최민식의 캐릭터라고 하기엔 아쉬운 느낌이 먼저 듭니다만, 적어도 최민식의 이순신은 꿈을 꾸는 장면과 이어지는 구선이 불탈 때의 장면과 같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모습 또한 보여줍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지쳤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이끄려는 '영웅'으로써의 복잡한 묘사도 그 마스크를 통해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과도한 카메라 워크와 요란한 감정 연출, 그리고 깊이없는 각본에 의해 남는 것은 최민식의 인간 이순신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상징'입니다. 그것도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어 다시 말하는 것이 무의미한 '상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순신을 상징화시켜버린 영화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명량>의 가장 큰 재앙은 바로 이 이순신이 가장 묘사가 잘된 등장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충무공의 아들은 그저 관객들의 화자에 지나지 않고 성장 묘사조차 지극히 단편적입니다. 이순신을 제외하고 내면 묘사가 존재하는 캐릭터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 이순신조차 묘사가 부실합니다. 영화에서 조연들은 그저 극을 인공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한 장치, 혹은 관객들에게 극을 이해시키기 위한 화자에 불과하며, 그나마 비중이 있어보이는 스파이 임달영조차 러브라인이라는 덫에 빠져 인공적인 장치로 낭비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오타니 료헤이의 준사였습니다. 배경이 이질적인 만큼 충분히 영화에 독특한 관점을 부여할 수 있었던 캐릭터였지만 영화는 이를 깨끗이 무시합니다. 준사 역시 다른 조연들처럼 (혹은 다른 조연들보다 더욱) 비중이 없어 영화에 다채로움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원탑 영화라도 주인공을 받춰주는 조연의 중요도는 특히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전기일 수록 더욱 높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선 오마 샤리프의 셰리프 알리, <링컨>에선 샐리 필드의 매리 링컨이 있습니다만 <명량>에선 그 누구도 없습니다. 결국 영화는 제대로 묘사도 되지 않은 이순신이라는 톤 하나로 영화 전체를 밋밋하게 그려냅니다.
이런 인상적이고 잘 묘사된 조연의 부재는 영화의 구조상 더욱 더 부각되어 눈에 거슬리게 됩니다. <명량>의 대립 구도는 정말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심플합니다. 영화는 일본군과 조선군 내부의 공포에 떠는 자들을 많이 조명하지만 그들에게 딱히 깊이를 부여하고 싶어하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량>의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역사물이 아닌 권선징악적인 신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왜란 당시 일본군의 잔인성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영화는 이를 극적인 방법으로 부각시키기는 커녕 그냥 단조롭고 단면적인 캐릭터를 관객들의 얼굴에 비비는데에만 사용합니다. 무려 1시간 동안 말입니다.
이순신의 대칭점으로 영화를 균형있게 잡아줘야 했던 류승룡 씨의 구루시마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쥬신타 역을 맡아 집요한 추격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영화를 이끌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구루시마는 영화의 다른 일본군 캐릭터와 같이 단면적이고 만화적이며, 임팩트가 없고 웃기기만 합니다. 각본 상으로 구루시마는 이순신에 원한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영화는 이를 전혀 부각시키지 못해 적어도 무시무시한 살인귀로 표현될 수 있는 그를 치졸하고 찌질한 캐릭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렇다할 이순신의 대칭점을 잃은 영화는 마치 회오리에 붙잡힌 함선처럼 침몰을 향해 빙글빙글 돌기만 합니다. 류승룡 씨의 어설픈 일본어 연기는 둘째치더라도 말이죠.
구루시마의 두 부하들 역시 별 의미가 없는 캐릭터들입니다. 특히 저격수인 하루는 차라리 코믹 릴리프였다면, 이라고 바랄만큼 어설프고 황당하며 극의 전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맞지 않는 인물입니다. 다른 한명은 비중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일본어 처리 능력이 심각합니다. 캐스트 중 유일한 일본인인 오타니 료헤이는 비중이 없어 대사가 거의 없다는 게 웃지 못할 아이러니입니다.
개인적으로 전투씬조차 그리 인상깊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초반 이순신의 대장선이 전술을 펼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딱히 신빙성있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롱 샷을 너무 남발한 나머지, 배의 육중함을 부각시키기는 커녕, 바다라는 이름의 평원위에 있는 전차의 느낌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고증에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만, 연출로 신빙성을 표현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신빙성을 제대로 연출하지 못한 실수는 저격 장면에서 되풀이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백병전에 들어가 관객들을 지치게 만듭니다. 백병전 자체는 영화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으나, 이 백병전조차 과도한 카메라 워크와 슬로우 모션 연출로 인해 명량 해전 당시의 현장감보단 지극히 인공적인 느낌이 듭니다 (이는 슬로우 모션 롱테이크 샷에서 극에 달합니다). 문제는 <명량>은 <300>이 아닙니다. 신비로움과 극도적인 마초이즘을 매력으로 삼은 <300>과는 달리 <명량>은 어디까지나 실제 상황을 현장감있게 극화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며, 이런 인공적인 전투 연출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부합하지 않아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버드아이 샷 또한 영화의 전투를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하여 <300: 제국의 부활>의 해전과 같이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듭니다.
<명량>은 결국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재가 '이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명량>은 영화적 특색이 거의 없는 작품인데다가, 그래도 소재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던 작품을 부실한 악역과 신파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최악의 마무리로 끝을 맺어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좋습니다만, 영화는 이를 전혀 제대로 활용하거나 부각하지 않아 그 비장함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백성이라는 요소를 사용하려는 의도는 민족주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둘째치고 그 방식이 지극히 전통적이고 인공적이라 와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끼어들어간 느낌이 드는 쓸데없는 러브라인은 캐릭터 묘사의 부재 덕분에 그 임팩트는 전혀 없는 반면, 전투씬 중반의 페이스를 돌이킬 수 없이 흐트려버리는 주범일 정도로 그 해악이 심각합니다.
영화는 이순신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는데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영화로써 집중해야할 전개와 캐릭터 묘사는 무시하고, 이순신조차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 덕분에 클리셰로 떡칠된 전형적인 한국형 영웅으로만 부각됩니다. 게다가 감정을 이입해야할 캐릭터들의 묘사가 깊지 않아 <명량>은 내러티브적으론 완전한 실패입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런 빈약한 내러티브를 배경으로한, 시도때도 없이 요란한 사운드트랙 배치는 관객들이 감정에 무감각하게 되도록 만듭니다. 감정이란 잔잔히 다가오거나 한번에 쎄게 나와야 그 충격이 쎄지는 법인데, <명량>은 회오리 바람처럼 뺨을 주구장창 때리기만 하여 관객들의 감각을 둔해지게만 합니다.
이순신은 미화가 됬든 안됬든 굉장한 영웅입니다. 실존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니 더욱 대단하죠. 하지만 그래서 극화가 힘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이 완벽하지 않음으로써 영생을 얻은 '캐릭터'들이듯, 완벽한 인간을 '캐릭터'로써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은 탁월한 묘사가 없으면 흥미가 떨어지 마련입니다. 결국 <명량>은 이런 위대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묘사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이순신을 보좌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한줄평: "<최종병기 활>은 나쁘지 않은 영화였구나."
- 내가 한국적인 정서가 없어서일까, 그냥 정신을 놓고 봐도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었다. 근데 <서편제>를 보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영화가 문제일지도.
- <서편제>하니 생각난다. 도도 다카토라 역의 김명곤 씨는 연기는 물론이고 일본어 발음도 괜찮았다. 사실 분장 덕분에 영화 끝날 때까지 일본인 배우인줄 알았다(...).
- 마지막의 충각 장면에선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하였다. 충각 장면의 고증이 문제라는게 아니다. 영화는 고증을 무조건 맞출 필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설득력이 있어야한다. <명량>에서의 충각 장면은 배가 배를 박는다라는 느낌이 전혀 살아있지 않다. 이는 CG의 문제가 아니라 촬영과 편집의 문제다.
- 그래, 그래서 이번엔 호랑이가 아니라 백성이냐.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순신이 꿈을 꾸는 장면과 구선이 불탈 때 오열하는 장면은 대단했다. 영화 최고의 장면이라 해도 손색없다. 그 한 장면으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역시 최민식. 영화의 다른 씬들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 <한산도>는 제대로 나왔으면 한다. 적어도 학익진, 구선등의 등장으로 전투 시퀀스만큼은 더욱 다채로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준사도 이때 캐릭터가 더 잘 다듬어지지 않을까.
- 그나저나 캐나다에서 마지막으로 본 한국 영화가 다름아닌 <최종병기 활>이였는데 이번에도 또 김한민 감독 작품을 봤다.
글도 잘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