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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영화] [DAY29] 레베카 (Rebecca, 1940) (0) 2014/09/08 PM 01:45

제목: 레베카 (Rebecca)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개봉년도: 1940년
장르: 드라마, 고딕 호러

히치콕 감독의 첫 헐리우드 진출작이자 유일한 아카데미 수상작인 <레베카>는 의외로 <이창>,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새>, <사이코>등 명작들과 비교하면 약간 인지도가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이 퀄리티의 높고 낮음을 넘어 이미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레베카>가 그런 영화들과 다른 궤를 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레베카>는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에서 많이 사용했던 팜므 파탈의 캐릭터 스터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미 죽은 '레베카'가 주인공이 새로 시집온 맨덜리 저택의 모든 사람들을 아직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초반의 로맨스스러운 분위기를 벗어버리고 고딕 호러풍의 드라마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이 레베카로 인해 여러 인물들이 서로 얽히는 드라마로 보여주며 이윽고 각 인물들이 극단적으로 치닺게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비록 낯선 저택에서의 죽음이라는, 극도로 전형적인 미스테리 클리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레베카>는 장르적 한계에 부딫치지않고 여유롭게 흘러가며 각각 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영화입니다.

히치콕 감독은 아예 처음부터 이런 장르적 클리셰를 이용하여 복선을 치밀하게 계산합니다. 초반의 맥빠진다고 느껴질 수 있는 멜로 분위기는 고작 2-30분만에 한 영화를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절묘하게 주인공인 화자가 내심 동경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비꼬아 놓습니다. 이런 초반 분위기는 영화 중후반에 펼쳐질 음산한 내러티브의 대칭점으로 쓰여지는 한편,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성숙해질 주인공의 내면 상태에 대해서도 암시를 합니다 (예로 영화 초중반에 맥심이 주인공에게 "자기는 너무 순진해"라고 몇번 말합니다).

히치콕 감독은 이 영화의 대부분이 펼쳐지는 '맨덜리' 저택을 참 흥미롭게 사용합니다. 분명 고용인이 꽤 있는 곳이지만 주인공에겐 이 저택은 크고 텅 빈 으스스한 공간입니다. 실제로 이런 느낌을 극대화 시킨 여러 롱 샷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저택에 파묻혀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맨덜리'가 영화 내에서 '레베카'를 시각화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굉장히 적절한 연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레베카의 방은 이런 히치콕 감독의 생각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공간으로, 하얀 커튼과 마치 아직도 누가 살고 있는 듯이 깨끗하면서도 미묘하게 이질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은 실제 등장하지도 않는 캐릭터인 레베카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레베카와 맨덜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이라는 개념을 더욱 더 부각시킵니다.

맥심은 극 중 추억이 가지는 영원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에게 레베카는 현재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시무시합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약간 지쳐있는 마스크는 맥심이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할 수가 없고, 레베카가 익사할 당시 타고 있던 배처럼 호수 밑바닥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캐릭터를 절묘하게 묘사합니다. 실제로 맥심은 언제나 비관적이고, 주인공과의 사랑도 현재보단 허니문때 찍은 '과거'를 감상하며 과거가 가지는 영원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그가 그에겐 이미 과거의 인물인 레베카에 잡혀살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레베카>는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하기에 매우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영화의 두 남자 등장인물인 맥심과 파벨은 '레베카'라는 과거에 묶여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파벨의 경운 과거를 다시 들춰내어 이용하려는 인물에 가깝지만, 이 또한 그가 과거를 이용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얄궂은 사실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내 비중있는 사람 중 성장해가는 사람은 여성인 주인공밖에 없습니다. 영화내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정반대의 대칭점인 댄버스 부인과 대립하며 마침내 레베카를 떨쳐버리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팜므 파탈으로써의 캐릭터가 완성된 레베카와 댄버스 부인 사이로 주인공 또한 자립심이 강한 팜므 파탈 캐릭터로 바뀌어 가면서 말그대로 영화가 '여인천하'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흔히 <레베카>를 논할 때 댄버스 부인을 연기한 주디스 앤더슨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많이 칭송하지만, 조안 폰테인이 보여준 성장하는 주인공 또한 <레베카>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댄버스 부인에 의해 주인공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다른 영화였었다면 원작이 있던 말건 남자 주인공인 맥심이 여자 주인공을 구하는 시나리오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레베카>에선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영화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캐릭터를 여성으로 묘사하고 입체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여자 주인공 또한 성장하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맥심의 동반자로써 부각되며, 레베카 또한 전혀 다른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영화가 레베카를 묘사한 부분엔 불만을 표할 페미니스트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당시, 아니 현재로써도, 이렇게까지 여성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대중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네요.

한줄평: "과거, 그리고 현재. 바뀌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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