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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야기] 너의 이름은.을 보고 (2) 2017/01/17 PM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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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영화다. 재난이라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눈높이에 맞추어 만들어낸 것은 둘째치고, 그것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걸맞게 환상적인 장치들로 풀어나간 것이 마음에 든다. 신카이 감독의 장기인 미려한 비주얼들은 눈을 즐겁게 만들지만, 그 미려한 비주얼중 단연 돋보이는 장면이 사실은 소름기치는 공포를 표현한다는 패러독스 또한 신선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감독이 "선"이라는 요소를 영화적으로 연출해낸 방식이였다. 이 영화에서 선은 사람을 이어주는 끈과 사람과 사람, 현재와 과거, 꿈과 현실을 나누는 경계선으로도 보여진다. 물론 "선"이란 요소를 이렇게 이중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너의 이름은.>이 유일하지는 않다. 경계선만을 가지고 봤을 때엔 분단이라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가진 한국 영화나 문화의 경계선의 모호함을 자랑하는 터키 영화도 눈에 띈다 (파티 아킨 여러 영화중 <미치고 싶을 때>가 이 모호함을 상징적으로 굉장히 잘 표현한다). 허나 <너의 이름은.>이 가진 강점은 애니메이션이라 매체다. 애니메이션은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고, 그림은 선과 선으로써 이루어진 시각 매체의 가장 근본적인 시발점이다. 그런 선과 선이 움직이며 서로와 맞닿고, 끊어지고, 사라지고, 나타난 것이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신카이 감독은 이를 인지하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영화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끈은 사실 너무 뻔하게 사용되기에 그다지 분석할만한 요소가 없다. 허나 감독이 상징적 경계선을 쓰는 연출들은 눈여겨볼만한 가치가 많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모티프가 바로 선이 스크린 정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연출들이다. 이는 중후반의 클라이맥스적인 장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위 샷). 다른 영화들, 특히 국경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가진 영화들이 경계선을 사회적 경계선이라는 인공적인 부조리와 씁쓸함을 나타낸다면 (애니메이션으로 예를 들자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AT필드), <너의 이름은.>의 경계선은 어느정도 운명론적인, 자연의 흐름으로 본다. 영화 중반의 한 장소에서 여주인공의 할머니가 작은 내천을 보고 "여기를 넘으면 황천이란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것을 직접적으로 은유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열쇠중 하나인 혜성 또한, 실제 혜성이 가진 "점"이라는 물질적, 실질적 특성보다 사람들이 혜성에 가진 이미지인 혜성의 꼬리를 선으로써 표현하여 주인공들을 연결시키고, 분단시킨다.

허나 신카이 감독이 혜성이 가진 "점"이라는 물질적 특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점"이야 말로 영화내에 깔려 있는 (반)운명론적인 이미지중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있다 (자세히는 스포라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봤을 때 영화의 제목이 가진 마침표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온점은 끝을 나타낸다. 허나 이 영화는 "선"을 도구로써로하여 서사적으로든 연출적으로든 "점"을 극복하려한다. 허나 그게 맞는 시각일까? 바꿔 말하자면 선과 점의 실존 자체는 자연의 흐름처럼 거스를 수 없지만, 그 선과 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대안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자연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만, 그것을 딛고 살아가는 것 또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너의 이름은.>의 운명론적 이미지들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특히 혜성을 눈동자에 담는 연출은 그냥보면 흔한 연출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엔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런 휴머니즘은 영화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경계선의 연출로써 가장 크게 와닿는다. 영화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티프가 바로 미닫이문이 닫고 열리는 것을 스크린 정중앙에 놓고 보여주는 샷들이다. 이는 전통건물인 미츠하 집의 미닫이뿐만 아니라 도쿄의 지하철 문과 학교 교실의 문등에서도 쓰이는 연출이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문이란 한 개체가 다른 세상을 향해 벽을 여는 시각적 의미를 담는다. 허나 이는 서양권에서 자주쓰이는 여닫이문에 해당한다. 여닫이문은 상징적으로 개인중심적이기에 "여는 개체"가 "열린 세상"에 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미닫이문은 상호경계선이라 볼 수 있다. 어느한쪽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이 양방향 모든 관점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구도적으론 정반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직각)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자주 쓰던 일본 전통집 내의 딥포커스와 의미적으로 달라도 상징적으론 무관하지 않다.

이 미닫이문은 영화내에서 의도적으로 (미츠하가 방문을 열 때) 혹은 비의도적으로 (도쿄 지하철) 열린다. 영화는 경계선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움직이게한다. 경계선 자체는 마치 자연의 산물처럼 부동이지만, 그것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이 유동적 경계선은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열거나 혹은 열어진 상황을 인지하여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영화는 운명론적 흐름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에 인간적 의지의 개입을 허가하여 영화를 지극히 휴머니스트적으로 탈바꿈시킨다. 열고 닫히는 경계선들이 영화 내의 시간, 장소, 관계등을 모호한 상태로 지속시켜 주인공들이 원하는 하나의 "점", 즉 영화 제목이 내포한 마침표로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재난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자연적 순리를 개인의 드라마라는 인본주의적 연출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재해 트라우마를 개인의 관점에서 보는 영화로써 이는 연출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굉장히 알맞는것이다.



1. 영화가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끝나서 당황했다.
2. 혼모노가 없었다. 다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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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gitz!!    친구신청

미닫이문 연출 설명을 여닫이문과 함께 해주셔서 이해가 잘 됬습니다.

마지막에 노래깔리고 눈내리는 도쿄전경 보여줄때 거기서 끝나지 말라고 속으로

엄청 조마조마했었네요 ㅋ

용기ykz    친구신청

추천 버튼이 없네요. ;ㅁ;
잘 읽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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