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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야기] 라라 랜드를 보고 (1) 2017/01/24 PM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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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랜드>의 스토리는 매력적이고 여운이 남지만 딱히 전에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LA의 꿈과 현실이라는 주제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혹은 포스트-헐리우드 영화에서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울궈먹었던 소재다. 고전중의 고전인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부터, 꿈과 현실의 뒤틀림을 가장 영화적으로 표현한 작품 중 하나인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그리고 헐리우드를 비(非)헐리우드의 시선에서 풀이한 (찍은 것도 헐리우드가 아닌!) 데이빗 크로넌버그의 <맵스 투 더 스타즈>까지, 소재 자체는 그닥 신선하진 않다. 특히 <라라 랜드>가 이 영화들과의 차별점으로 가지고 있는, 꿈이라는 열망에 가지는 아련함은 오히려 헐리우드를 한정한 소재가 아닌 다른 비슷한 류의 영화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소재다. 허나 대부분의 고전들이 그렇듯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메세지나 스토리의 참신함보단 스토리텔링의 적합성이 아닐까.


뮤지컬 영화의 특징점은 바로 노래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대사보다 노래는 감정을 전달하는데 더 즉각적이다. 마치 글보다 그림이 정보를 전달하는데 훨씬 더 즉각적인거랑 비슷하다. 이는 강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현실성, 혹은 현장감이라는, 영화는 매체가 가지는 특징점을 대담하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라 랜드>는 굉장히 흥미롭다. 현실감, 혹은 현장감이라는 영화적 특성을 뮤지컬 구조를 빌려 기초부터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라라 랜드>의 오프닝 시퀀스인 LA 고가도로에서의 플래쉬몹 롱테이크는 영화의 첫인상으로써 완벽하다.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차에서 나와 짜맞춘듯이 안무를 하며 카메라 앞에서 넘버를 공연하는 것을 보면 지루한 현실이 한순간에 마법같은 판타지로 바뀌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영화에서 꾸준히 강조하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실제 LA 고가도로에서 찍었는데, 이를 롱테이크 (물론 요즘 대부분의 롱테이크처럼 다중 카메라의 짜집기겠지만)로 안무연출을 했다는 것은 대단하다. 허나, 왜 꼭 그래야만 했을까?


영화에서 소위 "세트티가 나는" 장면이 실제 로케이션 촬영인 장면인 경우는 꽤 많다. 3개를 꼽자면 역시 오프닝 시퀀스, 그리피스 공원의 마운트 헐리우드 드라이브에서의 듀엣 (포스터에 있는 그곳), 그리고 그리피스 관측소 장면이라고 뽑을 수 있겠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뮤지컬 구간이 5개라고 볼 수 있는데 (오프닝, 마운트 헐리우드 드라이브 듀엣, 그리피스 관측소, "City of Stars" 듀엣, 마지막 "판타지"), 이 중 세개가 이런 느낌이다. 이 곳들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이 곳에서 촬영을 했다는 영화적 의미에 더욱 중점을 두고 싶다.


이미 말한 오프닝 시퀀스는 일단 제쳐두고, 마운트 헐리우드 드라이브 씬에 집중해보자. 마운트 헐리우드 드라이브는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과 프로듀서들의 집이 줄지어 있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근처다. 즉, 헐리우드에 대한 동경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가장 마법과 가까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씬도 굉장히 마법적이다. 보랏빛 석양이 은은하게 비추는 이 장면은 흡사 네온을 강조하는 세트에서 찍은 듯 싶지만, 사실 로케이션 촬영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이 장면은 꿈을 쟁취할 수 없는 미아(엠마 스톤 분)가 꿈에 빠져사는 낭만적인 세베스천(라이언 고슬링)과 처음으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다. 즉, 꿈과 현실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람과 그 사람을 동경하게 되는 사람이 서로의 벽을 허물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이는 결국 미아와 세베스천의 벽만이 허무는 것만이 아닌, 그 둘이 당시 상징하는 꿈과 현실의 벽이 모호해지는 구간이다. 이를 "세트 디자인"처럼 보이는 마법적인 로케이션 촬영으로 디에게시스적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실제 프로덕션 레벨에서부터 그런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그리피스 관측소 씬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이 커플이 여기 온 이유부터가 <이유없는 반항>의 스크리닝이 영사기사의 실수로 중단되서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오마쥬이지 않을까. 그 의도는 정반대이지만). 그래서 이 둘은 영화 로케를 직접 찾아와서 영화를 직접 체험하기로 한다. 즉, 영화라는 꿈을 나누는 경계를 그 실제되는 장소를 찾아가 허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곳에서, 특히 플래네타리움 씬에서 완벽히 꿈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둘이 맺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러티브적으로 이런 로케이션에서 세트로의 전환은 씁쓸하면서도 완벽하다. 마법적인 현실이 마법이 되었을 때 더이상 현실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선 그럼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여러층으로 진행된다. 먼저, 가장 쉬운 것은 이 커플이 <이유없는 반항>을 따라 그리피스 관측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 내의 영화인 <이유없는 반항>은 디에게시스적으로 꿈의 영역이고, 이를 디에게시스 안에서 허무는 것이다. 두번째는, 캐릭터스터디적으로 봤을 때다. 현실에 살아가는 두 남녀가 서로가 가진 꿈이라는 열정에 이끌려 맺어진다는 것 또한 현실과 꿈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것을 뜻한다. 세번째는 영화제작 측면에서의 관점이다. 여기선 실제 그리피스 관측소의 로케이션이 별들로 가득한 우주공간이 되면서 로케이션에서 세트의 전환, 그리고 실존하는 장소에서 상상된 장소로써의 전환이라는 두 개의 연관된 방향으로 경계가 흐려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영화철학적인 시각에서다. 영화 내 공간과 극장 내의 공간, 즉 영화와 관객들의 벽이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 이는 저 장면이 실존하는 장소, 특히 실제로 갈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영화라는 꿈과 관객의 현실과의 경계를 어느정도 허물어준다. 디에게시스적으로 이 커플이 <이유없는 반항>을 따라 그리피스 관측소를 간 것처럼 관객들도 현실에서 <라라 랜드>를 따라 그리피스 관측소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로케이션을 자주 쓰지 않는 후반부(특히 세트장을 노골적으로 시사하는 마지막 "판타지" 몽타주)에선 세트라는 상상된 장소에서 촬영되었기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 마법의 비현실성을 재확인해준다. 즉, 영화가 꿈과 현실이라는 경계의 모호함에서 낭만을 찾았을 때인 초중반부의 장면들은 로케이션 촬영으로 인해 그 마법의 현실성, 즉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흐트려줬다면, 후반의 장면들은 (어느정도) 세트의 인위적임 덕분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상기시킨다.


그렇게 봤을 때, <라라 랜드>는 다른 영화보다 더욱 스토리보단 카메라 앞에서 뭐가 찍혔는가가 중요하다. 즉, 미장센에서부터 철학적, 상징적, 서사적 테마를 매체적 관점에서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라라 랜드>는 영화의 연극적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특히 연극은 스크린이라는 막이 부재하기에 영화보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더욱 모호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허나 <라라 랜드>는 이를 가지고 영화의 특성을 살려 (특히 로케이션 촬영) 매체적으로 이 경계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만든다. <위플래시>가 서사에 중점을 뒀다면, <라라 랜드>는 영화 그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데미안 샤젤 감독이 여기서 어디로 갈까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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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겟타    친구신청

잘 읽었습니다^^ 초반 롱테이크는 세개의 신으로 되어있다고 하더라구요~ 생각하신대로 이어 붙인거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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