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과인데
설마 석사과정중 건프라에 대해 글을 쓸줄은 몰랐습니다.
본인: 교수님 해도되요?
교수: 콜!
설마 이럴줄....
아니 확실히 우리 교수님이 일본 서브컬쳐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저번에 쓰신 책이 카도카와 미디어 믹스가 주제이긴하지만...
이거 한번 확장시켜서 제대로된 논문이나 졸업 논문으로 쓸 생각없냐네요
건덕으로써
건프라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과정 졸업한다
덕업일치인가요?
건프라에 대해서 쓰는데 솔직히 헤겔에 이집트 신앙에 대해까지 이야기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몇몇부분을 함 번역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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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오다이바의 가장 눈에 띄는 어트랙션중 하나이자, 1979년부터 계속되어온 <건담> 시리즈의 성공의 거대한 상징인 실제 스케일의 RX-78-2 건담이 해체되었다. 2009년 처음 건설된 이 건축물은 시즈오카에서 잠시 있었던 적을 제외하곤 로도스의 거인처럼 이 도쿄의 인공섬을 빛냈다. 시리즈 30주년과 2020년 도쿄 올림픽 채택 홍보를 위해 건설되어 처음으로 현실에 실제 크기로 강림한 이 건담은 여러 기믹들도 (빛나는 눈, 연기가 나오는 덕트등) 갖추어져 그 실존감을 뽐냈다. 이 건축물이 거인으로써 지키고 있던 오다이바의 다이브 시티 몰은 "건담 프론트 도쿄"라는 박물관 겸 스토어가 자리잡았었고, 이 곳은 시즈오카에 이어 제 2의 건담 메카가 되었다. 비록 2017년에 RX-78-2 건담은 철거되었지만, 그 자리에는 유니콘 건담이라는 새롭 더 큰 건담이 더욱 진보된 기믹들로 무장해 자리잡았고, 일시적인 이벤트 스토어에 지나지 않았던 건담 프론트 도쿄는 건담 베이스 도쿄로 다시 개설되어 오다이바 상업구역의 영구적인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거의 40년이 지났고, 건담은 철거되었지만 <건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아이덴티티를 재창조하여 저변을 늘릴 뿐이다. 이 오다이바의 RX-78-2 건담과 새로운 유니콘 건담은 그 예중 하나일 뿐이다.
<건담>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물질적 묘사(material representation)으로 성공을 거듭해 왔다. 반다이의 2017년 결산 리포트에 따르면 건담이 첫 방영했을 때부터 2016년 마지막 회계 분기까지 약 459,400,000개의 <건담> 플라스틱 모델 상품을 판매했다. 새로운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 또한 거의 매년 일본 TV에 방영되고 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반다이로써 <건담>이 반다이 내의 애니, 하비 사업부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따로 떼어 놓고 말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이 리포트는 먼저 그런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건담 플라스틱 모델 (통칭 "건프라")의 미디어 관리체계 시점에서의 관계를 논하고자 한다. <건담>과 건프라의 관계는 컨텐츠-장난감의 균형으로 전개하는 다른 멀티미디어 프랜차이즈와는 다르게 특유의 쌍방향적 관계가 유독 드러난다고 보기에, 이 특성이 가지는 철학적, 특히 생산 과정의, 영향을 구조주의적 접근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이론을 통해 <건담>이라는 시리즈가 어떻게 지속적인 성과를 유지할 수 있었지에 대해서도 파해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에 침식된 매체 문화에 <건담>이 어떻게 스스로를 재창조하여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 재해석으로 인해 <건담> 시리즈의 매체 생태계media ecology가 어떻게 불안정하게 지속되고, 그 의의는 무엇인지 또한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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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인 접근으론 <건담>과 건프라의 관계는 단순한 이원론으로 보일 수 있다. 즉, <건담>이라는 시청각 컨텐츠가 그 기반을 마련하고, 건프라는 그 컨텐츠를 기반으로 삼아 머천다이징을 전개하는, 멀티미디어 프랜차이징의 기본적은 모델이다. 이는 <건담>이라는 컨텐츠는 컨텐츠만으로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매체이고, 건프라는 그 실존성으로 물질적 접근을 강요하는 매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허나, 이 두 접근으론 한가지 역설에 다다르게 된다. <건담> 시리즈는 기반이지만 무형이고, 건프라는 매체로써 그 자체는 실존하지만 어디까지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따라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둘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시뮬레이트하며 원본은 사라지는" 보드리야르의 4번째 이미지 단계에 다다르게된다. 허나 그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럼으로 이 둘의 관계를 단정짓기엔 이 둘은 둘다 매체로써, 특히 마케팅적인 관점에선, 물질적 특성을 강박적으로 강조시키려한다.
만약 단순한 비물질-물질이라는 이원론적 관점은 물론, 보드리야르의 이미지-이미지 시뮬라시옹 접근 또한 이 둘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충분치 않다면 이 둘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스타인버그의 매체 생태계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프랜차이즈의 각 미디어 아웃풋은 각각 접속점node로 작용한다. 애초에 이 관점에서 보면 둘의 이원론적 접근은 오히려 맞지 않다. 해체주의적 관점으로 보자는 것은 아니다. 아예 둘의 관계를 중요하게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건프라는 모두, 적어도 생산자의 관점과 이론적인 관점에선, 물질적이다. 그리고, 매체 생태계론에 따르면 <건담>과 건프라는 서로 대립하는 두개의 이원리가 아니고, 오히려 둘이 서로 먼저 소통을 하는 두개의 접속점일 뿐이다. 그러면 이 둘이 소비자를 접속시켜주는 것이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꾸는 것이 더 타당한다. 이는 헨리 젠킨스의 컨버전스 컬쳐과 함께 생각해보면 더욱 이해하기 쉬워진다. 즉, 내러티브 자체가 무형이고, <건담> 시리즈는 이를 전달하는 물질적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즈마 히로키의 포스트모던의 동물화를 생각해보면, 이 내러티브야 말로 하나의 데이터베이스 세계관이라 볼 수 있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건담" (<건담> 시리즈가 아닌, <건담>의 메카이자 내러티브적 결정점으로써의 "건담")이라는 관념으로 일원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건담"과 "건담"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내러티브가 유형의 매체로써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매체 생태계가 <건담> 프랜차이즈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모델은 <건담> 시리즈와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건담> 매체 생태계와, 나아가 "건담"과 <건담>/건프라의 이원론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선 "출발점"으로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건담> 시리즈의 물질성은 그 매체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 (물론 이 또한 어느정도 물질성이 동반된다. TV, VHS, DVD, 블루레이, 혹은 웹 애니메이션같은 경우는 데이터 센터 그 자체)보단 생산 방식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토마스 라마르의 "아니메 머신" 모델은 셀 애니메이션의 물질적 생산방식과 그로 인해 생기는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또한 <건담> 시리즈의 물질성을 정의하는데 가능한 모델이다. 펠릭스 구타리의 이론에서 따온 라마르의 "아니메 머신"은 가상의, 혹은 실존하는 장치 (이는 장 뤽 보드리와 크리스티앙 메츠의 "장치 이론"과도 관련이 없지 않다)의 집합체로써, 셀 애니메이션 생산 방식의 물질성이 어떻게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그리고 경제적 의의를 가지는지 이야기한다. 그가 사용하는 모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애니메이션 스탠드인데, 이 스탠드 자체의 물질적 특성과 스탠드에 투입되는 물질적 노동의 의의다. 한 프레임을 찍는 카메라, 셀 이미지를 수동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터, 이미지를 생산하는 동화 담당, 셀루로이드를 비추는 백라이트등, 여러가지 물질적인 장치로 애니메이션은 만들어진다. 즉, 생산자(반다이)의 관점에서는 애니메이션은 거대한 물질적 생산이다. 소비자에게의 전달만이 (적어도 표면적으론) 무형으로 보일 뿐이다. 즉, 애니메이션 자체가 머챈다이징의 기반인 무형의 컨텐츠인 것이 아닌 것이다.
이는 건프라 생산과정과 비교해보면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반다이의 건프라는 일본 모형업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시즈오카의 공장에서 모두 생산되는데, 반다이는 이 물질적 생산 과정을 하나의 어트랙션으로 광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즈오카의 반다이 공장은 하나의 관광지이자, 직원들은 <건담> 시리즈의 군복을 입고 노동을 한다. 반다이의 인젝션 머신은 업계에서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물건으로, 여러 색의 성형과 서로 다른 플라스틱의 동시 성형을 지원하는데, 반다이는 이 인젝션 머신을 소위 건담 컬러로 도색을 했을 뿐만 아니라 (즉, 건담을 만드는 건담), 아예 인젝션 머신 자체를 1/60 스케일 프라모델로 만들어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거기에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씌여있는 로고 또한 건프라의 물질적, 지리적 실존성을 더해준다. 이는 생산 과정 자체를 대중에게서 감추려는, 하청위주에 JIT(Just-in-time)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는 21세기 물류산업에 반하는 특이한 형태의 사업 전략이다.
이 인젝션 머신은 어찌보면 라마르의 "아니메 머신," 정확히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스탠드와 비슷하다. 반다이의 인젝션 머신은 변형성(플라스틱이 몰드를 통해 형태가 바뀌어진다)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의 프레임/런너를 생산하는 애니메이션 스탠드인 것이다. 런너 한장을 생산하는 과정은 (애니메이션 스탠드와 비교하며 보자면) 이러하다. 먼저, 컨셉 아트를 기반으로 3D 모델 프로그램으로 완성품의 목업을 만든다. 이는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보드 과정과 비슷하다. 그리고 나선 파츠를 분리하여 런너로 나눈다. 이는 각 셀루로이드 스케치를 만드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몰드를 만든다. 이는 셀을 합쳐 하나의 프레임을 조합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리고 폴리스티린을 주입하여 런너를 제작한다. 이는 조합된 셀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런너는, 마치 완성된 프레임이 카메라에서 필름으로 나오듯이, 인젝션 머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런너는 다른 런너들과 함께 조합되어 하나의 건프라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마치 애니메이션이 여러 프레임의 연속적인 나열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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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시리즈와 건프라가 생산과정때부터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론은 현실적인 예로 드러난다. <건담> 시리즈는 언제나 자신만의 건담(내러티브 내의 메카)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건담의 형성은 제작 준비 단계부터 시작된다. 즉, 선라이즈의 메카 디자이너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반다이 하비 사업부의 인원들까지 같이 합심하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건담"인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 00>의 메인 메카 디자이너인 에비카와 카네타케의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부터 반다이 하비 사업부의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건담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한다. 즉, <건담> 시리즈와 건프라는 같이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담이라는 메카는 <건담> 시리즈에서 내러티브의 중심 축이자, 중심 주제를 함축하는 하나의 서술적 상징으로 곧잘 사용된다 (에비카와가 참여한 <건담 00>에서 건담은 인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한 상징과 초월적 소통이라는 주제를 물질화한 상징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타 <건담> 시리즈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주제이다). 거기에 건담은 <건담> 시리즈의 얼굴 마담으로써 모든 마케팅과 머챈다이징 전략의 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건담은 <건담> 시리즈에 있어서 시각적, 서술적, 사업적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건담은 건프라뿐만 아니라 <건담>조차 앞선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즈마 히로키의 모델하에서) 건담은 하나의 대서사이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적어도 기존의 <건담> 프랜차이즈는 지극히 모더니즘적인 문학 구조의 산물인 것이다.
이는 인류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물질론적 접근과 비교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니얼 밀러는 프레드리히 헤겔의 <정신형상학>을 기반으로 인류는 자신이 만들어낸 물질적 거울 (실제, 혹은 은유적인)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나 그와 또 다르게, 만들어진 물체는 각자 자신만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내간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종교적 유물이 기원후 21세기에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듯이 말이다. 즉, 밀러로썬 비물질-물질 이원론이 단순히 원본-이미지라는 계층적 이원론으로 풀이될 수 없다고 보고, 그 둘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주장한다. 허나 독자적이지만 독립적이라고 볼 순 없다. 그 둘의 쌍방향적 소통은 밀러가 말하는 물질론의 중심이라 볼 수 있다. 린 메스켈의 이집트 종교에 대한 물질론적 접근 또한 그 궤를 같이 한다. 메스켈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 문화는 신들이 여러 물질적 이미지에 강림했다고 봤고, 그 과정또한 순간적인 것이 아닌 여러 사건을 통한다고 봤다. 이는 물론 <건담> 프랜차이즈의 매체 생태계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가상적 대서사가 분해되어 여러 물질적 매체를 통해 "강림"하여 소비자/신자와 소통하는 모델) 비물질-물질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관념-이미지의 이원론적 관계가 계층적 관계가 아닌 소통적 관계라는 것을 알려준다. 메스켈은 이런 물체들(이집트 신들의 조각품, 혹은 21세기 오타쿠 문화의 피규어/프라모델)을 중심으로 행해진 의식들은 비록 종교적 제스쳐로 시작되었지만, 훗날 사회적 제스쳐로 서서히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상 경험을 정의하게되는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이 조각품들은 신들의 이미지가 아닌 신들 그 자체가 되었다고 메스켈은 말한다. 메스켈의 고대 이집트 신앙을 현재에 빗대어 보면, 21세기의 신앙은 자본주의고, 그 의례인 소비로 상품들에 종교적(즉 경제적) 의의(가치)가 매겨지고, 상품 그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비물질적 이데올로기/신앙과 소비자/신자간의 소통의 매체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상품과 상품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의식을 통해 이 21세기 신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건담에도 통용된다. 만약 세트의 조각품이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세트 그 자체를 물질적으로 경험하는 매체였다면, 물질론적 접근으로써 건담의 프라모델은 건담 그 자체를 경험하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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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건프라는 "건담"이라는 이론적 관념 (<건담> 프랜차이즈의 대서사)을 물질적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반다이가 만들어낸 <건담> 프랜차이즈의 매체 생태계에 존재감을 나타내어 "건담"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각적 경험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스타인버그의 미디어 믹스 모델, 젠킨스의 컨버전스 컬쳐와 비슷하다. 하지만 건담은 반다이가 독점하고 있기에 하나의 일관된 대서사 ("건담"이라는 관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즈마의 대서사 세계관과 비슷하다. 허나 이는 21세기의 <건담> 프랜차이즈에 하나의 모순을 가져왔다. 40년간의 성공에 의해, <건담> 시리즈의 대서사는 노스탤지어뿐이 되었다. <건담>시리즈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내러티브(대서사)로 지탱되는 것이 아닌, 건담이라는 관념 그 자체가 기반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관념은 본래 존재하던 역사적 맥락을 잃었다. 요즘 <건담>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대로 맥락없는 빈 패러디와 역사적 관계성을 잃어버린 노스탤지어, 파스티슈의 집합체가 되었다. 건프라는 파스티슈로 점철된 신작의 기체가 아닌, 옛 기체들 또한 리뉴얼되어 발매되면서 "전버젼"과 비교를 하게되는 보드리야르적 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매체 생태계 구조는 모더니즘적 접근이지만, 소비자로써는 데이터베이스적인, 즉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만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론적으로 불안정하고 구조적으로 후퇴한 <건담> 프랜차이즈의 미디어 구조는 2010년경을 기점으로 현실로 다가왔다. <건담>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레벨5와 합작하여 야심차게 준비한 <기동전사 건담 AGE>가 보란듯이 실패한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반다이는 더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했다. <건담 빌드 파이터즈>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건프라 배틀이라는 주제를 가진 <건담 빌드 파이터즈>는 기본적으로 저연령대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만든, 진지하지 않은 (그리하여 PPL을 하기 훨씬 유용한) 작품이였다. 내용에서 오는 노골적인 메타내러티브는 제쳐두고라도, <건담 빌드 파이터즈>는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시대"에 드디어 다다른 작품이다. 이는 자잘한 셀프-패러디는 물론 건프라 자체를 홍보한다는 것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이오리 세이는 건프라샵 오너의 아들이지만, 따지고보면 이는 <건담 빌드 파이터즈> 전체의 시각적 알리고리에 가깝다. 건프라샵에 각 상품대마다 여러 건프라들을 전시해놓듯이, <건담 빌드 파이터즈> 또한 비슷하다. 아예 시리즈 자체를 건프라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옛 시리즈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인 기체의 매출은 늘었지만 활약 자체는 서사의 필요성에 의해 이뤄진 반면, <건담 빌드 파이터즈>는 아예 토너먼트라는 서사적 구조를 이용하여 주역 건프라들을 노골적으로 "전시"한다. 거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작은 등장을 하는 다른 건프라들과, 건프라들 자체가 서로 조합되기도 한다. 그리고 제임슨의 포스트모던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본래가지고 있던 역사적 맥락을 잃은채 건프라 자체로써 "삽입"된다. 이는 쉴세없이 몰아치는 셀프-패러디또한 마찬가지다. <건담 빌드 파이터즈>의 서사적 구조란 결국 예상이 되는 뻔한 큰 틀에 건프라를 흩어트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각본은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건담> 프랜차이즈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가지를 맥락없이 빼내어와 퍼즐로 끼워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캐릭터 또한 아즈마 히로키가 비판하는 "모에 캐릭터"처럼 모에 요소만 따와 적당히 옛 건담 캐릭터들의 클리셰에 적합시키며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 당연히 옛 몰드를 재활용하는 상품 전개 또한 비슷하다. <건담 빌드 파이터즈>는 <건담> 시리즈 사상 첫 거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프로젝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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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건담 빌드 파이터즈>가 시사하는 것은 건담, <건담>, 건프라, 이 모든 것이 구조주의적 이원론에서 "해방"되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신 대서사로 볼 수 있는 하나의 건담이라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건담, <건담>, 건프라가 서로를 따라하는 보드리야르적 함정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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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전 참고로 건빌파를 퍼건 이후 가장 재밌게 봤습니다.
포스트모던이고 뭐고 시1발 멋지면 그만이지 아즈마 히로키 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