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용검 -
등장인물
-“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
후세에 백여권에 달하는 모험일지를 남기며 [희대의 모험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
16세에 방문한 에스테리아에서의 모험을 시작으로
모험가로써 세계의 각지를 파트너 도기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
아프로카 대륙 알타고에서의 모험을 뒤로하고
이스파니의 땅을 따라서 북상중이다.
-“월 브레이커”도기 -
아돌을 첫 모험이 시작된 땅 에스테리아에서 만난 이후로
파트너로써 모험을 함께 하고 있다.
특출한 완력을 지닌 방랑자.
프롤로그
이스파니를 여행하는 도중, 오늘도 변함없이 아돌과 도기는 야영생활을 하고 있었다.
야생동물을 사냥하여 얻은 신선한 고기를 냄비에 익히고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소량의 허브를 넣은 후
미리 준비해둔 향신료로 간단히 맛을 낸다.
야성미(味)가 풍부한 맛이 혀를 감싸며 자극하자
두 사람은 오늘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식사 후, 도기는 바로 드러누웠고 아돌은 평소 일과를 시작했다.
허리의 검 집에서 검을 꺼내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검신.
자루의 정중앙에 박혀있는 보석에서는 농후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달빛과 겹쳐지며 한층 더 신비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돌이 아끼는 검 ---칼리오시리온(カリオシリオン)
알타고지방에서 획득한 한손 검이며 여러 고난을 함께 헤쳐 나온 검이다.
특별한 합성제조법과 “달의 비석(秘石)”이 박혀있는 것이 특징으로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참격은 물론이고 찌르기와 타격에도 뛰어난 편이라 말 그대로 최고의 검이었다.
연마석으로 정성을 다해서 갈고 오일을 바른 후 마지막엔 양털로 닦아 낸다.
실제론 전투가 끝날 때마다 간단하게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내키지 않았기에 이렇게 매일 정성을 다해서 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성이구만”
감탄한 듯 도기가 말을 걸었다.
“그렇지 뭐”
짧게 대답하고선 아돌은 손질을 끝마친 검을 가볍게 휘둘러 만족한 듯이 웃는다.
이전에도 그다지 무기의 손질을 게을리 한 건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특히나 열심인 것은 분명했다.
실은 이전에도 아돌은 전설 급의 보검을 얻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뭔지 모를 불가항력적인
일로 무기를 비롯한 장비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모험에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곤 하지만 이렇게나 매번 계속되니
제아무리 아돌이라도 자신은 뭔가 저주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이 검을 소중히 다루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지!
하고 아돌은 결심을 했다.
Act 1.
1
다음날, 숲의 샛길을 걷고 있던 아돌은 무언가의 기척을 느끼고 발길을 멈추었다.
----이 울음소리는… 늑대?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야, 무리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인간의 목소리…
“왜 그래, 아돌?”
도기는 아돌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물었다.
“누군가 습격당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먼저 가볼게”
“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기를 뒤로 하고 뛰쳐나갔다.
나무 아래에 소녀가 있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팔로 얼굴을 감싸며
심하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둘러싸는 듯이
여러 마리의 늑대가 무리를 지어 있었고, 지금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한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아돌은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달려들어 곧장 강력한 일섬을 날렸다.
횡베기의 일격은 검날이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늑대 중 한 마리를 포착하여 단번에 분단시켜버렸다.
그 단말마에 호응을 하듯이 다른 늑대들은 타깃을
아돌로 바꾸고 일제히 덤벼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수는 대략, 여덟 마리.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으나 아돌에게 있어선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늑대 전부의 주의를 끈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으니까.
곧장 덮쳐오는 두 마리의 늑대를 뛰어서 피하고
시간차로 뛰어 들어온 세 번째를
베어버리고 네 번째를 차서 날려버리고
마지막으로 네 방향에서 동시에 습격해오는 네 마리에 대해서
몸을 축으로 크게 회전하여 검을 휘둘렀다.
“하앗----!!!”
흐르는 듯한 움직임과 검격으로 순식간에 늑대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예리한 시선으로 늑대들을 노려보는 아돌.
본능적으로 이겨낼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남은 늑대들은 신중하게 아돌에게서 거리를 벌리더니 숲 안쪽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부근을 둘러보곤 안전한 것을 확인한 후, 아돌은 검을 집어넣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딱 봐선 상처는 입지 않은 모양이지만
공포로 작게나마 떨고 있는 듯하였다.
아돌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고 가능한 자극을 하지 않도록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그러자 소녀는 아돌을 올려보았고, 그가 내밀었던 손을 --“짝”하고 쳐내었다.
분노를 담아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꾹 쥔 주먹은 지금도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예리한 안광으로 아돌을 째려보고는
분한 나머지 눈시울엔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저기…”
제 아무리 사람 구하는데 정평이 나있던 빨간머리의 아돌도 이런 적은 처음인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준비를 해서 모처럼 잘 될 수 있었는데 어째서 방해를 하는 거야!!
나는, 나는…“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소녀. 때마침 그때 도기가 도착을 했다.
전투준비를 해서 늦어진 모양이었지만
멍하니 서 있던 아돌과 소녀를 교차해서 보고는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 말야, 또 여자아이를 울려버린 거냐?”
“또라니 무슨 소릴하는 거야…”
그 후, 영문도 모른 채 아돌은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
“갑옷의 성능실험이라고?”
의아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올리는 도기, 아돌도 내심 동의했다.
마침내 진정이 된 소녀에게 사정을 물었더니
그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니까. 이래봬도 나는 대장장이란 말야.”
다시금 소녀의 행색을 보니 분명 위화감이 있었다.
신장은 아돌보다 머리하나 정도 낮으며 두터워 보이는
전신갑옷을 입은 거 치곤 거친 일에 익숙해 보이진 않았다.
찰랑찰랑한 금발이 어깨까지 나있으며 단정한 이목구비엔
아직 약간 앳된 끼가 남아있었다.
“그러면… 뭐냐? 그 몸에 입고 있는 갑옷은 직접 두드렸단 소린가?”
“그렇군. 외견과 다르게 중량은 그렇게 크진 않아. 밸런스가 잡힌 꽤 괜찮은 방어구 같아.”
아돌의 말을 들은 소녀는 다소 기분이 좋아졌다.
“그 말대로야. 너, 꽤나 보는 눈이 있는 걸? 이름이 뭐야?”
“아돌 크리스틴, 모험가야.”
“이 몸은 도기, 이 녀석의 파트너지.”
“헤에~, 모험가인가.”
소녀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두 사람을 보았다.
“나는 세실리카 켄시아. 방금 말한 대로 대장장이야.”
“아무튼… 방금 전에 미안했어. 설마 방해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아돌은 미안한 듯이 소녀 세실리카에게 사과를 했다.
“누가 아니래. 얼마나 준비에 시간을 허비했는지 알기나 해?”
“그렇다곤 해도, 짐승에게 자신을 공격하게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도기의 물음에 소녀는 곧바로 대답을 했다.
“그 정도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야.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그 눈빛에서는 분명 장인의 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보였다.
아돌과 도기는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곧 세실리카의 얼굴은 어두워져버렸다.
“이렇게 말해도, 최근엔 아무래도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서
좀 지나쳤다는 점은 부정하진 않겠어.”
“역시 평소엔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건 아닌 모양이군.”
“맞아, 보통은 멧돼지 정도로 실험을 했었어.”
“그것도 지나치다고 보는데…”
아돌과 도기는 아연실색했다.
“그러니까 나도 약간 너에게 분풀이를 해버리고만 거야, 미안해.”
세실리카는 다소 나빴다는 점을 사과하였으며 그 후 세 명은
훈훈한 분위기로 대화를 해나갔다.
“이것도 무언가의 인연이니 너희들의 무기를 보여줘. 내가 손질을 해줄게.”
점차 기분이 풀린 세실리카가 그렇게 제안을 하였고 아돌은 허리춤에서
애검(愛劍) 칼리오시리온을 꺼냈다. 그 순간---
“뭣, 아아…”
세실리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돌을, 정확하게는
아돌이 손에 든 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야, 이 검은----!!?”
그리고는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라니, 검이잖아?”
도기가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로 세실리카를 보았다.
“그런 당연한 거 말고! 이름은?”
“칼리오시리온.” 아돌이 대답했다.
“칼리오시리온…굉장해…!”
다소 강인하게 아돌의 손에서 검을 빼앗듯이 든 후,
세실리카는 도취된 표정으로 검신을 매만졌다.
“저기…세실리카…씨?”
“세실리카라고 불러도 돼. 것보다 이거야, 이거.”
시선을 검에게서 떼지 않은 채 특별히 말을 이어나가지도 않은 채
세실리카는 검을 매만졌다.
“매우 잘 베이는 편이라… 조심하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하아? 너 말야, 대장장이를 얕보는 거야? 그런 것쯤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다고!
이건 정말 굉장한 수준의 무기라는 건!”
“응, 그렇긴 한데…”
“형태는 롱소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각도와 중량분배에 의해서
클레이모어나 레이피어로도 보이는 점이 신기하네. 모순되어 있는 듯한
언밸런스함이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게다가 중앙에 박혀있는
이 보석, 결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힘의 맥동(脈動)을
내뿜고 있어! 뭐야, 이건!? 대체 이건 뭐냐고!!?”
“일단은 … 진정을 하고, 응?”
“아돌 크리스틴!”
“으, 응. 왜?”
세실리카의 기세에 압도되어 아돌이 뒤로 물러났다.
“이 검, 나에게 넘겨주지 않을래?”
“그건 안돼”
단호한 거절이었다.
“물론 거저 달라고는 안할게.”
세실리카는 한동안 생각한 뒤,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의 돈을 낼게. 어때?”
“안 돼.”그 뒤로 계속되는 단위가 무엇인지 듣지도 않고 아돌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럼… 이 건 어때!!?”
손가락을 세 개로 늘린 세실리카였지만 아돌은 고개를 횡으로 흔들었다.
“에잇… 자, 다 가져가, 이 도둑놈!”
떨면서도 다섯 손가락을 다 편 세실리카에게 역시나 아돌은 고개를 횡으로 흔들었다.
“이, 이 금액으로도 만족을 하지 않다니, 너 인간이 아니지!?”
경악한 표정을 띄우는 세실리카에게 아돌은 설득하듯이 대답했다.
“돈의 문제가 아니야”
그것을 들은 세실리카는 당분간 침묵을 하고 나서 갑자기,
얼굴빛을 한층 더 절망의 색으로 물들였다.
“아!? 알겠어! 너, 내 몸이 목적인거지!!”
“엣?”
“크으…좋아, 어차피 대장장이의 인생에 바치기로 한 몸”
비장한 결의를 내비추고 세실리카는 꽈당 하고
고개를 위로 젖히고 드러누웠다.
“자, 어서 오라고!”
“자, 어서 오라고, 라고 해도…”
“아버지, 어머니, 불효막심한 딸을 모쪼록 용서해주세요.”
세실리카는 얼굴을 붉히면서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전신갑옷을
입고 있는 탓인지 어딘가 우습게만 보였다.
“저기…”
“최소한, 한 가지만 부탁이… 거기 덩치 큰 남자, 당분간 어딘가 가있어 주지 않겠어?
보여 지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그… 부끄러우니까…”
“오오, 알았어! 그럼 파트너, 열심히 하라고!”
웃으면서 아돌의 어깨를 두드린 뒤, 도기는 몸을 일으켜 이 장소를 벗어나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도기”
“어째서 멈춰 세우는 거야!? 하앗!? 설마 두 사람이서 나를… 이 무슨 해괴망측한!!”
세실리카는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층 더 몸을 떨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데…”
“…나, 나는 처음, 이니까, 두 사람 동시에…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게…”
점차 작게만 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면서 세실리카는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그 상황에서 뭔가 말을 하려고 한 아돌을 방해하는 듯이 발언을 한 것은 도기였다.
“괜찮아, 아가씨. 나는 됐으니까 두 사람이서 오붓이 보내라고.”
“그래도 돼?”
“그래, 나는 저 근처에서 낚시라도 하고 올 테니 나중에 함께 먹자고.”
“도기 양반…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뭐, 이쯤이야”
그 순간, 세실리카와 도기의 사이에서 수수께끼의 우정이 생겨났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두 사람, 모두!”
깊은 한숨과 함께 아돌이 다시 대화에 참가했다.
“도기, 지금 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장난이 지나쳐”
“하하, 미안. 미안. 아가씨 쪽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말야.”
놀란 얼굴로 세실리카는 아돌을 노려보았다.
“아, 아직 더 뭔가 요구할 셈인 거냐, 이 귀축 빨간 머리!”
“아무 것도 요구 하지 않는다니까. 애당초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이 검을 팔 생각은 없어”
“에? 내 몸이 목적이 아닌 거야?”
“필요 없습니다.”
“그럼 나는 뭘 위해서 이런 수치스러운 대화를 했던 거야!?”
“나도 잘…”
침묵이 이 장소에 내려앉았다.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세실리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되어 당장이라도 끓어올라 넘쳐나올 것만 같았다.
“자, 잘도 처녀의 순정을 가지고 놀았겠다, 이 귀축 빨간 머리!!”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데…”
어디로 발산하면 좋을지 모르는 수치심과 분노를 일단 우선은 아돌에게 퍼붓기로 한 세실리카였다.
“그래서, 어째서 팔려고 하질 않는 건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세셀리카는 마침내 냉정함을 되찾았고 화제가
다시 검에 대한 것으로 돌아왔다.
“이 검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것이니까”
“뭐, 검사에게 있어서 검은 생명, 가능한 강력한 검을 가지고 싶다는 것은 이해를 해.”
“그것도 있지만 이 칼리오시리온은
알타고에서 함께 여러 고난을 함께 해온 소중한 파트너이기도 해.”
“흐음~. 그렇구나” 세실리카는 약간 생각에 잠긴듯하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로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거야?”
“응, 네게는 아쉽겠지만.”
“그래, 알았어.”
생각 외로 간결하게 대답을 하고는, 세실리카는 일어나서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는 아돌 일행도 출발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외곽, 마을 안도 아니고 야영을 하기엔 날이 아직 밝았다.
이래저래 휴식은 충분히 취했고 할 일은 단 한 가지.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럼 안녕이군, 아가씨”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자”
아돌과 도기는 짧은 인사를 건네곤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실리카는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따라서 걸었다.
아돌이 걷자, 그녀도 걸었고 아돌이 멈추자 그녀도 발걸음을 멈췄다.
“저기… 세실리카?”
발걸음을 멈추고 아돌은 뒤돌아 보았다.
“왜 그래? 어서 걸어가”
“설마…우리들을 따라올 셈이야?”
“당연하잖아?” 즉답이었다.
“아무렴 어때, 아돌. 여행은 하나보단 둘이 낫다고 하잖아”
도기는 명랑하게 웃었다.
“물론, 그야 환영이지” 동의하는 듯이 아돌도 상냥하게 웃었다.
“그럼 아가씨는 어디까지 우리들과 함께 갈 예정이지? 다음 마을까지인가?”
“그야 당연한 거 아냐?”
라고 말하며 세실리카는 척하고 아돌을 가리켰다.
“이 녀석이 나에게 검을 양보할 때까지!”
전혀 포기 하지 않았다.
“세실리카,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어떤 조건이라도
이 검을 넘겨줄 생각이 없어. 이건 변함없어.”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단지, 만약 짐승들에게 습격당해서
무참하게 죽는다면 사체에 떨어져있는 것을 누가 줍더라도 불만은 없겠지?”
“대단한 발상이네…”
“하지만 아가씨, 우리들이 그렇게 되면 아가씨도 무사하지는 못할 텐데?
보건데 그런 일에 익숙해 보이지도 않고.”
“걱정하지 마, 그렇게 될 때엔 가장 단단한 갑옷을 입고 전력을 다해서
방어태세를 취할 테니까, 사람 상대라면 모를까 짐승 상대라면 분명 버틸 수 있어.
짐승이라면 이빨이나 손톱으로도 뚫을 수 없는 금속덩이에
언제까지나 집착을 하진 않으니까.
“그거… 대단하구만”
“그치?”세실리카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안심해, 너희들의 뼈는 잘 주워서 묻어줄 테니까.”
“그거 고맙군.”
이래 저래서 아돌과 도기의 두 사람만의 여행은
이상한 동행자를 더해 3인 여행이 되었다.
Act. 2
2
밤의 야영. 모닥불을 둘러싸고 세 명은 빠삭빠삭하게 구워져
구수한 냄새를 내뿜는 물고기 구이를 입안 한 가득 음미하고 있었다.
“으음~, 맛있네. 이거! 지방이 살짝 올라간 고기와 살에
열이 알맞게 전달되어 빠삭빠삭해진 껍데기!
폭력적인 맛이 육즙과 함께 흘러나와 참을 수가 없을 정도야~”
행복한 표정을 떠올리는 세실리카, 계속해서 갖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스프를 마셨다.
“이 스프도 산채 나물과 버섯만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겹겹이 쌓인 식감. 깔끔한 끝 맛이 한층 더 식욕을 자극해버려~”라고 말하며
다시금 구운 물고기에 손을 뻗었다.
“아가씨, 꽤나 잘 먹는 걸.”
“아직 성장기니까. 제대로 힘을 길러두지 않으면 제련망치도
제대로 휘두를 수 없으니까 말야.”
“그것도 그렇군”
“그건 그렇고 도기, 정말로 고기를 낚아오다니 게다가 이렇게나 대량으로 말야.”
물고기를 한입 가득이 먹으면서도 감탄하는 세실리카.
“아쉽게도 오늘 이 몸의 최고 수확은 ‘이거’ 뿐이야”
도기는 마침 구워진 5세토 메라이도 안 되는 작은 물고기를 통째로
한입에 집어넣었다.
“어라, 그래? 그럼 낚은 것은 아돌인 거야?”
“뭐, 그렇지.”
짧게 대답하곤 아돌은 묵묵히 식사를 만끽했다.
“덧붙이자면 스프를 만든 것도 아돌이라구”
“헤에… 너, 의외로 다재다능하네”
“계속 여행을 해왔으니까. 게다가 수개월에 달하는 표류생활의 경험도 있어서
식재료의 조달과 취급에는 다소 견식이 있는 것뿐이야”
“그렇구나. 흐음~…”
음식을 먹는 입은 쉬지 않으며 세실리카는 다시금 감탄을 했다.
식후의 일과인 검의 정비는 세실리카의 거듭된 요구에 그녀에게 맡기고,
아돌은 할 일이 없어 다소 심심했다.
덧붙여 그 사이의 세실리카는 줄곧 눈을 반짝이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흥분해있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아돌 일행은 마을에 도착했다. 여관을 잡고 오래간만에
침대의 편안함을 충분히 만끽하였다. 다음날, 사냥이나 채집으로 얻은 것들을
시장에 팔거나, 여행에 필요한 소모품을 보충하는 등, 각자 개별행동을 취했다.
그 날 밤, 작은 주점의 한 편에서 아돌 일행 세 명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흠, 맛은 그럭저럭 일까나. 가격치고는 나쁘진 않은 편이지만
짠맛과 단맛의 변화가 너무 없어서 먹는 재미가 없어.”
“아가씨는 완전히 평론가로구만”
“솔직히 말해 아돌의 요리가 더 맛있을지도.”
“아무리 그래도 그건 과한 평가야”
“하지만 이 술은 꽤나 괜찮구만! 안주로 나온 절인 콩도 마찬가지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아돌과 세실리카는 요리를, 도기는 술을.
제 각자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그 복장은 뭐야?”
세실리카가 지금 몸에 착용하고 있는 것은 앞서서 본 전신갑옷이 아니라
장식은 적은 편이지만 형태도 색도 적당한 기품 넘치는 원피스였다.
아름다운 금발과 가련한 외모와 매치되어
그야말로 출신 좋은 집안의 처자로 보였다.
“이 쪽이 평상시 옷이야. 그 갑옷은 어디까지나 상품이라고. 상품.”
“그렇다는 것은 그건 이미 팔아버린 건가?”
“맞아”
아돌의 질문에 세실리카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이 옷을 샀다는 건가.”
“아니, 이것도 자작이야.”
“진짜냐!?”
“이건 맞춤 옷 장인도 혀를 내두를 정도 아닌가!?”
놀라는 아돌과 도기에게 세실리카는 변함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갑옷을 만드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장난치는 기분으로
이런 옷도 가끔씩은 만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업인 정도야.
“그러고 보니 세실리카가 만든 갑옷도 투박하지 않았고 형태에서 관절의 작은 부분까지
꽤나 섬세한 조형이었더랬지.”
“꽤 잘 봤는걸, 아돌! 그래 맞아, 기능성과 조형미를 갖춘 것이야말로
일류 장비품이라고 말할 수 있어! 그런데도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잡배들이 최근에 기세양양하다니 정말 터무니가 없어!”
갑자기 불이 붙은 듯이 떠들기 시작한 세실리카는 그 후, 아돌과 도기에게
오랜 시간 세실리카류(流) 미학에 관해서 강의했다.
“출발은 내일이었지?”
요리가 슬슬 바닥을 보일 시점에 화제가 내일 이후의 예정의 이야기로 변했다.
“그래, 아가씨는… 역시 따라올 생각인 건가?”
“당연하잖아. 하지만… 그러고 보니 듣지를 못했네. 너희들 대체 어디로 갈 생각인 거야?”
“구체적으로 어디라고 할 것은 없지만 우선은 이스파니를 지나서 그리아로 갈 생각이야”
“그리아…인가…”
“뭐야, 아가씨는 그리아에 가본 적이 있는 건가?”
“로문 제국에 속주(屬州)가 되기 전엔 말야”
“로문인가…”
“그러고 보니 아돌, 너. 로문제국에게 찍혔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다지 로문에 적대한 적은 없는데 말이지…”
“뭐, 쓸데없는 걱정인진 모르고, 생각해봤자 소용없으려나”
“그리아라고 하니, 마침 오늘 낮에 그 근처의 소문을 들었어”
“호오? 그리아의 소문?”
“그리아 엘트링겐에 있는 발두크라는 도시의 이야기인데
매우 큰 감옥이 마을 안에 있는 모양이야”
“분명 ”감옥도시“였던가. 들어본 적이 있어.”
“자세한 것은 나도 알 수가 없지만 여행상인의 이야기로는
‘마을 안에 괴물들이 출몰한다’라던가, ‘감옥의 안에 매우 위험한 유적이 있다’라던가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올 수 없다’ 라던가… 그 어느 것도 미심쩍은 이야기뿐이네.”
“헤에…그건…흠”
신묘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아돌.
“어이, 어이. 아돌. 너 설마 ‘거기에 들어가 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평생 나올 수 없는 감옥 같은 건 난 사양하겠어.”
“서, 설마…. 아무리 나라도 일부러 감옥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동요하는 아돌이었다.
“이상한 취미네”
그때 갑자기 기억이 난 듯이 도기가 말을 꺼냈다.
“소문이라고 하니까 나도 신경 쓰이는 얘기을 들었어.”
“신경 쓰이는 얘기?”
“이 앞의 지역에 ‘괴조(怪鳥)’의 둥지가 있는 모양이야.”
“괴조?”
“날개를 펼치면 소쯤은 한 번에 감싸 쥐고 날개 짓 한 번 하는 것만으로
구름 위에 까지 날아간다고 말이지.”
“뭐야 그거? 그런 새, 있을 리가 없잖아.”
가볍게 웃어넘기는 세실리카에게 아돌은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고대종(古代種)’이라면 혹시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신경이 쓰였었어.”
“흠…”
“‘고대종’이라는 게 뭔데?”
“나도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그렇군, 한 마디로 말하면 ‘위험한 녀석들’이야”
“뭐,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 나타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지나친 걱정이겠지.”
“그렇군”
두루뭉술한 설명에 납득이 가지 않는 세실리카였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는 듯하기에
이 화제는 여기서 종료되었다.
“그래서, 아돌은?”
“응? 뭐가?”
“그야 당연하잖아? 오늘 거리에서 수집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말야”
“그런 취지의 자리였던가?”
“있어? 없어? 어느 쪽인데?”
“재미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응, 자 어서 말해봐!”
“최근 산적이 나오는 듯해”
“그야 산적 정도는 나오겠지, 여기저기에서 말야.”
“나오겠지, 여기저기서”
“그래서?”
“그것뿐”
“…”
“…”
“재미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잖아”
“그건 보통 분위기 띄울 때 하는 상용구잖아”
“내 말이. 감옥도시와 괴조를 뛰어넘는 이야깃거리를 기대했는데 말이지.”
“두 사람 다 뭘 기대하는 건데…”
아돌의 한숨과 함께 이 화제도 일단락되었다.
“그러고 보니 세실리카도 원래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거였지”
“맞아”
“우리들과 동행하는 건 좋은데 네 목적지로 가지 않아도 되는 거야?”
“문제없어. 애당초 명확한 목적지 같은 건 없으니까”
“그렇다면 아가씬 그건가? 방랑의 대장장이라는 거? 각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후세에 이름을 알리는 느낌의”
“수행이야. 수행. 대장장이의 무자수행. 제각각의 땅에서
제각각의 담금질 방법이 존재하고 그 땅에서만 나는 소재나 제련법이 있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것들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하는 거야.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 말이지.”
“헤에에…”
감탄하는 아돌과 도기. 역시나 정신 나간 실험을 하는 대장장이,
그 정열은 보통이 아니었다.
“굉장한 걸 , 아가씨! 어때 한잔 마실래?”
“안 마시거든”
술을 권하는 도기, 세실리카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다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야, 나는 단순히 아버지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뿐”
목소리가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이 들렸다.
“세실리카의 아버지도 대장장이인 거야?”
“응, 켄시아는 꽤나 유명한 대장장이의 집안이야. 권력적인 의미의
지위는 없지만 명성은 꽤나 있는 편이야”
“그래서 아가씨는 대장장이 치고는 묘하게 기품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당초 좋은 집안 아가씨였단 거로군.”
“아버지는 그런 일족의 안에서도 특히나 재능이 뛰어나서 젊을 적부터 명공(名工)으로
불렸었어“
“그래서 그 아버지의 흉내를 내서 무자수행인가”
“그래 맞아”
그렇게 대답한 세실리카는 역시 어딘가 침울해져있는 듯이 보였다.
“역시 대단한 걸 아가씨는. 어때 한잔 마실래?”
“그러니까 안 마신다고”
도기도 그걸 눈치를 채고 다시 세실리카에게 술을 권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했다.
“나도 조금은 비슷한 지도 몰라”
“뭐가?”
아돌의 갑작스런 말에 세실리카는 조금의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나의 아버지는 기행가(紀行家)였어. 각지를 돌아다니며 기행문을 적거나
서적을 수집하거나 말이지. 어렸을 적, 마을 밖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은
아버지에게 배웠어 바깥의 세계를 동경하고 지금 이렇게 모험가가 된 것도
사실은 아버지의 영향일지도 몰라.“
“사실…이야?”
“응, 아이는 아버지를 동경하고 따라하는 법이지”
‘반항기가 오기 전까지는’하고 일부러 덧붙이지는 않은 아돌이었다.
그것을 듣고는 세실리카의 표정이 작게나마 풀어졌다.
“자, 아돌도 마셔, 마시라고!”
“나도 오늘은 됐다니까”
아돌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술을 부어넣는 도기였다.
Act. 3
3
밤이 되고 취기가 돈 도기를 여관에 배웅한 후, 아돌은 주점으로 돌아왔다.
사실은 이미 취침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조금 더 남겠다고 말한
세실리카를 밤의 주점에 혼자 내버려둘 수 는 없었다.
“세실리카, 슬슬 돌아가서 자는 편이…”
“아도울, 어째서 돌아, 딸꾹, 온 거야”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띄우고 반쯤 테이블에
쓰러져있는 듯한 자세로 세실리카는 아돌을 올려보았다.
“세실리카… 취한 거야? 설마 술을…?”
“무슨 소리, 라는, 술은, 딸꾹, 마시지, 않아”
주문한 술은 전부 도기가 마셔버렸고 추가된 흔적도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건가…”
눈에 띄게 줄은 안주인 절인콩을 보고 한숨을 쉬는 아돌.
그것은 콩을 과실주에 절여 만든 이스파니의 명물이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제각각 다른 과실주를 사용하기에
각지에서 풍미가 다른 요리로 알려져 있다.
그 차이를 체험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도기가 말했었다.
그렇다곤 하나 그것을 먹고 취한 사람은 제 아무리 아돌이라도 처음 보았다.
“죄송합니다, 물 좀 주세요”
세실리카에게 돌아갈 의사가 없는 것을 보고 아돌은 물을 부탁해 자리에 앉았다.
“아도울, 칼리오시리온 넘겨줘!”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건 안 돼.”
“그럼 빌려줘. 손질, 해줄 테니까”
“그것도 안돼”
“어째서야아!?”
“지금 너에게 날붙이를 주면 위험하니까”
그것은 ‘술에 취했으니까’라는 의미도 포함한 말이었지만
의식이 잘 돌아가지 않는 세실리카에겐 ‘어린애니까’라고 이해를 한 듯하였다.
“라를, 아이취급, 하지 마--!”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야”
테이블에 내온 물을 아돌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절인 콩의 그릇과 교환을 해버렸다.
“나는 이미, 한 사람의 여성 이야. 요전에도 빨간 머리의 귀축녀석에게 당할 뻔 했었고”
“그거 날 말하는 거야…?”
아돌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실리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장장이로서도 한 사람 몫을 하고 있고. 오늘도 상품 전부 팔았고”
“그러네”
적당히 말을 맞춰 주는 아돌.
“전부…팔았고…”
“훌륭해, 훌륭해”
“팔렸…고…”
“응?”
“팔려… 우…우아아앙---”
그리고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에, 엣? 세, 세실리카?”
그 어떠한 적과의 전투도 대응이 가능한 역전의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이라도 여자 아이의 우는 얼굴엔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저 빨간 머리? 여자 아이를 울려버리다니”라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고
필사적으로 세실리카를 위로하는 아돌.
그 덕분인지 세실리카는 간신히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아직 울먹이는 목소리긴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가능한 상냥한 목소리로 아돌이 질문을 했다.
“그 녀석들은 전혀 안목이 없었어! 처음엔 그 누구도 꼬마 계집이 만든
장비 같은 건 살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켄시아’의 이름 밝히니까
갑자기 눈빛을 바꾸고는…”
“그래서 전부 다 팔린 건가”
“응, 입으로는 ‘역시 켄시아의 작품’이라며 떠벌리고는 사갈 때마다
너무나도 분해서… 평소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며칠을 걸려서라도 팔았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으니까 이름을 밝혔더니 이래 버리니…”
“꼭 모든 상품이 이름 때문에 팔린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주목을 끈 이유일 뿐, 결국엔 세실리카가
좋은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전부 팔수가 있었던 거야.”
아돌의 말에 세실리카는 고개를 휙, 휙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면 이름이 없건, 계집이 만들던,
그런 것들은 상관없이 반드시 팔릴 거야.
결국 나는 그 정도밖엔 안 되는 대장장이였다는 거지…”
“이래봬도 장비의 좋고 나쁨 정도는 보는 안목이 있다고 생각해.
내가 봤을 땐 네 가 만든 작품은 틀림없이 일급 물품이야. 자신을 가져도 돼.”
그 말을 들은 세실리카는 한순간 표정이 풀어졌지만
또다시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지금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버지한테도, 아돌이 가지고 있는
칼리오시리온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뿐이야”
분명 세실리카가 만든 것들은 지금까지 아돌이 몇 번인가 얻었던
전설급 무기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꽤나 특수한 소재나,
또는 이미 소실된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애당초 재현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누구라도 그리 쉽게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아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걸로 안 돼! 일류가 아니라 초일류가 되어야만 해!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나아가는 방법도 보이질 않아…
이대로는 난,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이윽고는 멈춘 눈물이 다시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돌은 이제야 세실리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에 뭔가 있음을 깨달았다.
참견해도 되는 문제일까 잠시 주저도 했지만, 역시 못 들은 채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세실리카는 얼굴을 들어 올려 눈물에 잠긴 눈동자로 아돌을 한동안 바라본 뒤,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 말했었지. 아버지도 세계를 떠돌아 다녔다고. 실은 그건 두 번째였어.”
“두 번째?”
“첫 번째는 아직 어머니와 만나기 전에 젊었을 적, 두 번째는 나에게
망치질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한 다음 날. 첫 번째는 어머니와 만나서
결혼하기 위해 친가에 돌아왔던 것인데 두 번째는…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았어.”
“설마…”
최악의 상상을 하는 아돌, 하지만 세실리카는 머리를 흔들어 그것을 부정했다.
“아니… 가끔씩, 아버지가 새롭게 만든 작품이 각지의 옥션에 나오는 듯해.
분명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세실리아의 말에 아돌은 강하게 긍정을 했다.
“언제까지고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라면 내가 여행을 떠나서 찾아주겠어,
그렇게 생각을 했어. 하지만, 조금의 소식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어.
분명 아버지는 지금의 나를 인정해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만나주질 않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세실리카는 아돌이 바꾸어 놓은 컵을 들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뭐야, 이 물은? 아무 맛이 나질 않잖아? 이상하네.”
맛이 나는 ‘물’이야말로 이상하다는 것을 어째서 깨닫지 못하지?, 라고
아돌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대장장이로서 실력을 갈고 닦기로 한 거야.
이쪽에서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면 저쪽에서 만나러 오게 만들면 돼!
내가 초일류의 유명대장장이가 된다면 아버지도 나를 인정하고
만나러 와 줄게 틀림없어!”
그건 꽤나 결의에 찬 말투였다. 불확실한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리라 믿으며 고난의 길을 걸을 의지가 그 말엔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실패 했어… 나름대로는 실력을 높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걸작“을 만들어 내기위해서는 무언가가 부족해. 그 ‘무언가’를 알지 못한 채,
벌써 꽤나 긴 시간을 방황하고 있어서…”
그래서 ‘슬럼프’라고 말했었던 건가, 아돌은 처음 만났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결국 내게는 이 정도의 재능밖엔 없었단 거야…
이래선 도저히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수가 없어…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어…”
그렇게 이야기 하고선 다시 오열을 하는 세실리카.
언제나 으스대는 태도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아돌과 만났을 때나,
지금과 같이 실제론 울보에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가진
일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강한 척 으스대지 않으면 혼자서 이렇게까지 힘을 낼 수가 없었겠지.
“세실리카”
결코 큰 음량은 아니었지만 올곧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뭐, 뭐야… 우는 게, 딸꾹, 아니라고.”
“나에게 너를 돕게 해주지 않을래?”
“엣?”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세실리카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깜빡였다.
“아버지를 찾는 거, 나도 돕도록 할게”
“정말이야?”
“그래”
“어째서?”
“어째서라고 물어도, 나도 잘 모르겠어. 단지 이렇게나 열심인 세실리카를 보고 있으니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한순간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넘쳐흘러 나올 것만 같았다.
완전히 정신이 들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고백을 했는지 생각하니
얼굴에 화악하고 열이 올랐으며, 그 이상으로 아돌의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부끄러움이 몇 배는 더 불어났다. 그것을 숨기기라도 하듯이
세실리카는 흥하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뭐야, 그 의심도 않고 덥석 돕겠다니, 너무 어수룩한 거 아냐?”
“하하, 자주 들어”
훈훈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돈다.
“그래서…정말로…도와 줄 거야?”
“응, 방금도 얘기했잖아. 세실리카의 아버지 찾는 것에 협력할게”
“그래, 고마워…”
얼굴을 붉히면서도 조그만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하자
아돌은 웃음을 건넸다.
“하지만, 그 일은 괜찮아”
“괜찮다니?”
“나는 대장장이의 실력을 갈고 닦아 아버지를 찾을 거야, 그렇게 결심했으니까”
“세실리카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나는 응원할게”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하는 아돌에게 세실리카는 다시금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흥하고 옆으로 돌렸다.
“아돌, 너에겐 대장장이 실력 향상에 협조를 요청하겠어!”
큰 목소리로 그렇게 선언한 세실리카에게 의외의 표정을 짓는 아돌.
“그건 상관없지만 나는 대장일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뭘 하면 되는데?
칼리오시리온을 넘겨줄 수는 없지만 조사를 하고 싶으면 가능한 협력을 할게.”
“그게 아니야! 아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만…”
세실리카는 의자에서 일어서서는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척하고 아돌을 지목했다.
“아돌, 내 대신에 신작의 실험체가 되어줘야겠어!”
Act. 4
4
마을의 외곽, 예정보다 하루 늦게 아돌일행 세명은 산길에 접어들었다.
“미안, 도기. 갑작스럽게 예정을 바꿔서”
“너랑 함께 여행을 하면서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는 편이
오히려 드믄 편이니 괜찮아. 예정 같은 건 있으면서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아돌이었다.
“게다가 아가씨를 돕는 일이라면 나도 흔쾌히 협력하도록 하지.
뭐, 이번의 난 아가씨의 호위랄까, 그저 보는 일뿐이겠지만.”
마을에서 출발이 하루 미루어진 것은 세실리카가 장소를 빌려 여러 가지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세 명은 나름 정비가 된
산길을 벗어나서 애초에 예정에도 없었던 산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어서 빨리 오라고--!”
선두를 뛰어가고 있는 세실리카는 꽤나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짐의 일부를 아돌과 도기에게 짊어지게 한 그녀는 두 사람과의 사이에
이미 꽤나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부터 행해질 그녀의 신작장비의 실험,
게다가 아돌이라는 전투경험 풍부한 협력자를 얻은 지금에 자신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오늘 세실리카가 착용하고 있는 것은 가죽제의 경량갑옷.
따로 말하지 않으면 갑옷이라고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
섬세하게 만들어진 장비였지만 본인 왈,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속제 갑옷보다
내구성이 좋다고 자부하는 작품인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위험한 짐승이 나올 테니까 그렇게 혼자 앞서 나가면 위험해”
두 사람도 그 뒤를 쫓았다.
수렵꾼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나아간 후 준비를 했다.
도기와 세실리카는 수풀의 그늘에 숨고 그 후부턴 아돌의 전투를 관찰할 예정이었다.
만약 위험해지면 뛰쳐나와 가세를 한다, 고 미리 약속을 해놓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라고 도기는 확신을 했다.
아돌은 조금 넓은 땅에서 특수한 향초에 불을 지피고
그 연기에서 퍼지는 냄새로 표적을 유인해냈다.
“왔다!”
긴장감이 감도는 목소리로 세실리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검은 그림자가 나무들을 지나 중량감이 있는 발소리와 함께
아돌의 앞에 뛰쳐나왔다.
곰이다. 3메라이를 넘는 신장, 농염함이 확실히 갈린 얼룩무늬의 모피--
엘레시아 대륙중부에 밖에 서식하지 않는 엘레가리 베어가 틀림없었다.
거대한 체구를 지니며 잡식성에 평소에는 그다지 사람을 습격하지 않지만
사냥물을 빼앗거나 특별한 냄새로 자극을 하거나 하면 이상할 정도로 난폭해진다.
지금과도 같이.
마치 힘을 자랑하듯이 거대한 곰은 크게 울부짖고는 근처의 나무를 후려쳐 쓰러뜨렸다.
나무 나이가 10년은 넘을 것 같은 두꺼운 굵기의 나무였다.
엘레가리 베어는 괴력의 소유자로 불리며 그 일격은 바위도 부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이 녀석을 실험대상으로 한 것은 말 그대로 그 괴력의 힘을 빌려
장비의 방어성능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그에 비해 엘레가리 베어는 힘은 강하지만
민첩한 편은 아니다. 만약 실패라면 도망치면 어떻게든 대응이 가능했다.
‘실험개시!’ 라며 세실리카가 마음속으로 소근 거린 순간,
다른 방향에서 방금과 같은 울부짖음이 들렸다.
곧바로 두 번째의 검은 그림자가 아돌의 앞에 나타났다.
“두 마리!?” 위험하게 큰 소릴 내려는 세실리카를 도기가 간신히 손으로 막았다.
엘레가리 베어가 실험대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둔중한 움직임과 한 마리였을 경우를 전제로한 이야기였다.
만약 두 마리를 상대하게 된다면
그 경이적인 괴력에서 오는 위험성은 단순히 두배 정도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아! 도우러 갈 거야? 아니면 철수?”
작은 목소리로 긴박하게 묻는 세실리카.
“뭐, 괜찮을 테지.”
그에 비해 도기는 냉정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안한 표정을 띄운 세실리카는 아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더 놀라운 광경이 그녀를 덮쳤다.
아돌은 두 마리의 큰 곰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경계를 하면서
시선을 더 먼 방향으로 옮겼다.
쿠웅, 쿠웅, 쿠웅---
아까와 같은 하지만 한층 더 큰 발소리가 울리고,
이윽고---5메라이에 근접한 거대 엘레가리 베어가
아돌의 시선에 나타났다.
---세 마리!!? 게다가 저 크기, 어쩌면 이 산의 왕!?
이쯤 되면 철수해야 해, 그렇게 외치려고 한 순간--
“문제없어, 지금부터 전투를 시작할게!”
크게 그러면서도 동요 없는 목소리였다.
그 말을 한 건 당연히도 세 마리의 검은 맹수에 둘러싸인
빨간 머리의 청년-- 아돌.그는 특별히 세실리카 일행을 돌아보는 기색 없이
그저 손을 하늘 위로 치켜 올리고 그렇게 선언했다.
이 녀석은 바보다, 이건 더 이상 실험이라고 할 상황이 아니야.
이성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방금 전 아돌의 말이 묘한 안심감을 주었다.
--뭐, 조금쯤은 믿어봐줄까. 그리 생각한 세실리카는 다시 숨을 죽이고
도기와 함께 전장을 주시했다.
세 방향에서 아돌을 포위하는 세 마리의 큰 곰. 마치 진형이라도 짜는 듯이
아돌에게 도망친 틈을 주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아돌은 검도 뽑지 않고
단지 오른 손에 방패를 쥐고는 대처를 하고 있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전에 계획한 수순이었다.
‘우선은 방패의 방어성능부터’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그걸 실행하려고 하는
아돌에게 수순을 정한 본인조차 수풀 그늘에서 어이가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세 마리의 엘레가리 베어가 아돌에게 돌진하여 미세한 시간차로
강한 할퀴기를 퍼부었다. 치고 들어오는 손톱공격을 아돌은 방패로 받으면서
무리하게 그 힘에 대항하지 않고 몸의 축을 비틀어 받아 흘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마리 째의 공격을 경쾌한 백스텝으로 회피하고
세 마리 째의 공격을 처음과 같은 요령으로 완벽하게 패링하고 있었다.
“대단해…”
작게 경탄을 내뱉는 세실리카.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맹수의 공격을 받아내는
아돌에게 저도 모르게 반해버리고 있었다.
몇 번인가 받아치기를 한 후, 아돌은 일단 세 마리에게서
거리를 벌린 뒤 방패의 상태를 확인 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애당초 아돌의 높은 기량에 의한 패링은 힘을 완벽하게
흘려 넘겨 방패에게 커다란 부하를 주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엘레가리 베어가 다시금 돌진을 해왔다.
이번엔 공격을 흘리지 않고, 단지 방패를 바로 잡고
그저 “받아 낼 뿐”이었다.
퉁하고 둔중한 소리가 울리고 충격으로 아돌은 서 있던 장소에서
절반 보폭 정도 뒤로 밀렸지만 문제없이 받아 낼 수 있었다.
곧바로 옆에서 두 마리째가 위에서 아래로 할퀴려고 손을 뻗었다.
방패를 바로 잡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하여 아돌은 재빠르게 회피를 선택하였다.
휘두른 손톱은 허무하게도 허공을 가르고 그대로 지면에 쳐 박혔다.
깊게 파인 지면은 ‘바위도 부순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물론 그것으로 끝날 리는 없었다. 세 마리째 왕이라고 불린
거대 엘레가리 베어가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혼신의 일격을
아돌에게 퍼부었다 하지만 아돌은 그것조차도 예상한 것인지
방패를 다른 한 쪽의 손에 들고는
곧바로 무리가 없는 태세로 그것을 받아내었다.
투우웅---
아까보다도 더 낮지만 커다란 충격음이 근처에 울려 퍼지자
세실리카와 도기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공격을 받아낸 아돌은 태세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뒤로 10메라이 정도는 튕겨져 나가 있었다.
즉각 방패를 체크, 깊게 할퀸 흔적이 나있긴 하지만 부셔지지 않았고
변형도 발생하지 않았다.
세실리카는 작은 거울을 꺼낸 후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맹수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
아돌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음은 두 번째 실험인데 특별히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제 2단계의 테마는 ‘갑옷의 가동성능’ 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방패의 방어실험을
할 때에 어느 정도 움직였나 정도만 알면 문제없어.
세실리카가 보았을 때 방금 전 아돌은 충분히 민첩했고
동작 하나 하나에 절도가 있었다.
즉 가동성능은 우수…
아돌은 양손을 머리에 올리고 삼각형을 만들었다.
그 표현의 의미는 ‘그냥 저냥’.
“으음…”
대체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던 거지…생각에 잠겼지만
그런 문제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라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거울로 아돌에게 신호를 보내 제 3단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아돌은 엘레가리 베어 세 마리와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재빠르게
몸에 두르고 있던 금속제 갑옷의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떼어내서
준비를 갖추었다.
제 3단계는 다시 말해 무기 성능. 물론 칼리오시리온이 아니라
세실리카가 만든 검으로 아돌이 적과 싸우는 것.
칼리오시리온보다 분명히 떨어지는 것을 아돌에게 쓰게 하는 것을
세실리카는 처음엔 매우 싫어했지만 최종적으로
그것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포기하고 아돌에게 새로운 검을 건넸다.
그리고 마침내 빨간 머리 검사는 검을 뽑았다---
생각해보면 세실리카에겐 이것이 처음 보는 아돌의 전투였다.
만났을 적에는 세실리카가 필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는 동안
아돌이 왔고 그 후에 눈을 떠보니 전투는 이미 끝나있었다.
그 후 여행을 함께 하면서는 ‘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조우한 적은 없었다.
야생동물을 잡는 적은 있지만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었다.
방금까지의 엘레가리 베어와 전투도 방어나 회피를 했을 뿐,
‘전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세실리카는 아돌이 검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 감상으로 한 마디로 귀결해서 논하자면---
---아름답다.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검무(劍舞)’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검을 이용한 무도,
또는 무도와 같은 검법. 어느 쪽이든 우아한 동작이 들어가 있으며
감상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아돌의 것은 달랐다. 동작자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단지 합리적으로 상대를 쓰러뜨린 것만이 목적의 전부인 움직임을 계산,
제어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보폭에서부터 허리의 움직임, 상반신의 중심이동이나
시선에서의 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있어서 헛동작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의 목표--‘적을 쓰러뜨린다는 종착점을 향하고 있었다.
아아, 확실히 저래선 저 갑옷은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구나, 라고
세실리카는 마음속으로 납득을 했다.
뭣보다 세실리카를 놀라게 만든 것은 아돌은 처음 써봤을 터인 검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숙련자가 자주 ‘손발의 연장선과 같이 다룬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지만 정말 그 말 대로였다.
검의 길이, 중량, 날카로움, 중심위치… 그 모든 것을,
어쩌면 세실리카보다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아돌은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서
가장 효과적인 거리로 가장 효과적인 각도를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벤다.--------’
이 일련의 동작은 세실리카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한 점의 낭비 없이 합리적인 흐름, 자신의 몸과 무기,
양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동작--
어떤 의미론 이건 대장장이인 세실리카라서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아돌의 검기는 유명유파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르지만
그 유파들의 진수들을 전부 담고 있는 것같이도 보였다.
다만 그저 누군가에게 검을 배우고 수련을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이 세계각지를 돌며 셀 수 없는 수라장을
헤쳐 나오면서 몸에 익힌 검기(劍技).
전율마저 느껴지는 세실리카는 말을 잃고 그저 눈앞의 광경에 압도되어 있었다.
Act. 5
5
모닥불을 둘러싸고 간단하게 곰 냄비를 끓이면서 아돌 일행 세명은
낮에 있었던 실험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엘레가리 베어와의 전투는 아돌이 검을 뽑고 나서는 순식간에 끝났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거의 일격에 아돌에게 급소를 질려 절명했으며
왕이라고 생각되는 세 마리째는 이상하리만치 내구력이 높았지만
그것도 머리를 잘려버리니 아무리 그래도 살 순 없었다.
오히려 그 후의 해체 작업이 더 큰일이었다.
곰은 전신이 다 이용가치가 있으며 엘레가리 베어정도가 되면 그 가치는 훨씬 더 높았다.
광택이 좋은데다 천연의 얼룩무늬가 들어간 모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최상품.
발톱이나 이빨은 장비품이나 장식품의 재료로도 비사게 팔려나간다.
간장이나 웅담은 약재로 매우 귀중하지만 상처없이 해체하는 것은 매우 시간이 걸렸다.
고기까지는 아무리 그래도 가져가기 힘들기에 그 자리에서 야영을 하며
곰고기 요리를 만끽하기로 한 아돌 일행이었다.
취급에 주의가 필요한 곰고기는 그저 불에 굽기 보단
끓이는 것이 좋다는 얘기에 곰 냄비로 결정이 되었다.
질긴 육질을 잘 풀어주듯이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특유의 강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향신료를 다소 많이 투입, 거기다 부근에서 채취한 산채들을 한꺼번에 넣고
뚜껑을 닫지 않은 채 끓였다.
“슬슬 괜찮지 않을까?”
풍겨오는 향에 식욕이 자극되어 기다릴 수 없게 되자
아돌에게 묻는 세실리카.
“응, 뭐. 이정도면 되지 않을까나”
“좋았어!”
도기의 환성을 시작으로 세 명은 곰 냄비를 먹기시작했다.
“으으으음~~이건, 뭐라 하면 좋을지…”
행복한 표정으로 신음하는 세실리카, 그녀치고는
희한하게도 말을 고르는데 주저하고 있었다.
“폭발?”
적당히 대답하는 도기.
“그래 맞아, 폭발이야! 대폭발! 좀 더 강조하자면 대분수!!”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질렸다는 표정으로 냄비에 추가분의 곰 고기를 넣는 아돌.
“뭐라니 이 곰 냄비의 맛인 게 당연하잖아! 고기를 입에 넣은 순간,
농후한 고기 국물과 함께 감칠맛이 한 번에 폭발해 버려!
자극적이고 스파이시한 조미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니 오히려 경쟁을 하면서 더 높은 차원에서 조합하고 있는 듯한
곰 고기의 맛! 그 파워풀한 미각의 자극에 딱 맞는 정도의
씹는 맛이 있는 고기 식감! 그 절묘함이, 그 충격이,
넌 느껴지지 않는 거야, 아돌!!?”
“그걸 내가 다 만든 건데 말야…”
평소보다도 기분과 텐션이 높은 세실리카는 허겁지겁 곰 고기를 먹었고
도기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냄비 안의 고기를 비워나갔다.
“그렇게 달려들지 않아도 추가분의 곰 고기는 남을 만큼 있으니까”
다시 고기를 자르곤 냄비 안으로 집어넣는 아돌이었다.
식사 후, 다시금 실험결과를 검토하는 세실과 아돌.
“방패는 커다란 문제는 없다곤 쳐도 갑옷 쪽은 아직 개량의 여지가 있겠네.”
“장갑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저 정도의 경량화를 이루어 낸 것은
솔직히 감탄하지만 접촉부나 관절부가 미묘하게 뻑뻑한 터라 움직임에 제한이 걸리는 거 같아.”
“그건 일반 병사가 훈련할 때의 움직임을 참고로 해서 만든 거야. 그 정도의 숙련도라면
그 상태로 충분했겠지만 확실히 아돌과 같은 검사에겐 가동성이 전혀 부족하긴 하네.”
“검은 갑옷과는 정반대 상황으로 지나치게 날이 서 있는데다가 너무 다루기 쉬운듯해.
좀 더 다루기 힘들게 조정해도 좋을 정도야. 예를 들면 중심을 좀 더 칼끝으로
쏠리게 한다던가, 말이지. 사용감이 바귀겠지만 참격에 중량감이 더해질 거야.”
“다루기 힘들게 인가… 그런 발상은 하질 못했네.”
이와 같이 두 사람은 열띤 의론을 교환하고 있었지만 의론에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별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도기는 이때엔 이미 코를 골며 잠자고 있었다.
밤이 되고 세실리카는 취침에 들기 위해 누워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서
살짝 눈을 떠 불침번을 서고 있는 아돌을 바라보았다.
낮의 전투를 떠올려본다. 정말 압도적이었다. 아돌의 평소 몸놀림이나
무구에 관해서는 감식안(鑑識眼)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실력자라고는
이미 추측을 했었지만 그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나칠 정도로 상냥한 얼굴과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 좋은 성격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시의 그는 용맹하고 패기에 넘쳐 있었다.
---조금은, 멋있을지도…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탈선할 뻔 한 생각의 끈을 바로 잡았다.
아돌의 전투를 보았을 때, 세실리카는 분명히 느꼈다. 슬럼프에 빠진 자신의
현 상태를 타파할 ‘무언가’를. 그것이 무언지는 아직은 알 수가 없고
정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무언가’에 다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해져있었다.
남모르게 결의를 가슴에 품고 세실리카는 다시금 눈꺼풀을 닫았다.
그 후로부터 나날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돌과 도기가
예정했었던 여행길을 진행해 나아갔고 마을에 도착하면
세실리카는 장소를 빌려 장비를 개량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마을을 떠나 이동 중에는 다시 아돌에게 실험을 부탁한다, 그 과정의 반복이었다.
첫 만남에서 딱 1개월이 되었을 즈음, 마을을 나섰을 때
갑자기 세실리카가 말을 꺼냈다.
“두 사람, 지금까지 고마웠어. 여기서 헤어지자.”
“엣, 세실리카?”
“아가씨, 왜 그래?”
갑작스런 선언에 당연하게도 아돌과 도기는 주저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실험과 개량은 전부 해봤고 타이밍으로도
이쯤이 딱 좋은 거 같다고 생각해.”
“그렇다곤 해도, 너무 갑작스럽네.”
아돌의 말에 세실리카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좀처럼 결심하기가 힘들 거 같아.
너희들과 하는 여행은, 그게, 너무 즐거우니까…”
그 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지는 두 사람.
“뭐야, 아가씨도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고만.”
“쓸쓸해지겠는 걸.”
두 사람의 말에 세실리카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나는…단지 실험재료가 없어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니까 그 점은 착각하지 말아줘”
착각이고 자시고 스스로 즐거웠다고 말했으면서, 라고 애써 말하지 않는 아돌이었다.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세 사람 다 한동안 침묵했다.
“여러모로 정말 고마웠어.”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세실리카였다.
“대장장이로서 뭔가 좋은 장비를 만들어서 답례를 해야겠지만,
여행자금용 작품이면 모를까 너희들에게 답례용으로 줄 만한 수준의
장비를 내 실력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아직 인정 못하거든.”
명랑하게 웃으며 도기가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들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구. 그치, 아돌?”
“응, 게다가 여행을 같이하는 동료라면 돕는 게 당연하잖아.
답례같은 건 필요 없어.”
무기의 손질이나 방어구의 보강, 그 외에도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소도구들을 여러 개 세실리카에게 받았던 도기와 아돌의 말은 본심이었지만
세실리카에게 있어선 사소한 작업이었던 듯하다.
“그렇게는 할 수 없지, 이건 ‘빚’으로 남겨두겠어”
그렇게 말하곤 세실리카는 양발을 어깨 보폭으로 벌린 후
왼손을 허리에 올리고 오른손을 척하고 아돌쪽을 가리켰다.
“언젠가 반드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줄 테니까! 세실리카 켄시아.
이 이름을 꼭 기억해두라고!”
“오히려 잊는 게 더 힘들 거 같은데 말야.”
“결코 잊지 않을게.”
이렇게 해서 기나 긴 듯하면서도 짧았던 세 명의 여행이 끝을 맺었다.
세실리카는 일부러 아돌 일행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 나아간다.
두 사람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거짓말을 했었다.
실험을 이미 다 끝마친 듯한 말투를 했지만 신작의 아이디어 같은 건
잔뜩 떠올랐으며 만들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실험은 계속 할 수가 있었다.
이 방식으로 기술적인 문제점이 꽤 해결 가능했기에 솔직히 한참은 더 하고 싶었다.
애당초 자신이 눈치 챈 ‘무언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채였다.
바로 눈앞에까지 다다른 듯했지만 그 최후의 한 걸음을
아무리 해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실리카는 아돌 일행과 헤어졌다.
하지만 이걸로 괜찮아. 어느 새인가 아돌에게 너무 의존해버렸다.
자신은 아직 그에게 맞는 무기를 만르어 낼 수가 없어, 그런데도 계속해서
호의에 기대 의존하다가는 분명 자신의 실력으로 성공할 수 없게 되어버려.
--다음에 만날 때에는 반드시 일류 대장장이가 될 테니까 두고 봐!
그런 의지와 함께 큰 길에서 벗어난 산길을 세실리카는 혼자서 걸어 나아갔다.
Act. 6
6
눈을 떴더니 그곳은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거칠게 깎여진 석벽(石壁), 난잡하게 놓여져있는 나무 상자와 나무판자들.
이런 곳에 자신이 일부러 올 이유는 생각이 나질 않지만
잠들기 직전엔 분명 여기에 있었던 것 같았다.
세실리카는 서서히 각성되는 의식을 총동원하여 있는 힘껏 기억의 정리를 시작했다.
아돌 일행과 헤어진 뒤, 세실리카는 혼자서 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동안 걸어 나아간 시점에 갑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여어, 아가씨-”
일순간 도기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곧장 스스로 부정을 했다. 도기의 호쾌하고
믿음직한 느낌의 목소리가 아니라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음험함이 깃들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였다.
“무슨 볼일이야?”
실제론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주변의 상태가 이상했다.
할 수 없이 대답을 한 세실리카였다.
“이곳은 우리들의 영역이라고. 이곳을 지나고 싶으면, 아니,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가진 돈을 전부 내놔!”
그 목소리에 응하는 듯이 주변의 나무 그늘에서 목소리의 주인과
똑같은 복장의 남자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대강 10명 정도.
전원 손에 무언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우왓, 쓰레기 품질들이네.
직업상 무심코 그쪽을 먼저 눈으로 쫓는 세실리카였다.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야! 이 사람들, 산적인 건가…
아돌 일행과 막 헤어지자마자 이런 자들과 조우를 하다니
자신의 박복한 운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돈을 전부 넘겨주면… 얌전히 보내줄 거야?”
실제론 정신적인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평소에도 기가 센 태도 덕분에 세실리카는 간신히 겁에 질린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래, 얌전히 건네는 편이 신상에 좋을 거야”
다행이도 상대는 돈만이 목적인 모양이라 그것만 따르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듯하다.
무기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삼류 냄새가 다분히 풍기는 집단이었다.
그렇다곤 하나 자신에겐 반항할 수 있는 힘도 도망칠 수 있는 속도도 없다.
여기는 따르는 수밖엔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돈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잠깐 기다려, 두목!”
또 한 명의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이 계집, 꽤 귀한 집 딸일지 몰라.”
“에?”
“엣?”
두목이라고 불린 남자에 이어서 세실리카 자신도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놀랐다.
“이대로 돈만 뜯고 돌려보내는 것은 너무 아까워. 이 여자를 납치해서
집에 몸값을 요구하자고. 그러면 우리들은 평생 놀면서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벌 거야!”
“오옷, 그거 괜찮군”
분명 세실리카의 친가는 일부 계층에서는 유명하지만
그다지 귀족 같은 건 아니었다.
그들이 기대하는 듯한 재산도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애당초 이 땅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 아니, 잠깐. 그건 오해--”
“시치미 떼지 마! 이 몸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네가 입고 있는 그 옷, 최고급품이잖아.”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모습을 내려보는 세실리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호화스런 모피 코트였다.
일전의 실험으로 얻은 엘레가리 베어의 모피를 재료로
세실리카가 손수 공을 들여 세심하게 꿰맨 만든 자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너무 잘 나온 덕분에 기쁜나머지 최근엔 자주 착용하고 있었다.
아돌과 도기에게도 만들어 줄려고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이런 고급스러운 것은 자신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재료부터 제작까지 전부 자신들만으로 어떻게 만든 것이라
무심코 잊고 있었지만 이건 분명 최고급 물품이었다.
그것도 돈 많은 귀족이 즐겨 입을 만한…
“저기, 나는…”
“그런 모피를 것도 최상급 엘레가리 베어의 모피를 아낌없이 쓴 코트를 입고
그런 변명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냐!!”
“그렇죠……”
………
…
그리고 지금 현재에 이른다.
산적에게 잡혀서 아지트 같은 곳으로 끌려와 감옥인지 보관고인지도
알 수 없는 장소에 갇혀져 있는 자신의 현 상태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 버리는 세실리카였다.
다시금 자신의 박복함에 어이가 없었다. 산적과 만난 시점에도 그랬었지만
본래 소지금을 잃는 것으로 끝났을 불행이 오해로 인해 아지트까지
납치되어 버릴 줄이야. 이 지경까지 오니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돌과 만나기 이전에 느꼈던 초조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런 곳에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어도 괜찮은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더욱더 연구하고 실력을 올려 한시라도 빨리 초일류의 대장장이가 되어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만해, 그런 것만 머리에 떠올랐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가, 생각해야할 것은
많았지만 마치 현실도피인 마냥 사고가 다른 쪽으로 탈선해가는 세실리카였다.
순간 떠오른 것은 이전 자신의 지도를 하고 있었던 때, 아버지의 말이었다.
‘네가 무두질한 것들은 너무 우등생 같구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다음번에 아버지를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자고 쭉 결심을 했었지만
“이제 그럴 기회도 없을지도 몰라”
무심코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자신조차도 놀랐다. 머리를 흔들며
불길한 상상을 잊으려고 했지만 일단 의식을 해버리니
모른 채 외면하던 현실이 더 이상 머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산적들은 자신을 고귀한 신분이라고 생각해서 납치를 했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덴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후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였다.
‘착각했습니다, 그만 가세요.’ 라는 전개가 되지 않을 것만은
쉽사리 상상할 수 있었다.
갇혀진 장소를 다시 한 번 관찰했다. 동굴과 같은 방에
사슬을 감은 나무 봉을 끼워 만든 문.
아무리 봐도 주변에 있는 것을 맞춰서 만든 것 같은 조잡함이었다.
만약 애용하는 쇠망치가 있다면 한방으로 부술 수가 있지만
짐은 전부 산적들에게 빼앗겨버려서
지금 현재 세실리카로선 어쩔 방도가 없었다.
뭣보다 다시 그 쇠망치를 손에 잡을 날이 올 수 있을까,
몸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도적들은 화풀이로 자신을 학대할 것인가.
어쩌면 입막음을 위해서 자신을 헤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욕구해소 대상이 될 것인가…
--더 이상 대장장이 일은 할 수가 없을려나…
검도, 창도, 방패도 갑옷도, 더 이상 만들 수 없으려나…
아버지와 더 이상 만나지도 못 하려나…
무릎을 감싸고 지면에 웅크려 앉아 몸을 떨면서 생각은
점점 나쁜 쪽으로 가라앉아만 갔다.
어느 샌가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와 더 이상 멈추지가 않았다.
하루 전까지 함께 있던 그 빨간 머리의 청년. 만약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자신을 구해주었을까. 그가 있다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형편에 좋은 환상, 현실에 일어날 리가 없지.
그 때, 아지트 안쪽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세실리카는 알아차렸다.
소리지르는 목소리, 뛰는 소리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마치…그래, 마치 칩입자라도 나타난 듯한…
“엣, 설마, 아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형편에 좋은 상상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고
바위로 된 벽이 터무니도 없이 무너져 두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큰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암흑 속에서 이젠 눈에 익은 거한이 나타났다.
“여, 아가씨! 무사하냐?”
“도기!?”
너무 놀라 두 눈이 토끼같이 커진 세실리카.
“아돌이 아니라서 미안하게 됐군 그래”
“나는 그다지…가 아니라! 어째서 여기에? 것보다 어떻게? 방금 여기엔 벽이…”
“이 [벽부수기(월 브레이커) 도기에게 걸리면 이 정도의 벽쯤,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자랑하듯이 주먹을 눈앞에서 꽈악 쥐어 보이는 도기.
“하아…”
대답해주기도 곤란해 하는 세실리카.
대체 어떤 몸의 구조를 하고 있는 건지 낱낱이 묻고 싶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덧붙이자면 물론 파트너도 같이 왔다고. 녀석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정면에서 쳐들어간다는 위험한 역할을 도맡고 있지”
“아돌…”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아돌이 싸우고 있을 방향을
눈물 맺힌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실리카.
“그런 까닭이니 어서 탈출하자고!”
“알았어”
두 사람은 도기가 뚫은 구멍을 통해 어두운 동굴로 나아갔다.
“도기 어떻게 내가 잡혀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그게 말이지, 아가씨랑 헤어진 후 아돌 녀석이
‘물어볼 것이 있었는데 깜빡했다!’라고 큰 목소리를 내며
아가씨가 간 방향으로 달려 나갔거든”
“물어볼 것?”
“아가씨의 아버지 이름을 묻는다는 걸 잊었다는 것 같아”
“앗…그러고 보니 알려준 적이 없었네.”
어두운 동굴 안을 도기와 세실리카는 말을 나누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쫓아서 갔는데 아가씨의 도구가 길 한편에 버려져있는 것을 발견한 거야.”
“버려졌다고!!?”
갑자기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물론, 잘 회수해뒀지”
말하고 세실리카에게 짐을 건네는 도기.
“아앗, 내 소중한 아이들! 너무 외로웠어~~”
있는 힘껏 도구를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세실리카.
“이 녀석들을 팔면 길거리에서 파는 고급 장비품 보다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텐데, 정말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녀석들이네.”
“그래서 결국 뭔가 있었다고 생각한 나와 아돌은 그 부근을 탐색해서
여럿이 이동한 흔적을 따라 이 동굴에 도착을 했단 거지.”
“그렇구나. 너희들은 어쩌면 밀정의 재능도 있는 거 아냐?”
“글쎄 어떨지. 적어도 아돌에겐 수수께끼를 푸는 재능은 있는 편일려나?
알 수 없는 유적이나 미궁의 함정을 왕창 풀었고 말야.”
“헤에…”
꽤 나름의 거리를 달린 두 사람이지만 길이 굽거나 튀어나와 있는 편이라
쉽사리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 동굴은 대체 뭐야?”
“이건 마을에서 들은 정보를 기초로 아돌이 추측한 것인데
아무래도 여기 산적단은 최근에 이 동굴에 정착을 한 듯하더군.”
“최근?”
“그래. 흔적에서 보면 전에는 대형 짐승의 둥지였을려나”
“대형 짐승이라니 어느 정도인데?”
“엘레가리 베어보다도 큰 정도”
“에엣…” 도무지 못 믿긴지 반문하는 세실리카.
“즉, 산적들이 그 대형 짐승을 퇴치했단 거야?”
“아니, 대형 짐승의 흔적은 수년전의 것이야.
산적 녀석들은 주인이 없는 이 동굴을 운 좋게 점령한 것뿐이야.“
“잡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 같이 구질한 녀석들이네…”
그런 잡담에 가까운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윽고 동굴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Act. 7
7
동굴에서 나오자 거기는 자그만 언덕이었다. 안은 구불구불했지만
언덕에서는 바로 동굴의 입구가 내려다 보였다.
세실리카와 도기는 입구 근처에서 분투하고 있는 아돌의 모습을 발견했다.
“뭐야, 이 사람 수는…”
마치 입구를 메울 듯한 산적의 숫자에 세실리카는 말문이 막혔다.
대강 본 범위만 해도 자신을 포위했던 인수의 두 배는 되었다.
그런 ‘대군’이라고 불리만한 적을 상대로 아돌은 혼자 대적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약한 주제에 숫자만큼은 무진장 튀어나온단 말이지.”
“마치 바퀴벌레 같네.”
도기와 세실리카의 용서가 없는 감상이었다.
“어이! 아돌! 아가씨는 구출했어! 어서 도망치자!!”
큰 목소리로 아돌을 부르는 도기. 그것을 듣고 세실리카의 모습을 확인한
아돌은 일순간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다시금 표정을 가다듬고 시선을 주변의 적에게 향했다.
“숫자가 너무 많아! 두 사람은 먼저 가 있어!”
아돌의 말에 세실리카와 도기는 서로 마주 보았다.
“도기, 아돌을 구하러 가줘!”
“하지만 그러면 아가씨가 혼자가 되어버리잖아”
어려운 표정으로 고민하는 도기, 세실리카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여기서 얌전히 있을 테니까 괜찮아. 녀석들도 간단히 여기까지 올 수 없을 테고”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언덕은 내려가는 것은 모르겠지만 올라오려면 큰 고생일 듯했다.
“알았어. 조심하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불러!”
세실리카는 고개를 끄덕하자 도기는 단숨에 언덕 밑으로 돌진했다.
중력에 의한 가속도도 있어서 그 거체가 적의 무리에 도달하자
마치 중천차처럼 진행선에 있는 적을 용서 없이 날려버리면서 나아갔다.
“저 튼튼함과 파워, 정말로 어떤 신체 구조를 하고 있는 거야…”
불평하듯이 감탄을 흘리는 세실리카.
다시 시선을 아돌에게 돌렸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두 번째 깨닫는 자신의 멍청함에.
거의 20일에 걸쳐 아돌에게는 갖가지 실험을 시키고 그 상태를 관찰하여
여러 힌트를 얻었지만 그 어느 것도 세실리카가 만든 검을 사용한 전투였었다.
세실리카 자신이 반해버릴 만한 지고의 보검---
칼리오시리온을 사용한 전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여기에서 세실리카는 처음으로 아돌이 자신의 애검,
칼리오시리온을 휘두르는 전투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압도되었다.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움직여 날이 일섬을 할 때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쓰러져간다. 정면에서 덤비던 배후에서 습격하던,
또는 양쪽에서 동시공격을 걸어와도 마치 모두 예지한 듯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고 받아넘기며 흘려버리는
검의 궤적 따라서 쓰러져가는 도적들.
짧은 시간 안에 무수의 공격들을 하고 회피한다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는 본인은커녕,
보고 있는 사람조차 전혀 실패할 가능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결과도 과정도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듯한,
그런 막연한 실력차를 느껴지게 하는 신들린 움직임을 아돌은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쓰러진 산적들 모두 숨은 붙어있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중상은 입긴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아돌이 의도해서 만든 것으로
생명을 빼앗지 않고 전투능력만을 빼앗는 힘 조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적을 베어버리는 것보다
몇 단계 더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내 검은 실력의 몇 퍼센트밖엔 이끌어 낼 수 없었단 소리네.’
자신이 만든 무기와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니
생각지도 못하게 쓴웃음을 짓게 된 세실리카.
하지만 다른 의미로도 그녀는 입이 벌려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전 아돌의 싸움을 본 때에 느껴진 것은 사용자인 그가 검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단서로 정체되었던 대장일이 꽤나 진척이 되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도달하려고 하는 최후의 한 걸음에는 도달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싸움을 보고 세실리카는 마침내 그 최후의 한 걸음을 내딛을 수가 있었다.
--사용자가 무기를 ‘이해’해서만으로는 안 돼.
무기인 칼리오시리온도 사용자인 아돌을 ‘이해’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 이상 적절한 표현을
세실리카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아돌이 원하는 위치에 검 끝이 도달한다. 아돌이 원하는 속도로 검신이 움직인다.
아돌이 원하는 감촉으로 대상을 베어나간다. 마치 검 쪽에서도
아돌에게 맞춰 행동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처음에 칼리오시리온을 봤을 때를 회상했다.
단번에 말도 안 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보통의 검사는 다루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아돌을 보곤 그 생각은 한층 더 확신으로 변했다.
분명 그 검---칼리오시리온은 아돌만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애당초 다루기 위한 기량이 지극히 높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이 검은 아돌에 “적합해져”있다.
아돌의 체격, 기술, 습관 등에 딱 맞게 맞춰져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아돌 이외에는 그 정도로까지는
“적합하지”않다. 가령 아돌과 같은 기량을 가진 검사가 있어도
아돌 정도로 칼리오시리온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너무 우등생같다’는 건 그런 뜻인가”
이 때, 세실리카는 마침내 아버지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무기는 누가 보더라도, 누가 쓰더라도 우수한 것이었다.
그 무기의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가 있다.
말하자면 ‘범용’인 물품. 무기자체의 성능을 끝까지 추구하여
사용자 개개인에 차이에 대해선 고려를 하지 않았다.
했다 해도 사용자의 체격을 고려한 사이즈 조정정도였다.
대량판매를 전제로 생각한다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를 것이다.
마치 ‘우등생이 생각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기 자신의 성능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상정을 해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용자가 이 무기를 충분히 사용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이 무기는 사용자의 힘을 모두 이끌어 낼 수가 있는가,
양쪽의 ‘성질’은 잘 맞는가…
그것들을 추구한 결과, 만들어지는 것은 ‘범용’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있어선 최량의 선택이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 있어선
결함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최고’에 이르는데 필요한 것일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히죽히죽 웃는 세실리카.
마침내 얻은 깨달음에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우선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다시금 전장을 내려다 보았다.
도기가 말한 대로 이곳의 산적은 어느 놈이던 대단한 전투력은 없었다.
몇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아돌과 도기의 상대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수가 수인만큼 인해전술로 아돌 일행의 체력이 소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어떻게든 타개책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정말로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이네…”
세실리카는 주위를 둘러보고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것인지 가방에서
애용하는 망치를 꺼내었다.
지면에 엎드리고 망치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장소를 바꾸어
다시 두드리고 다시 장소 바꾸는 일을 반복하였다.
몇 분 후---
“여기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는 망치를 크게 들어 올린 후,
대장장이 일로 단련된 완력을 총동원하여 목표로 한 위치에 내려치고
재빠르게 뒤로 후퇴하였다.
한 박자 늦게 세실리카가 두드린 장소에서 금이 나기 시작하며 수초 후,
꽤나 큰 범위의 바위가 무너져 내리며 언덕을 따라서 떨어져 나갔다.
세실리카는 일류의 대장장이.
대장질에 필요한 금속의 광석류는 납품 받는 것만 아니라
스스로 채취하러 다녔다. 특수한 재료일수록 특히나.
그러니 그녀는 채굴에 관해서도 일류의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디를 파면 좋은지 어디를 파면 안 되는지,
어디가 단단하고 어디가 약한지 간단히 판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바위로 만들어진 언덕에서 약한 암반에 충격을 주어서
소규모의 산사태를 일으키는 정도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돌! 도기! 잘 피해~~!”
낙석이 산적들을 덮쳤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니까 적의 수를 줄이는 의미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낙석을 피하려고 산적의 무리에 틈이 생겼고 거기에 더해서
경도가 험해서 올라오기 힘든 언덕도 떨어진 낙석을 발판으로 하는 것으로
다소 올라오기 쉬워졌다.
“지금이야, 두 사람! 어서 이쪽으로 올라와!”
커다랗게 손을 흔드는 세실리카.
분명히 아돌과 도기가 단숨에 포위를 돌파하여 언덕에 올라오면
나중은 세 명이서 도망을 치면 될 뿐이었다.
꼭 산적들 전부를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이 세실리카에게 손을 흔들고 언덕을 올라가려고 한 그 때,
급작스럽게 아돌의 얼굴색이 변했다.
한순간 늦었던 도기도, 아니, 산적들조차도 창백히 변했다.
“세실리카!”
“아가씨!”
“엣??”
급작스럽게 세실리카의 주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그곳만 짙은 구름이 태양을 차단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도 한순간. 다음 순간에 거대한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지나갔고
너무 빠른 속도와 질량이 일으킨 풍압에 세실리카의 몸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무, 무슨 일이…”
급격한 사태에 놀라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는 세실리카.
그리고 일어난 그녀의 눈에 비춘 것은 한층 더 경이적인 것이었다.
“………새?”
형태에서 보자면 분명 그 단어가 적절하였지만 크기가 너무도 현실감에서 떨어져있었다.
펼쳐진 날개는 10메라이를 넘었고 부리는 대검이나 창보다도 컸다.
뇌리에 스친 것은 이전에 주점에서 도기에게 들은 소문.
---‘날개를 펼치면 소쯤은 한 번에 감싸 쥐고 날개 짓 한 번 하는 것만으로
구름 위에 까지 날아가는 괴조’
“거…짓말… 정말로 실존했다니…”
끼에에에오오오우우우우----
생각지도 못하게 귀를 틀어막을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뿜으며
괴조는 언덕의 앞을 약간 선회해서는 고속으로 하강을 하였다.
지면에 돌격하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무서운 속도와 질량에 의한 충돌로
수십 명의 산적들이 치여 날라 갔다.
그 공격만으로 멈추지 않고 괴조는 커다란 부리로 찌르고 발톱으로 할퀴고
가끔씩 날개로 일으키는 풍압을 일으켜 공격했다.
산적들은 저항을 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쓰러져나갔다.
아돌과 도기도 당연히 구별할 것 없이 괴조의 공격범위에 있었으나
두 사람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어떻게든 회피에 성공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아연실색해서 언덕에 서있는 세실리카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태는 한층 더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어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바탕 날뛴 괴조는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어딘가로 날아가나 생각했더니 활공을 하면서 방향을 바꾸어
확실하게 세실리카를 표적으로 삼았다.
“에엣!!?”
자신이 노려지고 있단 것을 깨닫고 공포에 경직 되어버린 세실리카.
“도망쳐!! 세실리카!!”
아돌이 무언가 외쳤던 듯하지만 머리가 혼란되어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발도 굳어 움직일 수가 없다. 먹이를 노리는 그 시선에 노출되어
본능에서부터 떨림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도망쳐야 해!!
그렇게 머릿속에서는 이해하고 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 세실리카.
아돌이나 도기라면 모를까 애당초 세실리카의 신체능력으론 도망쳐도
헛수고일지도 모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다.
아무튼 결과로서 사태는 한층 더 최악의 방향으로 향했다.
기이이오오오우우우우우-----
두 번째의 포효. 비교적 근처에서 그것을 들었던 세실리카는 일순간 두통과 현기증을 느꼈고
그리고 그 순간, 괴조는 이미 눈앞까지 덮쳐왔다.
--나 이대로 죽어버리는 걸까나.
하지만 또다시 예상을 뒤집고 괴조의 거대한 발이 세실리카를
부여잡고 그 상태로 고도를 유지한 채 멀리 날아가려고 하였다.
산적들에게는 문답무용으로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대로 잡혀가면
이제 자신의 목숨은 없을 테지, 라고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세실리카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로 이번엔 운이 너무 나빴다. 모처럼 해답을 찾아냈는데
그것을 한 번도 시험해보지도 못한 채 죽어버리다니.
순간 지면의 위로 시선을 향하니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불타오르는 듯한 빨간 머리를 한 청년--- 아돌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괴조를 쫓아오고는 있지만 헛수고인 것은 보나마나겠지.
제 아무리 아돌이라고 하더라도 이 고도까지 검을 뻗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돌에게 아무것도 보답을 하지 못했네,
잔뜩 받기만 했는데…이게 가장 미련일려나.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져가는 거리. 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마침내 포기를 한 건지 아돌은 전력질주의 자세를 바꾸어 왜인지
검 자루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애검 칼리오시리온을 평소와는 다른 형태로 쥐어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어쩧게 발버둥쳐도 검의 공격이 닿지 않는 이 거리,
이제 몇 초면 세실리카가 끌려버려 가버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검을 던졌다,
어디까지나 근접무기인 검을 창이라도 던지는 듯이 온 힘을 실어서,
마치 투척기라도 사용하는 듯이 던졌다.
장검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안정적인 궤도를 그리며 일직선으로
괴조를 향해 날아가 괴조의 날개와 동체연결부위에 깊숙히 꽂혔다.
기기익오오우우우오오---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고 괴조는 공중에서 크게 밸런스를 잃었다.
그래도 그 크기이기 때문에 추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픔과 놀람에 일순간 힘이 빠져
발로 잡고 있던 사냥감이 하늘로 떨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아-----”
구속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할 사이도 없이
세실리카는 급속한 낙하로 인해서 생각지도 못하게 비명을 질렀다.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아돌은 절묘하게 세실리카를 받았고
그대로 공주님안기의 요령으로 그녀를 끌어안아 근처의 바위 그늘 밑으로 숨었다.
상처 입은 괴조는 적의 모습을 찾아서 공중을 수차례 선회를 하였지만
결국 그와 같은 것을 찾지 못한 채 날갯짓을 하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야 세실리카는 혼란에서 회복을 했다.
현 상태를 이해한 그녀가 띄운 표정은 안도가 아니라 초조였다.
“아돌, 어떻게 할 거야!!”
모습이 점점 작아져가는 괴조를 가리키며 세실리카는 울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 이젠 손쓸 방도가 없을려나”
“하지만, 하지만!! 칼리오시리온이!!”
최후의 수단으로서 아돌은 검을 투척하여 세실리카를 구하였지만
검은 괴조의 몸에 꽂힌 채로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결국엔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일순간 아쉬운 표정을 한 아돌이었지만 금방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뭐, 세실리카가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어”
“좋지 않아!! 그렇게나 소중히 했었잖아!! 그런 굉장한 검이고,
그렇게나 상성이 좋은 데다, 함께 고락을 같이 헤쳐 온 파트너 같고,
무슨 일이 있어도 팔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말하면서 참을 수가 없었던 세실리카는 작게 울음을 터뜨렸다.
“검은 싸우기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야.
검이 원인이 되어 소중한 것을 잃으면 그거야말로 본말전도지.
검도 원하는 바가 아닐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세실리카를 진정시키려는 아돌의 얼굴은 해맑았다.
---뭐야, 이 남자는? 그렇게나 소중히 하고 있던 검을, 검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검을, 타인을 구하기 위해서 주저 없이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니.
---아니, 어쩌면 이런 남자라서 진정한 명검이 그에게 ‘모이는’것일지도 몰라.
검의 소망을 이루어줄 주인으로서 그가 선택된 거야.
기쁨, 슬픔, 아쉬움, 애달픔… 여러 감정이 겹쳐서 말이 나오지 않고
그저 울음소리만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도기였지만 이 장면을 보고는 ‘또 아가씨를 울려버린 거냐, 아돌’이라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Act. 8
8
마을의 주점에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아돌, 도기, 세실리카.
세 명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그 해적단, 괴멸된 것 같군.”
술을 부으며 도기는 말했다.
아돌 일행과의 싸움으로 전력이 반감한 상황에서 그 괴조가 나타나 날뛰고 사라지자,
조직으로서 유지가 불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자업자득이네”
특히나 트라우마가 된 것도 없이 담담히 말하는 세실리카.
더 이상 그런 녀석들이 어찌됐던 알바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후, 다시금 괴조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어. 몇 가지 재미있는 것을 알아냈거든.”
“헤에…”
“어떤 건데?”
이 화제에는 세실리카도 도기도 흥미를 보였다.
“우선은 예전부터 불리는 이름이 있는 모양인데, ‘에랄=가롤’이라고 하는 거 같아”
“너무 길어”
“‘괴조’라고 하면 되지 않냐?”
“그러네”
결국 세 명의 안에선 ‘괴조’로 정착됐다.
“뭐 예상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 아지트로 사용되어진 동굴은
애당초 괴조의 둥지였던 듯해”
“그럼 조금 부자연스러운데. 어딜 봐도 동굴에 살만한 생물이 아니야.
왜냐면 새라고, 새? 등치도 컸고 동굴 안이라면 날 수도 없잖아.”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유체(幼體)일 때엔 날지 못하는 모양이야.
날개의 발육이 늦어서 유년기는 대개 이족보행 생활을 하게 돼.
그 동굴의 크기가 딱 맞았을 거야.”
“그렇구나”
“뭐, 유체라고해도 곰보다 더 컸을 테지만 말야”
도기의 추측에 아돌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해서 날개도 제대로 자랐으면 동굴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날아가는 모양이야”
“그 때 동굴이 산적단에게 점령을 당했단 건가”
“애당초 어째서 돌아온 거야?”
“거기까진 알 수가 없지만 귀성해서 알이라도 낳으려고 했었던 게 아닐까?
아무튼 수년 만에 돌아온 둥지가 완전히 엉망이 되자 분노에 차 산적들을 무찔렀다.”
“그럼 내가 괴조에게 잡혔던 것은 낙석을 일으켰으니까
제대로 복수하기 위해서…인가?”
“그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지만 아마도 원인은 다른데 있어”
“무슨 원인인데?”
“아무래도 그 괴조의 주식 중 하나가 그, 어린 엘레가리 베어인 모양이야…”
“서, 설마…”
“응…아마도, 엘레가리 베어의 모피코트를 입었던 세실리카를 먹이로 인식한 거겠지.”
“또 이 옷이야!!?”
크게 소리치는 세실리카.
“어이, 어이. 아가씨 진정하라고”
“왠지 모르는 사이에 저주받은 장비를 만들어 버린 걸지도…”
그런 느낌으로 언제처럼 잡답을 나누는 세 명.
그리고 어느 샌가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슬슬 가볼게”
의자에서 일어나 짐을 양손에 드는 세실리카.
“벌써 가는 건가”
“세실리카--”
“아무 말도 하지 마!”
무언가 말하려는 아돌을 막으며 세실리카는 희한하게도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이미 이별을 했던 참이니까,
무슨 소릴 해도 제대로 이별인사를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그렇군…”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공기가 셋 사이에 흐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둘래”
이제 와서는 세 번째나 보게 되는 포즈.
세실리카는 양발을 어깨보폭으로 벌리고 왼손을 허리에 두고
오른손을 척하고 아돌을 가리켰다.
“아돌 크리스틴! 다음에 만날 때엔
반드시 칼리오시리온보다 좋은 검을 만들어 줄 테니까, 각오해두라고!!”
그렇게 말하고선 그녀는 자신과 결의에 찬,
지금까지 가장 멋진 미소를 아낌없이 내보였다.
“응, 기대하고 있을게”
이렇게 해서 대장장이 소녀 세실리카 켄시아는 새로운 해답을 가슴에 품고
더 높은 ‘최고’의 경지를 목표로 여행에 나섰다.
에필로그
마을의 무기점에서 새로이 구입한 검을 손에 넣은 아돌을 도기가 마중했다.
“아돌, 또 숏소드를 샀냐”
“이 곳의 무기점엔 이것밖에 없어서…”
“역시 아가씨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던 편이 좋지 않았냐?”
“뭐, 신경 안 써.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그래,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숏소드로 시작해서
언제나 대모험이 시작되는 예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숏소드조차 가까운 시일에 불가항력적인 일로 인해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을, 이 때의 아돌은 아직 알 방도조차 없었다…
End.
허접 번역. 오자, 탈자 존재. 퍼감, 비사업적 이용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