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씻기 운동
오늘 샤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환경보호를 위해, 이 지구를 위해 내가 샤워를 하는 게 맞나? 사실 집구석에만 있어서 딱히 씻을 필요도 없거든.
인류가 안 씻는다고 생각해 봐. 꽤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일단 물부족 국가는 면하지 않을까? 그래, 4대강사업 같이 돈 들고 자연 파괴하는 일을 하기 전에 안 씻기 운동을 했어야 했어.
비누고 샴푸고 바디워시고 화학제품도 안 쓰게 될 테니 물고기도 좋아할 거야. 그리고 그 많은 플라스틱 통도 많이 줄어들 거잖아? 겨울철 온수도 틀 필요 없으니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이고 천연자원도 아껴. 생각할수록 꽤 괜찮잖아!
난 당장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어. 안 씻기 운동 같은 거 없나 살펴보려고. 그런데 여간 찾아봐도 나오지 않더라고. 찾았다 싶은 것도 나랑 의도가 다르고. 피부를 위해서 씻지 말자고 하던대. 처음엔 냄새가 좀 나지만 자연히 세균들과 밸런스를 이루며 건강한 피부가 된대. 그 후엔 냄새도 안 나고. 호오, 이거 더 끌리는 걸.
이렇게 이득이 많은데 좀 퀴퀴해지는 거야 참을 수 있어. 지구를 위해 작은 시도를 하는 거지. 이건 마치 채식주의자가 된 기분이야. 난 고기를 좋아해서 채식주의자는 못 되지만 다른 방법으로 기여하는 거지.
그렇다고 막상 하려니까 겁이 난단 말이지. 집구석에만 있을 땐 문제가 없는데 가끔은 밖에 나가야 할 상황이 오거든. 머릿기름이 좔좔 흐르는 채로 나갈 용기는 아직 없어. 이런 거 보면 채식주의자들은 정말 대단해 보여.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잖아. 게다가 안 좋은 시선도 샐러드에 쌈 싸 먹어 버리고. 나도 용기를 내야겠어. 집에서만이라도. 그래, 앞으로 최소 3일은 씻지 않을 거야!
좀 씻어라! 어머니, 이 지구를 위해 소자는 안 씻기로 했습니다! 야 너도 평소에 안 씻잖니? 엇. 들켰나. 그래, 평소대로 집구석 폐인처럼 생활하면 자연히 지구를 위한단 말이지. 나도 편안하고. 상부상조군. 이걸 뭐라고 해야 될까.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히 안 씻기 운동의 선구자가 된 거. 포레스트 검프의 달리기 신? 난 달렸을 뿐인데 그냥 따라오잖아.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백수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거야.
나랑 안 씻기 운동에 참여하실 분? 여기에 참여하면 이점이 많다고. 우선 돈 들어가는 일이 줄어들지. 게다가 치장하느라 낭비하는 시간도 없어. 당당히 자신의 체취를 보여줄 수 있다고. 우린 더럽다 하지만 속으론 다 좋아하잖아! 꼬카인, 암내, 비듬향기. 없다고? 알았어.
강요할 순 없지. 고독해지네. 아! 아냐! 나에겐 동참자들이 많이 있었어.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벌써 이 운동을 실천하고 있을 거야. 게다가 동물들을 봐. 그들은 웬만해선 씻지 않지. 일부 불쌍한 녀석들이 주인 손에 억지로 물속에 끌려들어가지만. 오 그들에게 평화를.
그런데 내가 맡아도 견딜 수 없는 게 하나 있어. 오줌 지린내. 이건 중독되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하, 그래 그냥 물로 씻는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원래 취지인 물을 아낀다 에선 후퇴한 것이지만 이건 봐줄만 한데.
일주일 간 물로만 씻어볼게. 행운을 빌어 줘. 정말 사람냄새가 뭔지 맡아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