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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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사람냄새 (0) 2018/12/09 PM 06:55

사람냄새

 

 

전에 내가 물로만 씻는다고 한 적이 있어. 이유는 지구를 위해서. 참 거창하기도 해라. 처음엔 그냥 농담처럼 넘어가려 했는데 찔리더라고. 그래서 진짜 했어. 물로만 씻었다고. 어떻게 됐게? 한 달간 실험대상자의 경과보고야.

 

물을 아끼려고 했던 목표는 완전 실패야. 딴 게 아니고 샤워시간이 10분은 늘어났거든. 샴푸도 비누도 안 쓰니까 더 박박 긁어야 마음이 놓이더라고. 머리를 감을 때면 가렵지 않을 때까지 긁적이는 거지.

 

샤워가 끝나고 나서의 개운함은 차이점을 못 느끼겠어. 예상하기론 여름철 비 맞은 양 찝찝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 개운 해.

피부는 그대로야. 좋아진 느낌도 나빠진 느낌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개기름이 넘쳐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

 

가장 의외인 게 머리야. 샴푸로 감아도 하루만 지나면 똥내가 나기 시작하잖아? 그런데 물로만 씻으니 안 나더라고! 정말 신기했어. 그 있지, 머리 감고 하루 지난 후에 손으로 두피를 툭툭 건드리고 킁킁 맡으면 나는 꼬리한 냄새. 그게 안 나더라니까! 이틀이 지난 후에도. 그래서 결정했지. 앞으로 머리는 물로만 씻기로.

 

내가 이래 보여도 샴푸, 비누, 선크림 하나하나 따져서 샀거든. 피이지가 들어가니 안 되고, 벤조 어쩌고 저쩌고가 들어가서 안 되고. 발암물질이라는 것들은 다 피해 다녔다고. 더 좋은 샴푸를 찾아다녔는데 종착지는 그냥 안 쓰는 거였다니!

 

소기의 목적은 이뤘어. 샴푸와 비누 안 쓰는 게 어디야. 꽤 뿌듯하다고. 물론 다른 사람은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 나와 같이 실험체가 되어 줄 사람 없어? 백수가 이렇게나 없나. 아무튼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번 일로 느낀 게 있어. 지나치게 깨끗하게 살았나 하고. 귀 파는 것도 좋지 않다던데 그냥 막 팠거든. 시원하잖아. 때 미는 것도 안 좋다며? 개기름이 뭐야, 뽀독뽀독 광이 나도록 닦는 거지.

거기서 만족을 못 하고 유튜브로 무좀 발톱 갈아내기, 귀 털 깎기, 건선 피부 긁어내는 영상을 찾아보지. 뾰두라지에서 고름이 터져 나오는걸 보고 쾌감을 느낀단 말이야.

 

씻지 못해 한이 된 우리 조상들의 경험치가 그대로 넘어와서 그런 걸까? 깨끗한 거에 대한 광적인 집착. 전염병과 간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런데 내가 씻는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니 순전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더라고. 쪽팔리기 싫다는 이유.

 

살면서 기억할게 하나 늘었네. 외모로 사람차별하지 말자는 건 식상해. 여기에 추가하자고. 개기름과 냄새로 사람차별하지 말자.

 

사람냄새는 무향이니까.

 

 

-주의-

뻑뻑한 머리. 남자는 면도할 때 개기름이 면도기에 묻어나올 정도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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