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
내가 초등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쳤을 때인데, 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꽤 머리 썼었다고. 5개월 비정규직이야. 아무튼. 애들을 가르쳤을 땐데 좋았어. 정말이야. 꼬맹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꼬맹이가 되거든.
근데 다는 아니야. 몇몇 아이는 날 놀라게 만들어. 기독교에 심취한 1학년 아이랑 다윈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경우가 있었거든. 난 걔가 절실한 기독교임을 알았기 때문에 최대한 좋게 말해줬어. 창조론도 좋지만 진화론도 들어볼만 하다고. 그랬더니 걔가 그러더군.
샘, 샘은 사람이 원숭이한테서 나왔다고 믿는 거예요? 두 눈엔 어린아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경멸을 담아서. 내가 뭐라 했겠어. 내가 뭐라 말을 할 수 있겠어.
난 그 아이 탓을 하지 않아. 얘들과 한 달만 있어보면 알게 되지. 얘가 이상한 건 걔 부모나 선생이 이상한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러니 내가 뭐라 했겠어. 얘야. 참 안타깝구나. 부모님은 잘 지내시니? 왜 그렇게 널 기르셨니? 성경 외에는 책이란건 안 읽으신 분이니? 물론 말은 하지 않았어. 얘한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속으로 생각하는 거지. 잠깐, 나도 선생이잖아?!
난 걔가 정말 불쌍해. 겨우 1학년이라고, 1학년이면 몇 살이야 8살이지? 고작 8년을 산 아이가 벌써부터 꼰대머저리가 되버렸다고. 창조론만 옳다. 진화론 믿는 무식한 놈들. 너희들과는 상종도 안 해. 이런 게 머리부터 고추까지 박혀버린 거야. 얘가 크면 뭐가 되겠어. 김진핑?
이거 뿐만은 아니지. 고학년 아이라고 해서 안심하긴 일러. 6학년이면 다가가기도 부담스럽다고. 몸은 이미 다 자랐어. 그런데 생각머리는 1학년 꼬마 애랑 똑같이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5년간 대체 뭘 가르친 거야.
6학년 여자애가 와서 한다는 말이 뚱뚱한 놈은 게으르고 덜떨어진 인간이라는 거야. 기가 막혔어. 화도 안 날 정도로. 그래서 물어봤지? 왜? 자기관리를 잘 했으면 살이 쪘겠어요. 걔들은 게을러터져서 먹기만 하니까 살이 찐 거라고요. 흥.
맙소사. 여기도 애랑 똑같이 생각하는 머저리가 있어? 아 미안해. 머저리는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무한경쟁 사회 속에 수십 년을 버틴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말야, 초등학교 6학년 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뭔가 X같은 일이 걔를 다 망쳐놨다고.
난 걔가 불쌍해.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는 거에 완전 찌들어 버린 거지. 걔도 수능만 보고 나면 인조인간이 되겠지. 코도 입도 다 고치고 지가 예쁜 줄 알겠지만, 가슴에 미사일만 달고 다니는 깡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야.
내가 바란 게 뭐냐고? 앞으로 자라날 어린이는 그래도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살찐 애든 고추가 고추를 사랑하든 피부가 하얗든 머리가 흰색이든 받아들이는 거. 아니면 왜 그런지 노력이라도 하는 거. 그런데 이런 꼴을 보니 내가 화가 나서 미쳐버리겠지.
살찐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누구를 이해하겠어. 걔 논리라면 우리는 다 게으르고 덜떨어진 인간이야. 서울대도 못 간 놈들이 어떻게 낯짝을 들고 다니겠어. 장애인이이라고?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피부는 꺼멓다고? 동남아로 꺼져버려. 살찐 인간? 돼지새끼. 이게 말이나 될 소리야?
정말 심각하다고. 난 조기교육을 반대했지만 그 꼴을 보곤 마음이 바뀌었어. 조기교육은 필요해.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근처 도서관에서 하든 학교에서 하든 아니면 새로 짓든 학교를 만들어. 그래서 부모들을 모조리 모아서 의무교육을 시키는 거야. 우리가 사회에서 배운 차별, 편법, 사이코패스, 뒷담화, 따돌림, 사이비 같은 걸 아이에게는 가르치지 못하도록 교육하는 거지.
조기 교육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