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화
초등학교 다니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어. 학교 내에서는 운동화를 못 신는 거. 복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운동화는 손에 들고 가야 했지.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그 동안 먼지를 쓸고 갈 내 양말바닥은 인간 청소기 노릇을 하고 있었거든. 게다가 물이라도 있어 봐. 이젠 양말이 물걸레질까지 하고 있다고. 꼬리한 냄새와 눅눅한 발바닥은 어린 나이에도 끔찍했어. 간신히 교실 앞에 도착해서 실내화를 신어봤자 이미 늦은 뒤라고. 이걸 하굣길에도 또 해야 했지. 다들 기억나지?
내가 어른이 돼서 다시 초등학교에 갔을 때 별 달라진 게 없더라고. 아이들은 등굣길과 하굣길에 인간청소기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었어. 아! 하나 달라진 건 있어. 실내화 품질은 좋아진 거 같던데! 난 비싸서 사지 못하는 크록스 제품들이 널렸더라고. 발 편하다는 그 회사 제품 있지? 윤아짱이 광고하던데. 아무튼.
어릴 땐 이 현상에 불만만 가졌지만 이젠 나도 머리가 커졌다고. 어른의 입장에서 보니 교내에서 실내화를 신기는 이유를 알겠어. 애들 노는 거 보면 바닥이고 뭐고 가리질 않거든. 그러니 아무래도 실내에선 운동화를 못 신게 하는 게 청결에 좋겠지.
근데 말야, 아이들에게 마음껏 뒹굴 수 있는 바닥을 주기 위해선 실내화 하나만으론 너무 부족하다고. 내가 매일 도서실 청소를 했거든. 그 혼돈의 바닥 상태에 대해서 잘 알지. 매일 쓸어도 먼지는 계속 나와. 걸레질은 상상도 못해. 애들 양말 다 젖을 까봐. 그런데 다행인 건 거기서 살구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아프지는 않았다는 거야. 손은 새까맣게 변했지만. 이거 다행인거 맞지?
게다가 실내화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거든. 하굣길 복도에서 신발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태반이지. 자기 편의를 위해 공공재를 부수는 체험을 어릴 때부터 경험시켜 주는 거야.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도 모르겠다니까. 내가 만약 1학년 담임이라면 실내화를 왜 신는지, 왜 그런 규칙이 만들어졌는지부터 가르칠 거야. 운동화 신고 도망간 녀석 생각하니 갑자기 열 받네.
그리고 분실도 많아. 운동화, 실내화 찾아주는 게 중요한 일이었어. 열심히 놀다가 깜빡하는 거야 괜찮지. 그런데 개중에는 일부러 친구 신발을 숨기는 녀석들도 있거든. 화장실 한 구석에 놔두거나 운동장 구석에 던진다거나. 아오 진짜.
꼼꼼한 아이들은 실내화 주머니를 갖고 다니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아이들은 책가방도 무거운 경우가 많더라고. 다 자라지 못한 어깨에 놓인 가방도 안쓰럽게 보이는데 거기에 실내화가방까지 드니 보는 내가 고통이거든.
해결을 보자고. 일단 실내화를 신을 거면 1층 정문에 갈아 신을 장소가 있어야 해. 알록달록 예쁘면서 자기 이름 딱 하니 써져있고 자물쇠도 있는. 그런데 무상급식도 버겁다 하는 분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신발장 설치에 돈을 쓸 수 있을까? 뭐 요즘 애들 수도 줄어서 빈 교실이 생길 지경이라는데 1층은 팍 뚫어버려서 신발장 만들자고. 4대강에 22조나 퍼부은 나란데 이 정도야 해줘야지.
아니면 말야, 차라리 실내에선 맨발로 다니는 건 어떨까? 구멍 날 양말도 필요 없고, 부모님 등골브레이커인 크록스 실내화도 살 필요 없고. 게다가 맨발로 다니는 애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안 된다고? 겨울에 발이 너무 시릴까? 그 넘치는 에너지들이 그 정도 추위야 아무것도 아닐 것 같긴 한데. 에잇 할 수 없지.
아무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청소하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꾀죄죄한 양말들 파이팅.
젖은 복도를 양말 신고 걸었다고요?ㄷㄷㄷ
국딩초딩중딩고딩대딩 다 겪었어도 뭘 아예 못 신게 한 학교는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