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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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시위에 관하여 (0) 2018/12/20 PM 08:45

시위에 관하여

 

 

카풀이다 뭐다 택시기사들이 시위 하는 거 봤지? 밥그릇 싸움에 내가 나설 거는 아니고, 시위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때는 2008년인가, 철부지 나는 시위에 참여했지. 그땐 말도 아니었어. 명박이 물러나라, 쇠고기 수입하면 안 된다, 화물연대 어떻게 하라. 내가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딱 하나였어. 인생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 살면서 시위 한번은 해 보고 싶었다고. 그게 다야.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용자에겐 유희거리밖에 안 됐지.

 

TV카메라가 돌아가고, 대학생 누나들도 있고 좋았어. 번화가에서부터 외딴 부산 부두에까지 갔었지. 그리고 깨달았어. 이건 좀 아닌데? 어린 나이에 시위에 대해서 쓴 맛은 다 본 거지.

 

일단 시민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 나도 도화지 들고 차도에서 가두행진을 했거든. 그때 버스 창문으로 보인 할머니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 나. 증오가 담긴 눈빛. 그게 할머니 한 명이 아니었지. 오토바이에서 검은 고급차까지 다 그랬다니까. 어린 나이에 무서웠다고, 미안하기도 하고. 바로 알았어. 오히려 반발심만 얻은 거야.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에겐 시위 따위를 걱정할 여유는 없다고.

 

그런데 명박산성에 돌진하는 모습에선 수긍도 있었거든. 왜 그럴까 생각하니 그건 뭔가 카타르시스가 있잖아. 권력자에게 덤비는 거 말이야. 내가 못하는 건데 대신 해주는 느낌이랄까. 애꿎게 밤낮 서야 했던 의경들에게만 미안할 뿐이지. 아무튼.

근데 밥그릇 싸움에선 이게 힘들거든. 누가 옳은지 구분도 안 가고, 쳐부술 대상도 없어. 택시노조는 정부를 까지만 그게 정부 잘못인가는 의문이거든. 아니 잘못 자체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오히려 개선 아닌가? 워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담.

 

그러니 처음부터 조용히 접근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시위로는 적합하지 않은 사안인거 같아. 아무리 봐도. 국회로 가서 돈을 먹였어야 해. 상대가 카카오라는 막강한 상대지만 어쩌겠어. 전국 택시 사납금이면 어떻게 승부 볼 수 있지 않았을까? 30만 명 곱하기 15만원이면 한 달 얼마야? 45? 450?! 이거 생각보다 장난 아니네.

 

내가 시위를 하면서 두 번째로 느낀 건 사람이 많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이야. 당시에 사안이 막 여러 가지였잖아. 그러다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지. MB 물러나라 라고 한목소리 내던 사람들이었는데 거기서도 차별을 하더라고. 한 사람이 마이크 앞에 서서 말하는데 군중사이에서 저 새끼 전라도네 라고 했지. 그것도 크게, 호응하듯이.

사회자가 급히 행사를 종료했어. 그리곤 그렇게 열렬히 한 목소리를 내던 군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흩어졌어.

 

이번 택시는 어떨까? 밥그릇 싸움에선 아무래도 응집력이 있지 않겠어? 그런데 이것만큼 분열되기 쉬운 게 없다고. 남들이 장사 안 할 때 팔아먹는 게 최고잖아. 게다가 사납금이다 월급제다 카풀 우선 택시다 섞이면 그 속에서도 아수라장이 될 걸.

 

마지막 내가 시위를 그만둔 이유기도 한데, 6번째 시위였던가, 난 현자타임에 돌입했어. 관종짓은 충분히 했겠다 드디어 머리로 생각을 시작한 거야. 부산에는 아무래도 화물연대 시위가 많았거든. 난 그냥 미국산 쇠고기가 싫었을 뿐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화물연대 파업에 같이 참여하고 있더라고. 아이 물론 아직도 잊지 못한 부산대 사회학과 누나가 기사님들의 핍박받는 환경, 노동자의 권리를 설명해줬지만 난 이해할 수준이 못 됐다고. 이거 이용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 남의 밥그릇 싸움에....... 누나 잘 살고 있지?

 

택시 집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 많은 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사납금 착실히 받고 있는 택시 회사라던가. 시위형태가 스스로 똥 싸는 꼴인 거 봐서 카카오가 일부러 부추긴 거 같기도 하고.

정치권에서도 이용해 먹으려고 안달이더군. 나경원도 왔다며? 박수를 받았다던데. 글쎄, 그쪽에서 돈 없는 사람 생각한 적이 있기는 있나? 뭐 통수가 생활화 된 곳이니 별 생각 없겠지. 먹다 버리면 그만 아니겠어.

 

내가 이렇게 시위에 대해 구구절절 말한 건 언젠가 다시 하게 될지도 몰라서야. 나 혼자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국 100만 백수와 같이 할 수도 있지. 그 때는 효과적으로 하자고. 진짜 열심히 생각해서, 시민들의 동정을 받으며, 불쌍하게. 백수는 대기업도 아니고 사납금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로비는 못 하잖아! 한명씩 굶어 죽는 방법으로 사회에 알리는 거 어때? 병원비 없어서 아파 죽는 것도 괜찮네. 하청 알바하다 사고로 죽기도 하고.

 

....! 우린 이미 시위 중이구나. 처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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