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몰카
오늘 재밌는 기사를 봤어. 기사 제목은 여성화장실에 설치된 안심스크린. 흠. 안심스크린이라 하길래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는데 사진을 보니 플라스틱 쪼가리더라고. 화장실 밑에 공간 있잖아. 거길 플라스틱 자 같은 걸로 가려놓은 거였어. 거기 문구도 있었는데 뭐 하여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불법촬영 신고는 112라던가, 아 유성구. 그래 이걸 한데가 유성구인가봐. 어디있는지도 모르지만 내 머릿속엔 유성구란 이름이 박혔으니 홍보엔 대성공이군.
이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별로야? 글쎄, 댓글을 보니 비난 일색이더라고. 여성가족부는 오늘도 당신의 세금을 처먹고 있습니다. 저거 하는데 얼마나 먹었냐? 그래,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나도 처음엔 이건 뭔 병신 짓인가 했어. 달랑 플라스틱 쪼가리로 똥 싸는 모습을 찍으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범죄자를 꺾을 수 있겠어? 아니라고. 게다가 설치한다고 박은 나사들 말이야. 그건 오히려 몰카 설치하기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는 거 같은데.
근데 말야, 다시 생각해 보니 효과가 아예 없을 것 같진 않더라고. 거기에 적힌 문구만 고치면 말이지. 몰카범들이 조심스레 장치를 설치하려고 했을 때 그들을 놀라게 할 만한 글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난 처음엔 겁나는 문구를 생각했어. 그런걸 봐야 흠칫이라도 할 거 같아서. 이런 거지. 넌 이미 죽어있다. 당신의 후장은 안녕하신가요? 출동 1분전 철컹철컹. 어머, 너무 멋있다. 이건 뭐에요? 전. 자. 발. 찌.
괜찮아? 근데 그런 거 있잖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되는 거. 화장실 냄새를 참아가며 촬영에 몰두하는 이 분들의 열정을 내가 과소평가한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더 정감 있는 글을 생각해봤어.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딸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흑흑. 내가 여기서 엄마, 딸이라고 한 건 촬영범 중엔 여자도 있을 거라는 추측 때문이야. 생각해봐. 여자화장실에서 남자가 찍기 쉽겠어 여자가 어, 하기 쉽겠어? 여자라고.
아무튼 조금 더 괜찮아졌어? 근데 이거도 만족스럽지 못하단 말이지. 가족이 없을 수도 있잖아. 아님 싫어하던가. 그래, 이것도 부족해. 뭔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사자의 깊은 내면을 움직일만한 것이어야 한단 말이지.
그러다 떠올랐어. 글로선 안 되는 것. 그림인데 고양이가 붕가하는 그림을 그려 넣는 거지. 그 옆에는 화장실에서 낑낑대며 몰카 찍는 사람을 그려놓고. 그걸 고양이들이 게슴츠레하게 보는 거야.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뭔가 자괴감 들지 않아? 불쌍한 닌겐, 넌 오늘도 돈 때문에 이 고생이구나. 오늘도 오른손 운동만 하니, 넌 언제 제대로 붕가 할래?
너무 선정적이라고? 그럼 한 단계 낮추자고. 고양이 그림은 똑같아. 붕가는 하지 않지만 그윽하게 바라보는 거지. 마치 별장파티에서 서민들 바라보는 높으신 분들처럼. 내 눈을 바라봐 넌 초라해지고. 이건 현실성 있어? 없다고. 알았어.
그래도 전국 화장실에 고양이 그림이 걸리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