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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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꿈의 해석 (0) 2019/01/01 PM 06:04

꿈의 해석

 

 

1911. 별일은 없지? 난 새해 아침부터 싸한 느낌으로 일어났어. 군대 꿈을 꿨거든. 보통 개꿈은 오줌 누면서 다 잊어버리지만 몇몇 섬뜩한 꿈들은 여파가 대단하지. 오늘 꿈은 너무 토악질 나와서 생생해.

 

꿈 이야기를 해 볼까. 일단 처음 보는 부대야. 막사를 이동식 버스로 쓰고 있더라고. 밥 먹은 기억은 없는데 설거지를 하러 갔어. 사람들이 야외 주방 앞에서 씻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거기 줄을 섰지. 금방 내 차례가 오데. 씻으려고 하는데 물이 이상한거야.

 

물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조그만 하수구 같은 곳에서 나오고 있었지. 라면사리로 보이는 흰 면발이 머리카락 엉킨 것 마냥 흘러나왔어. 근데 그걸 보고도 계속 씻더라니까. 벽면을 봤지. 풍자인지 진심인지 모를 벽보가 붙어 있더라고. 일류 최강의 수세미, 오징어!

 

벽보를 본 후에 하수구 넘어 주방을 봤어. 거기선 취사병으로 보이는 병사가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고. 그래, 취사병이 설거지 한 물을 일반 병사들이 재사용하고 있었지. 근데 내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거야. 심지어 주방을 오래 보지도 못 했어. 왜냐고? 저기서 설거지 하고 계신 취사병님께서도 선임이시다. 감히 나 따위는 눈도 마주칠 수가 없다. 굽신굽신.

 

그 음식토사물에 설거지를 한 후에는 내가 향한 곳은 화장실이야. 설거지 한 곳 바로 앞에 야외화장실이 있더군. 근데 아무도 쓰질 않는 거야. 그래서 나도 안 쓰더라고. 오 맙소사. 기어이 오줌보를 참아가며 이동식버스 안에서 화장실이 어딘지 찾아다녔지. 그리곤 깼어.

 

깨어나서 꿈을 해석해 봤지. 왜 하수구물에 설거지를 했을까? 아마 밤에 오뚜기 피자를 먹고 속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 같아. 우웩 게워내고 싶은 욕망의 발현? 오줌이야 아침에 화장실 가고 싶었으니까 그렇고.

 

근데 왜 군대였지? 그것도 처음 본 부대. 소름 돋는 건 나의 행동이었어. 철저하게 조직과 상부에 충성하는 개의 모습. 토악 물에 씻는 것도 당연하고, 눈을 내리 깔고 굽실거리는 것도 당연하고, 아무리 급해도 누구 허락 없으면 쓰지도 못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개념 있다고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니까.

 

설마 난 노예의 삶을 꿈꾸고 있는 걸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그 욕망을 꿈에서 그렇게 철저하게 이룬 거야? 이성과 무의식이 분리될 정도로?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했던 군대를 다시 가고 싶어 하는? 근데 왜 하필 말단병사였을까. 이왕이면 장군 꿈이면 좋았을 걸.

 

오줌 싼 후 다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데 자기반성 시간을 가졌어. 말로는 지배층을 비난했지. 그러나 기회가 오면 언제든 똥꼬 핥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야. 그게 아무리 부당한 일이더라도. 여러분까지 팔아먹었을 지도 모르지. 이 자리에서 사과할게!

 

그러나 딸랑거리는 내 모습이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는 아니야. 걔도 다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 방법이 잘못됐지만. 그러니 잘 타일러서 무의식 속 특실에 살게 할게. 널찍한 503호가 좋겠다.

 

새해 용기를 내겠어.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 다음번에 비슷한 꿈을 꾸게 되면 다르게 행동하려고 할게. 내 무의식이 들어줄 진 모르겠지만. 안면도 있겠다 친해졌으니까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쫄지 마 무의식아! 꿈속에서 신은 너라고! 네가 세상 그 자체지. 모든 걸 바꿀 수도, 이룰 수도 있어.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고.

 

살벌한 현실에선 내가 살아갈 테니까. 우리 모두가! 새해 모두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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