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주거기준법
최저임금을 두고 요즘 말이 많지? 돈 문제만큼 민감한 것도 없으니 치고받을 수밖에 없을 거야.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오, 나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려는 건 아니야. 임금 포기자가 어떻게 감히 이 문제를 논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 방구석! 방구석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루 24시간을 다 보내는 공간! 최저임금에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잖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최저 주거 기준?
그 생각이 들자 당장 구글에 검색해 봤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저 평수는? 세상에, 구글은 모르는 게 없다니까. 3인 가구 기준 36제곱미터, 11평이고. 1인 가구는 14제곱미터, 4평 정도라네. 크기는 이렇고 그 밖에 방음, 환기, 채광, 난방설비를 적절히 갖춰야 한다고 하는군. 흠, 적절히.
이건 어디서 정했나 보니까 주택법에 쓰여 있는 거더라고. 맙소사, 법으로 최저 주거 공간을 보장한다니! 이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니까. 이 정도면 우리나라 보기보다 살기 좋은 나라 아니야? 아앙? 그렇게 짓는 거랑 거기서 살 수 있는 거랑은 별개라고? 에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근데 이상하지 않아? 기준미달인 공간을 많이 봤거든. 특히 고시촌. 1평이나 될까 말까 한 방에 주방이나 화장실은 공용이지. 여름엔 쪄죽지. 야동이 필요 없다니까. 벽에서 서라운드로 신음소리가 나와. 문제는 당사자를 아침에 봐야 돼. 이거 완전 주택법 위반이잖아! 고시원만 하겠어? 판잣집이고 비닐하우스고 정말 열악한 곳이 있잖아.
내가 바로 정의다! 다 신고!....하려는 찰나... 알고 보니 고시원은 주택법에 적용을 안 받는대. 다중생활시설이라고 하더군. 여긴 최저면적 기준이 아예 없더라고. 닭장 만들 듯이 쪼개고 또 쪼개는 거지. 근데 웃긴 건 고시원이기 때문에 방에 책상은 반드시 놔야 돼. 야! 침대는!
방 크기 규정이 없는 대신 복도 폭은 1.5미터 이상으로 해야 돼. 스프링클러도 달고. 이건 고시원 화재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규정이겠지? 얼마 전에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고. 이번에 법이 더 강화되어서 옛날 고시원에도 임시 스프링클러를 모두 달도록 한다네.
소방규정 강화되는 거 좋지. 근데 왜 방 규정은 언급이 없을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말이지. 고시원은 개돼지가 사는 공간인가? 아니잖아. 당장 법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도 돼. 규정이 강화돼서 시설이 좋아지면 비싸질까 봐. 고시원에는 가난한 학생, 구직자, 노인, 만성백수들이 많잖아. 한 푼이 더 소중한 사람들. 그 고시원에서 사는 것도 버거워 비닐하우스로 가는 분들도 있고. 으아 복잡하네! 앗! 이거 완전 최저임금이랑 똑같잖아! 에잇! 나라가 어떻게 해주겠지! 사람답게 살자! 지금 시대가 어느 뗀데! 최저 주거 기준 상승 가즈아!
아무튼. 그러고 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방이 크진 않아. 1.5평정도 되려나? 가로 230, 세로 200. 대신 커다란 창문이 있다고. 경관도 제법 괜찮아. 산복도로 달동네 축복이지. 게다가 지난여름에 5등급 벽걸이 에어컨도 달았다니까.
편안해. 여기서 먹고, 자고, 읽고, 야동도 보고, 글도 쓰지. 책상과 의자와 옛날에 훑었던 책장이 2개 놓여있지. 침대는 커서 못 놨어. 대신 바닥에 매트릭스를 뒀지. 나와 함께 한 그 물건들도 이 공간을 사랑하는 거 같아.
난 사람답게 살고 있어. 여러분도 행복한 곳에 살면 좋겠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