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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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걱정성 치매 (0) 2019/01/21 PM 04:36

 

 

 

 

걱정성 치매

 

 

치매에 관련된 기사나 영상을 보면 언제나 착잡해. 건강했을 때부터 해가 갈수록 자기 할머니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보는데....참담했어. 모두들 그럴 거야.

 

초등학교 5학년까지 증조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 어른들은 왕할머니라 불렀어. 치매셨지. 그저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계셨어. 이렇게. 말도 하지 않으셨고. 마치 없는 사람처럼. 할머니는 싫어하셨던 거 같아. 밥 먹을 때가 되면 왕할머니를 향해 소리 지르셨으니. 일로! 숟가락 잡고!

 

그러다 어느 날부터 방에서도 나오지 않으셨어. 컴컴한 방에는 노인 냄새가 가득했지. 자세를 바꾸지 못해서 피부는 진물이 들고. 어른들은 돌아가며 왕할머니를 돌봤어. 자세를 바꾸고, 똥오줌을 갈고, 아주 가끔 목욕도 하고. 요양원이나 병원은 가지 않았어.

 

다행인지 어렸다는 이유로 방관만 했지. 돌아가셨을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 친척들 중에는 장례식 장에서 통곡까지 했었지만 정말 슬퍼서인 진 모르겠어. 나처럼 모두가 무덤덤하게 보였거든.

 

나이를 먹고 나서야 내 행동을 후회했지. 죽을 때까지 후회할거야. 왜 나는 왕할머니께 아무런 존재가 아니었는가. 할머니도 본인이 돌아가실 즈음 왕할머니를 그리워 하셨어. 그렇게 싫어하셨던 것처럼 보였던 할머니가. 할머니도 살이 빠지고, 힘이 빠지고, 기억이 사라지다 크리스마스 저녁 돌아가셨어. 이 말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내 가족사만 말했네. 미안.

 

본론으로 들어가서. 알아보니 치매도 종류가 여러 가지더라고. 알츠하이머, 루이체, 파킨슨, 혈관성치매 등등. 증상도 조금 다르다고 해. 알츠하이머는 기억력, 사고력이 서서히 떨어가고. 루이체는 인지능력, 주의력이 뒤죽박죽이 된다고 하고. 파킨슨은 거동이 불편한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 사고까지 갉아먹는다 하고.

 

뭐가 됐건 끔찍한 건 똑같겠지. 아빠, 엄마 중에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파탄 그 자체. 근데 내가 왜 이리 걱정하고 있는지 보니 돈과 편의 때문이더라고. 가족 사랑이 아닌! 병원, 요양원에 모실 돈 없어. 그럼 집에서 내가 모셔야 하나? 24시간 같이 지내며 어릴 때 봐왔던 걸 그대로 혼자 하다가 굶어 죽는 인생? 조금은 철들었다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어. 여전히 내 편하고, 내 잘 먹는 길만 찾고 있잖아.

 

그래도 희망적인 게 있어. 적어도 부모님만 안 걸리면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치매문제를 겪지 않아. 난 걸려도 상관없거든.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아내가 있어? 자식이 있어? 아무도 없다고. ? 치매 걸리면 아무것도 모른다며. 먹고 살 걱정이며, 인간의 존엄이며, 사회의 도덕이며 다 잊어버릴 거라고. 그냥 어딘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겠지.

 

그야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분들이 나를 발견하고 보호해 줄 수는 있을 거야. 그런데 이왕이면 사람보단 로봇과 살고 싶어. 365일 기저귀 갈고, 같은 말 듣고 또 들어주려면 알파고 선생 정도는 돼야 믿을 수 있겠거든. 파릇한 인간들한테 피해주기 싫다고! 간호사가 빡 돌아서 묶거나 때리기라도 해 봐. 아파서 엉엉 울다가 30초 후에 까먹겠지.

 

아무튼 부모님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야. 여기 결혼했거나 할 사람 있어? 없잖아. , 있다고. ...애 안 낳을 거지?... 애가 셋이라고? 성공한 인생이구만! 그 정도라면 치매 걸려도 괜찮아. 돈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뒷일은 알아서 잘 하겠지. 적어도 쓸쓸히 굶어 뒤져 국가장례식 받을 일은 없잖아. 그럼 된 거지. 행복한 거야. 걱정하지 말고 알콩달콩 잘 살라고.

 

마지막 눈 감는 날, 사람 눈을 볼 수 있을까? ...아무렴 어때. 내가 걱정할 필요 없지. 나라님이 다 해 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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