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선물세트
난 지구를 사랑하지. 지구 위에 사는 동식물도 좋고. 인간은 좋아하는 분도 있고 싫어하는 놈도 있어. 지구에 빌붙어 사는 주제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어. 친환경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녹색연합에서 올린 글이 있는데 욕을 많이 먹었더라고. 청와대에서 설 선물을 보냈는데 포장이 너무 과하다는 거지. 흠, 환경단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근데 이게 좀 거시기 했나 봐. 기껏 선물 보냈더니 과대포장이네 하면 기분 나쁘잖아. 게다가 선물이 전통 먹거리였어. 싹싹 다 먹은 후에 이런 소릴 하니 불편했을 수도.
근데 깨끗이 다 먹어 치우는 것 또한 환경단체의 모범적 자세 아니겠어? 자연이 주신 고마운 선물을 감사히 먹고, 힘쓰고, 응가로 다시 돌려보내는 모습! 이게 왜 잘못됐어. 게다가 맛은 없다 라고 솔직히 말했다고. 얼마나 대단해. 그 맛없는 걸 환경을 위해 꾸역꾸역 뱃속으로 넣었잖아. 이것가지고 왜 욕을 하는 거야. 설마 그건가? 내가 받으면 어이쿠 나라님 감사합니다! 라고 할짝할짝할 선물인데, 웬 줘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놈이 패북으로 진상 떨고 있어서? 그것도 다 처먹고.
아무튼 지구와 사람을 위해서 포장은 최소화 되면 좋겠어. 설 선물이다 뭐다 공장에서 뿌리는 것들 보면 겉 박스만 커다랗지. 속에 철로 된 통조림을 6개 꺼내면 아무 쓸모도 없다니까. 낭비잖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분리수거 하고 있으면, 이놈의 포장이 대체 뭔가 철학적 사고까지 하게 된단 말이야. 나무는 쓰러져, 비싸져, 백수는 고통 받아, 쓰레기는 늘어나.
물론 깨지기 쉬운 건 포장해야 되지. 박스 귀퉁이 하나 찌그러져선 안 되는 피규어도 그렇고. 그 외에는 줄여도 되지 않을까? 종이박스 안에 비닐 안에 비닐 안에 질소 안에 감자칩 같은 것들 말이야. 이번 청와대 선물에서도 겉에 큰 종이박스, 그 안에 중간 종이박스, 그 안에 안에 플라스틱 통, 또 그 안에 플라스틱 칸나누기가 되어 있으니 환경단체에선 빡칠만 하지. 술병 옆에 이상한 나일론 쪼가리는 어떻고.
선물할 때는 정성을 뽐내기 위해서라도 포장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더라고. 여기 포장지 보관하는 사람 있어? 없잖....있는데 별로 없잖아! 커플분들, 애인이 어느 날 묻는 거야. 자기야 포장 요란한 실버925 반지 받고 싶어, 아니면 그냥 툭 건네는 백금반지 받고 싶어? 백금반지지! 참고로 백금이 80배 비싸. 설마 관심 받고 싶어서 실버 925 선택하는 분 없겠지. 맞잖아! 호호호 김치남 아니랄까봐.
사람도 포장이 되면 귀찮고 힘들어지지. 이미지 관리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 내가 아닌 포장지의 삶을 산다는 거. 방구석 백수인 나도 포장을 하느라 기를 쓰는데 사회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보호 받으려면 어쩔 수 없나? 그래...그럼 딱 보호받을 만큼만 하자고. 그 정도야 지구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아무튼 녹색연합은 패북 말고 청와대나 국민신문고에도 이번 일을 올리면 좋겠어. 그래야 진짜 지구님이 원하실 포장 별거 없는 진짜배기 선물이 올 추석부터 날아오지 않겠어? 녹색연합은 포장 필요 없는 쌀을 원했는데 허허. 아직 멀었어. 쌀이 얼마나 무거워. 운반하는데 인력이며 기름이며 지구님이 화내실 거야. 작고 간단하며 운반에도 낭비가 없는 그런 물건!
청와대죠? 이번 추석부턴 계좌로 30씩 보내세요. 뒤에 붙는 단위는 알아서 정하시고. 이 모든 게 대자연을 위해섭니다. 돈이라 보내기 거북하면 저기 명절에도 빌빌대는 백수에게 주시던가요.
지구님이 보시기에 흐뭇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