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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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사라진 복숭아나무 (0) 2019/01/31 PM 06:29

사라진 복숭아나무

 

 

내가 사는 곳은 산마루 위 달동네지. 올라오려면 한 각오해야 할 거야.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아. 아니 오히려 세상과 담쌓은 나 같은 놈에겐 행복한 공간이지. 사람도 적고, 경치도 제법 괜찮고, 나무도 있고.

 

근데 요즘 들어 내 심기를 건드리는 공사가 있어. 뭔 놈의 전망대를 만든다고 이 높은 산복도로까지 들쑤시는 거. 그럴싸한 플라스틱 받침대로 전망대와 등산로를 만들고. 구청에선 돈 쓸 수 있어, 업체에선 돈 받으니 좋아, 지나가는 등산객은 평평한 길 나니 다 좋아하지 않겠어?

 

이 축제의 장에 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안할 정도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당신네 경제활동 덕에 내 친구가 죽었다고! 20년 지기 복숭아나무는 왜 다 자르는데? 살려내라! 살려내!

 

집에서 3분 정도 걸어가면 낭떠러지 한편에 복숭아나무 2그루가 있었거든. 여름이 되면 복숭아가 열린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고. 그건 바다의 풍경과 어울러져 하나의 작품이 됐지. 그 장면을 초등학교 꼬꼬마 시절부터 봤다고. 절벽이라 복숭아를 따먹진 못했지만, 지나갈 때마다 인사했다고.

 

지금은 가지를 다 쳐내서 허연 속살을 들어낸, 나무였던 것만 있어. 거기다 전망대며 버스정류소를 만들었거든. 만드는데 방해됐나? 경치 보는데 거슬러서? 이해가 안 돼. 소위 사회적 가치를 따져 봐도 복숭아나무가 있는 게 좋다고. 수평선 위에 뜬 탐스런 분홍구슬을 어디서 보겠어! 딱 그 자리 밖에 없다고. 생기지도 않는 여친이 생기면 정말 같이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젠 없어. 다 잘렸다고!

 

최근 예타면제다 말이 많잖아. 예비타당성조사. 정부에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추진한다는데, 그럴 수 있지. 그래 하라고. 근데 걱정 돼. 내 추억이 절단 난 것처럼 산이며 강이 잘려나갈까 봐.

 

방구석 백수새끼가 왠 참견이냐 한다면 백수라서 참견한다 왜! 나도 땅 있고 건물 사놨으면 다 개발하라고 했겠지. 근데 아니거든! 도로며, 철도며, 산업단지며 아이 돈 케어. 오직 관심 있는 건 채굴장처럼 갈려나갈 산이 싫다고. 허연 돌무더기만 있는 그 모습이.

 

...그래도 사람이 먼저지. 내가 너무 막 말했나? 환경론자는 아닌데 왜 이런 스탠스가 됐지. 엄 그러니까... 적당히 개발하라는 거지. 예타도 안 받겠다 부채가 쌓이건 뭐건 아 몰랑 하는 사업들은 좀 그렇잖아. 이런 사업에까지 자연을 바칠 필요가 있어? 4대강 꼴은 한번이면 되잖아.

 

아무튼 이런 걱정에 기사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예타 안 받는다고 환경영향평가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래. 히히히히. 일한다 환경부! 아이 뭐 이 말 듣고 아니꼬운 분들도 많겠지만 이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 개발 되고 땅값 오르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동물도 식물도 같이 사는 곳이 좋잖아. 애들 정서에도 좋고. .

 

섬진강의 모래밭, 새만금의 갯벌, 그리고 달동네의 복숭아나무까지. 이젠 사라졌지만 다시 보고 싶어. 모두 같이. 그 뿐이야. 미워하지 말아줘.

 

환경부는 진상짓을 철저히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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