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
어렸을 때 생각하면 왜 그렇게 놈이라는 글자를 자주 썼는지 모르겠어. 누구한테서 이 상스런 단어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를 볼 때면 쟤는 착한 놈, 쟤는 나쁜 놈. 확실히 구분했지. 그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6살 꼬맹이가.
지금은 누가 착한 분인지 누가 나쁜 놈인지 분간을 못 하겠어. 심지어 나 자신도. 어쩔 땐 사람다운 생각을 하는데, 어쩔 땐 천하의 상말종이 되거든.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쭉 착하게 살거나, 아님 끝까지 악랄한 짓을 했다면 문제가 없어. 근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잖아. 여기서 고민이 시작돼. 나쁜 짓을 딱 한번만 해도 몹쓸 놈인가? 백날 천날 착하게 살아도 하루 정신줄 놓으면 대역 죄인이야? 반대는? 똥이란 똥은 다 퍼질러 놨는데 죽을 때 인류애적 헌신을 보여준 인간은?
지금 우리나라 법에선 한번만 잘못해도 골로 가는 거 같아. 빨간 줄이 착착 감기면서 평생 죄인이 되지. 아랫도리 잘못 놀린 인간은 전자발찌까지 차고. 오호, 명료하군. 하긴 그래. 소위 착하다는 인사들이 한번 이상한 짓 하면 위선자네 사기꾼이네 욕을 4배는 더 듣잖아. 가차 없지.
그런데 정반대인 경우도 있거든. 종잡을 수가 없어. 광주에서 사람을 죽이든 독재를 했든, 어쨌든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 위대한 전두환 각하! 또 누구 있지? 그래,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그래놓고 한강다리 폭파하고 먼저 튄 닥터 리. 빨간 줄 그일 일을 수도 없이 했지만 건국의 아버지다 뭐다 칭송받고.
이렇게 꽉 막혀있을 때 광명이 들기 시작했어. 죄! 죄에 관해서 고민하는데 이 책을 참고하지 않았다니 정말 멍청했지. 바로 성경. 인간의 죄란 죄는 다 써놓은 그 책!
초반부 성경은 확실해. 죄는 한번 짓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된다! 아담이 과일 하나 먹은 걸로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고, 꾀꼬닥 하는 존재가 되지. 살인을 한 것도 누굴 강간한 것도 아닌데! 그저 과일 하나 먹은 걸로 이렇게 환장할 저주라니! 게다가 일부러 따먹으라는 양 떡하니 풀어놨다니까. 마치 시험지를 위로 펄럭거리며 컨닝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돌아이랑 다를 게 뭐야.
과일절도죄는 심지어 연좌제야. 우리 조상님이 곰이었을 때도 모를 법한, 어, 에덴 동산 커플이 사고 친 걸로 지금 우리까지 빌어야 할 팔자니까. 숨 막히게 엄격한 정의!
근데 이상한 거야. 그렇게 칼 같은 정의를 추구하는 분께서 창세기 초반만 지나도 걸핏하면 살인을 일삼으시거든. 도시 하나 날려버리는 건 약과지. 인류 전체를 수장시켜버리기도 했으니까. 근데도 당당하시잖아. 과일절도죄는 대대손손 죽어 마땅하지만 살인죄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살인은 죄가 되지 않을까?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마음대로 하셔도 되나? 워워워. 그럼 자칭 전지전능다고 하는 독재자들께서 살인하는 건 죄가 아닌 거야? 미친 소리!
딱 하나 이유를 찾자면 죽일만한 놈을 죽였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하셨을 거야. 죄로 물든 악마 새끼들은 죽여라! 나의 믿음을 의심하는 자는 죽여라! 근데요, 난 지금도 쟤가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모르겠다고요!
괜히 성경을 봤나 봐. 더 헷갈리기만 해. 처음부터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착한 놈이고 나쁜 놈이고 없나? 그래! 사람이면 사람이지 뭔 착한 놈이고 나쁜 놈이야! 성선설? 성악설? 때려치울래!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단순히 구분하겠어. 아유 머리 터지겠네! 아무튼! 그래서 내 결론은요!
착한 님, 나쁜 놈은 없다. 짬뽕이 있다. 걔 중에는 짜장면도 있고. 단무지도 있다. 난 볶음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