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위한 변명
동물 좋아해? 난 정말 좋아한다 생각했어. 개며 고양이며 야생동물이며. 근데 그 생각을 접어야겠더라고. 동물이면 벌레도 포함되잖아. 나방이며 바퀴벌레며. 방에 들어오는 날엔 고무장갑까지 끼고 벌벌 떨며 창문 밖으로 내쫓지.
그래도 벌레만큼 대자연에 봉사하는 동물이 어디 있겠어. 꽃가루 날라주지, 썩은 것들 다 먹어주지, 수많은 동물들의 유용한 단백질원 돼주지. 역할을 떠나서 그 작은 것에도 생명이 있으니 소중할거야.
이 작고 그로테스크하면서 가끔 귀여운 곤충이 죽어가고 있데. 개체수가 매년 2.5%씩 줄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100년 후 완전 멸종이라는 거야. 원인은 도시화, 산업화, 농약 등이지. 다 인간 때문이네.
무서워. 곤충이 못 사는데 다른 생물이라고 살 수 있겠어? 우리 이제부터라도 작은 생명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숲을 지키고, 농약 좀 적게 치고, 와이파이 없는 꿀벌존도 군데군데 두고.
근데 딱 하나, 응원하기 꺼림칙한 곤충이 있단 말이지. 앵알앵알. 호랑이보다 무서운 모기! 다른 녀석은 몰라도 모기만큼은 멸종시켜야 한다는 말이 많지. 동의? 어 동의! 새벽 2시. 아무 죄책감 없이 모기를 죽일 수 있는 시간. 가차 없지. 팍팍.
모기도 생태계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내 가려움을 막기 위해서라면 상관없다고! 우리나라는 그래도 양반이지. 세계적으로 보면 온갖 질병을 옮겨대잖아.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거기에 요즘은 지카 바이러스라는 해괴한 병까지 배달한다고 해. 산모나 태아가 감염되면 정말 위험한. 이러한 질병에 걸려서 한 해 75만 명이 죽어. 가히 인간의 천적이라 할 만 하지.
이런 지경이니 모기 퇴치에 구글까지 나섰어. 전기채로 다 태워 죽이나? 아니, 역시 세계적 기업은 스케일이 크더라고. 바로 고자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모기를 풀어서 개체 수를 줄인다고 해. 호오. 모기를 풀어서 모기를 잡는다! 뭔가 멋지네.
다른 연구소에선 암컷 모기의 식욕을 줄여서 감염을 막는데. 물더라도 딱 한번만 물게 하는 거지. 고자 박테리아만큼 멋지진 않지만 이것도 잘 되면 도움이 될 거야.
모기박멸에 고민에 고민을 하는 인간들이지만, 모기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을까? 인간 놈들! 지구에서 제일 악랄한 종들! 온갖 폐기물이란 폐기물은 다 쏟아내면서 지들 좀 괴롭힌다고 우릴 멸종시키려 하네! 우리랑 너희는 다를 거 하나 없어. 지구 곳곳에 침 꼽고 쪽쪽 빨아먹는 녀석들! 만악의 근원! 위선자!
이렇게 모기가 따지면 뭐라 말하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네. 그래, 인간이 무슨 자격이 있겠어. 으휴. 이대로 인류는 패배해야 하나?....아니!
모기여. 그대들은 박멸되어야 마땅하다! 가난하고 굶주린 아이들, 평생을 일하다 황혼에 든 사람들만 골라서 절망에 빠뜨리지. 그런 처절한 차별 속에서 약한 이들만 괴롭히는 사이코패스! 넌 말이 필요 없어! 전기통구이 맛을 보여주마!
인간도 센 놈한테 굽실거리고 약한 사람 등쳐먹잖아! 재판장! 어 뭐라고? 안 들리는데. 앵앵? 파지직. 휴, 끝났어. 깔끔히 보내버렸다고. 다행히 판사가 상식이 통하는 분이라 다행이야. 누가 갑인지 잘 알거든. 감히 인간 앞에서 모기 따위가 깝치다니.
인간의 성혈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