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튜너티
발렌타인 데이는 잘 보냈어? 여기야 커플들도 많으니까. 흐뭇하구먼! 그러나 이 땅에 커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발렌타인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야. 한 연예인은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더군. 글쎄, 사형선고일까지 기려야 할까 의문은 들지만 그렇다고.
내겐 그저 똑같은 날이었어. 누굴 기려야 할 날도 아니었고, 단지 평온한 날이었지. 그런데 한 소식이 모든 걸 바꿨어. 기억할 만한 날이 된 거지. 그 소식은 바로, 화성으로 떠난 오퍼튜너티호가 작동을 멈췄다는 거야.
고작 기계 멈춘 건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심란할까. 바퀴 여섯 개에 태양전지판만 덕지덕지 달린 괴상한 카메라일 뿐인데. 부러움과 슬픔이 짬뽕돼서 느껴져. 오퍼튜너티, 이름 만큼이나 희망을 안고 가는 모습이어서 그럴까?
2004년 1월 화성에 착륙했어. 15년 전이지. 설계됐던 작동 시간은 90일이었지만 60배나 넘게 임무를 수행했다니, 와우. 그래, 부러운 것은 이 모습일 거야. 주저앉지 않는 모습. 한참 전에 고꾸라떨어졌어야 할 녀석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저 묵묵히. 하얗게 불태웠어.
조용히 잠든 곳이 인내의 계곡이래. 다른 무언가가 올 때까지 홀로 기다려야 하는 장소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하나하나 다 이야기가 되는구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화성에 기념비라도 세워줘야 하겠지? 그래.
근데 내심 안 그랬으면 좋겠어. 무섭거든. 너무 무서워. 언젠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야 할 날이 올까? 태양이 팽창해서 지구를 삼키면 어쩔 도리가 없지. 이런 거 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우스운 수준이야. 이 압도적인 공포감을 성경에선 느끼질 못했거든.
다른 문제도 있더라고. 지구의 자전속도. 미세하지만 조금씩 느려진데. 하루가 점점 길어지는 거지. 이게 계속 되면? 맙소사. 지구 한쪽은 1년 내내 낮이고, 다른 쪽은 계속 밤이야. 1년에 한번 꼴로 태양이 뜨는 셈인지. 한쪽은 쪄죽고, 한쪽은 동태가 돼. 금성이 딱 이 모습이라네. 휴, 암울하다.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우주 다큐멘터리라도 생각나는 날엔 잠은 다 잤다고. 왜 이리 무식하게 크지? 왜 있는 거지? 난 누구? 빅뱅으로 돌아가나? 아니면 모두 흩어져서 죽나? 안드로메다 넌 왜 우리은하랑 충돌하고 난리야! 어린 꼬맹이가 걱정에 뒤척이면 아버지는 말하셨어. 애야, 네가 없으면 우주도 없는 거란다. 우주에 겁먹지 마렴.
내가 사라지면 온 우주가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그 때 깨달았어. 여러분 속에도 우주가 다 있지? 정말 소중한 우주들이! 그러니 서로 사랑하면 좋겠네. 어...오늘 왜 이리 감상에 빠졌지. 오퍼튜너티 때문인가.
지구의 종말, 화성으로의 이주, 혹은 다른 항성계로의 여행 같은 살벌한 문제들이 언젠가 오지만 우리가 죽을 때까진 아니거든. 근데 그거 오기 전에 이미 인류는 멸종할 거 같아. 방사능 태평양에 뿌리고, 온난화로 이상기변은 계속 되고. 이건 30년 후라도 당장 문제가 될 거 같다고! 무섭잖아. 뭐라도 해야지!
수많은 우주가 사라질까 두려워. 화성에 간 오퍼튜너티는 지구가 멸망해도 모래바람 맞으며 기다리고 있겠지? 사람 아닌 어느 고등한 생명체가 발견할지도. 그리곤 그들은 알아 낼 거야. 매연과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지구라는 행성이 예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던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나의 배터리는 없어져요. 점점 어두워져요.
오퍼튜너티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