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진화
멍게의 삶을 보는데 정말 신기했어. 그저 어른들 안주거리나 되는 녀석으로 생각했는데 생명의 심오함으로 가득하더라고.
어린 멍게는 올챙이 모양이래. 마치 건강한 정자가 파닥이듯이 활발히 움직인다더군. 올챙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게 눈, 코, 근육, 신경 다 갖춘 상당히 발달된 생물이라는 거야. 그러다 어른이 되면 어느 돌무더기에 콱 박혀 사는 거지. 파닥거리며 돌아다녔던 생활을 청산하면서 갖고 있던 장기들도 하나둘 없애버려.
심지어 뇌까지도! 아무리 멍하니 바닷물 들락날락 하는 거나 뿜뿜 한다지만 너무하잖아. 머리 큰 동물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지. 그러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조용히 사는데 영양분 처먹는 뇌는 낭비일 뿐.
부처님께서 보시면 기특하다 하시겠지만, 아직 욕심이 가득한 나는 싫어. 여러분은 어때? 아무리 고민이 한가득이라도 무뇌가 되는 건 거시기 하잖아. 방구석에 하루 종일 박혀 있더라도 꿈 속 세상까지 포기하라는 건 너무해.
멍게의 삶에 결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바로 수명! 자기 뇌까지 없애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적어도 100년은 살 거 같잖아? 근데 고작 6년이라고. 이게 뭐야! 모든 걸 포기했는데 이 한자리 수 수명은.
진짜 장수하는 녀석은 멍게 옆에 있는 해삼이지. 큼직한 달팽이처럼 생긴 거. 수명이 얼만지 알 수가 없데. 잘라도 살아나고, 녹아도 살아나고, 터져도 살아나는 생명력 그 자체라네. 이런 무지막지한 녀석을 잡아먹다니, 인간 우리는 대체.
멍게고 해삼이고 결정적 실수를 한 거지. 사람 입맛에 맞는다는 거! 이거 하나로 무뇌의 삶도, 무한한 수명도 다 끝났다고. 걔들은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진화의 끝에 기상천외한 답을 내렸건만 결국 사람 밥상 위라니.
그러니 기억하자고. 그 뭐야, 사이언톨로지? 톰 크루즈 형이 믿는 종교 있잖아. 외계인님을 믿는다는. 우주전쟁을 대비해서 벙커까지 짓는다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그저 맛없게 진화하면 된다고. 삐리리릭. 인간. 뇌가 크다. 1년 종일 발정기다. 정말 신기한 존재다. 근데 맛이 없다. 삐리리릭. 건드릴 가치 없음.
아무튼, 오늘 저녁은 해삼 멍게 어때? 사실 난....먹어 본 적이 없어. 멍게비빔밥 정도는 괜찮을까? 그 맛없는 개복치도 먹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알았어. 크흠. 잠깐. 쓴맛, 단맛, 매운맛, 역겨운 맛 다 먹는 인간이 별종이었나!
삐리리릭. 인간 무섭다. 인간 다 먹는다. 위험. 접근금지. 이로서 지구의 평화를 지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