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늑대
경찰이며 검찰에 불려가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밤샘조사를 받을까? 저번 주말 손석희대표가 17시간 조사를 받고 나서 나오는 모습을 보는데 느낌이 묘했어. 17시간이라. 이거 너무 긴 거 아냐?
주당 근로시간도 52시간으로 줄이고 있는 마당에 밤샘조사라니. 이거야 말로 인권침해라고. 그 피곤한 상태에서 제대로 조사가 되겠어? 손석희씨야 아싸리 빨리 끝내는 게 좋다고 할 수도 있어. 근데 조사관은 무슨 죄야. 17시간을 그것도 신성한 주말에!
일부러 그러나? 게워 낼 때까지 안 재우는 방식? 그럼 이건 반대로 조사받는 사람 인권을 무시하는 거네. 이게 뭐야. 피곤하게. 영화에서 보면 장소도 어두컴컴한데다 꽉 막힌 곳이잖아. 거기에 딱딱한 의자까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러니 조사시간도 하루 얼마까지 할 수 있다 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 8시간 이상 조사할 수 없다! 이렇게. 시간제한 뿐만 아니지. 조사실도 화사하게 꾸미고, 배고프면 짜장면도 시켜먹을 수 있고. 간이침대도 있고.
조사관도 그래. 조사 받다가 자살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 대체 어떤 식으로 대하기에 자살을 할까. 욕하고 반말하나? 아니면 존댓말은 하는데 따박따박 빡치게 하는 말투로 조리돌림? 흠. 인터레스팅. 조사관도 친절과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서비스직 경력자를 써야겠군. 사랑합니다 피고인님. 이제부터 즐거운 조사를 시작해 볼까요.
난 조사관이 여성이면 좋겠어. 아항. 안 그런다 그래도 남녀 간의 하모니를 무시할 수 없거든. 자상하게 들어주는 여자선생님에겐 모든 걸 불어버릴 거야. 조사라도 빨리 끝나야 집적댈 수 있으니. 그리고 여성에게서 풍기는 따뜻함이 있잖아.
아하, 조사관이야말로 여성할당제가 필요한 곳이었어! 군대고 경찰이고 여성들 자격논란이 많지만 조사관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 오히려 어서옵쇼 우대해야지. 남자들은 수학적 계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오로지 문제해결! 어머 그랬니? 진짜! 이런 말들은 머리에 들어있지 않다고.
사람이 사람과 대화하는데 공감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인생한탄도 들어주고, 억울한 일이 뭔지도 알아내고, 아니면 왜 그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 이해도 해 주고. 상대가 피곤한 거 같으면 같이 커피라도 마시며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좋지?
어쩌다 조사관 여성할당제까지 왔지. 어 그러니까. 내가 누구 말했더라? 아 손석희. 이번 일로 확실히 증명됐지. 언론인은 고독한 늑대여야 한다! 사실 이전에 손석희씨가 일부러 정치인들이랑 사적인 자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게 봤거든. 그런데 같은 언론인까지는 미처 생각 못 한 거 같아. 후배랍시고 이리저리 말하다 보면 자기 본심 들어나고, 자리 청탁이다 뭐다 다 생길 건데.
평소 후배들과도 거리를 뒀다면 이런 일이 생겼겠어? 자리를 같이 하더라도 존댓말 쓰고 손찌검 안 했어야지. 어이쿠 김웅 기자님. 여기로 앉으십시오. 어깨 한 대 주물러 드릴까요? 살살 치겠습니다. 퍽. 내연녀를 보셨다고요?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녹취는 거들 뿐.
동료도, 친구도, 사랑도, 어느 한적한 곳에서 차로 만나는 사람도, 심지어 가족까지도 버리고 홀로 지내라 하면 너무 냉혹한 걸까? 그들도 사람인데. 그래도 기대하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뜻을 가져 언론사에 들어왔잖아. 천성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카리스마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인데 해낼 수 있겠지?
못 하겠으면 나라도 하지 뭐. 자칭 타칭 고독한 백수! 오직 여성 조사관만 나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