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 사냥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해. 쌤들의 충실한 애완견이었거든. 왈왈. 어떤 지시도 이행했지. 가령 아침에 와서 여자화장실 청소해라 하면 7시에 학교 와서 비밀스럽게 바닥 칙칙이질을 했어. 쓰레기통엔 생리대도 있었는데 아직 뭐를 몰라서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어. 오 제발! 왜 기회는 주셨는데 욕망은 주지 않으셨나이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생물시간이었지. 당시 쌤은 농담으로 말하셨지만 난 지령을 허투루 듣지 않았어. 누가 이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그 날로 뒷산에 가서 돌이끼며 우산이끼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지. 성게 가져올 수 있는 사람? 출동! 부산사나이답게 방파제 돌무더기 안으로 들어갔어.
근데 이끼와 성게는 느낌이 다른 거야. 아무리 돌처럼 생긴 놈이라지만 얘는 동물이잖아. 어린 마음에 이 녀석을 잡아야 하나, 고작 1시간 수업을 위해 생명을 죽여야 하나 진짜 고민했다고. 게다가 귀한 건줄 알았거든. 송도 해수욕장 거북섬 근처를 이리저리 뒤진 끝에 겨우 한 마리 봤으니까.
선택의 갈림길에 어떤 행동을 했을까? 말했잖아. 난 선생님들의 충실한 종이었다고. 관심과 칭찬을 위해서라면 생명 따위야 상관없지. 통에 담아서 다음날 생물시간에 대령했어. 조금 놀라시긴 했는데 그게 다였어. 한번 얘들한테 보여주고 통속으로 다시 들어갔지. 허무했어. 성게한테 미안하기도 했고.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생물쌤에 한해서는 관종 짓을 그만뒀지. 대신 팔짱까지 껴준 국어쌤에게 충성을 맹세했어. 하악하악.
중딩 때 그렇게 고민에 빠지게 했던 성게. 이젠 그 죄의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됐어. 알고 보니 이놈들이 동해안 백화현상 주범이더라고! 이 못쓸 놈들은 허벌나게 넘쳐나는 데다 해조류부터 산호, 바위, 심지어 동족까지 처먹는 지경이라는 거야.
바다에 허여멀건 돌덩이만 가득한 장면 가끔씩 뉴스에서 보지? 백화현상, 갯녹음이라고 부르더군. 사막처럼 변해버린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지. 우리나라 근처 바다 39.5%가 이렇게 변했대. 그 중에서도 특히 심한 곳이 동해안이고.
동해안에 들어가면 보이는 건 성게밖에 없다네. 심지어 독도마저도. 이런 실정이니 작년 여름에 독도 앞바다에서 성게 15톤을 건져 올렸어. 15톤, 대체 몇 마리인지 상상도 안 간다. 일일이 다이버가 캔 거야. 웟더.
우리 인간은 성게도 먹잖아. 근데 백화현상이 일어난 지역에서 채취하는 성게는 속에 돌밖에 없대. 흠, 위대한 인간의 식성으로 돌성게 마저 먹어치우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무리겠지? 다른 방법으로 성게를 잡아먹는 돌돔을 풀고 있긴 한데 생각해 봐. 잡식의 정점 인간도 거부하는 돌덩이들을 고작 물고기가 먹고 싶어 하겠어?
흠. 이렇게 말해놨지만 성게도 억울할 거야. 뉴트리아나 황소개구리처럼. 우리가 잘못했냐! 인간 너희들이 다 말아먹어놓곤 왜 우리 탓을 하는데! 이럴 거라고. 바다에 똥에서 폐기물까지 다 버려놓고선. 이산화탄소 농도도 영향을 준다네. 할 말이 없지.
이렇게 된 이상 해녀로 전직해야 할까? 남자면 해남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해남!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인간처럼 똥을 싸는
성게 잡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