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응급실
설날 전이었지,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어. 4일 뒤엔 30시간 넘게 근무한 의사 한분이 또 돌아가셨고.
의사가 참 힘들구나. 아니 응급실 의사는 특히 힘들다고 해야 할까? 그들의 삶이 어떤지는 다큐나 드라마에서 보는 게 전부지만 빡쎄다는 건 확실히 알아. 쪽잠에 갈굼에. 간혹 환자들한테 쌍욕 먹고, 처 맞고. 물론 드라마에선 그 바쁜 와 중에 환자침대 위에서 할 거 다하긴 하지만.
응급실이 왜 이렇게 헬이 될까? 첫 번째 지적은 개나 소나 다 와서 그렇대. 별 거 아닌 환자까지 다 오니 업무량은 미어터지고 정작 급한 환자는 치료를 못 받는다는 거야. 흠, 근데 이게 애매하잖아. 내가 전문의도 아닌데 몸 상태가 어떤지 어떻게 알겠어.
초딩 때였어. 코피가 나는데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엄마도 처음엔 별거 아니라 생각했어. 그러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서도 피를 흘리자 살짝 긴장하셨지. 엄마 지인 중에 한의사가 있었거든. 전자침을 놔주러 오셨어. 그것도 손에. 수지침이 효과가 있을 거라나. 삐융삐융. 이상한 소리 나는 전기충격 도구를 들고. 지금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네.
피가 멈췄겠어? 아니! 여기 한의사 분 없지? 소년은 그렇게 한의학 불신주의자가 됐다고. 밤 11시가 넘도록 줄줄 흘리자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지. 나는 피만 날 뿐 아프진 않아서 괜찮았어. 엄마만 엄청 걱정했다고. 이러다 아들 죽을까 봐.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 본 응급실이었지. 근데 거짓말처럼! 응급실에 가니까 코피가 멈추더라. 와, 정말 신기했어. 진단도 간단했지. 조금 피로해서 그런 겁니다. 이게 다였다고. 다만 흰 의사 가운에 피는 묻혔지. 코피를 커피 마시듯 꼴깍꼴깍 했거든. 참고로 피는 소화가 안 된대. 의사쌤이 썩션으로 잡아당기니까 우웩 토했지. 양이 많아서 나중엔 바가지를 가지고 오셨어.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대단했을 거라고. 저 얘 죽는 거 아니에요? 코피 마신 거 뽑아내는 거예요. 예?!
밤에 몸이 심상치 않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것도 꼼지락 거리는 내 자식이었어 봐. 그냥 응급실 가는 거지. 개나 소나 가야 한다고. 이거 가지고 뭐라 할 수 있어? 없어. 다만 진짜 급한 환자인지 고민할 기회를 주지. 진료비를 더 받아! 그냥 병원에서 만 원 정도 들 거 응급실 가면 기본 5만원은 깨지고 시작하거든.
이전에는 6시간 동안 죽치고 버티면 입원처리해서 진료비가 싸졌어. 지금은 이런 진상 응급 환자들을 없애기 위해 등급을 나눠서 관리한다고 해. 근데 최근 KBS 기사에선 없어진지 3년도 넘은 이 6시간 룰을 거론하더라고. 동아일보랑. 동아일보는 신문 헤드라인에 대문짝하게 걸어놨어. 뭐지? 전문기자님들이 말씀한 거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만약 내가 맞다면 케병신, 똥아일보 라 할 거야.
아무튼, 돌아가신 윤한덕님은 더 빠른 분류를 원하셨어. 바로 119 구급차 안에서. 무턱대고 응급실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짧지만 그 황금 같은 시간을 단축시킬 좋은 생각이잖아? 근데 여기엔 밥그릇 문제가 얽혀 있어서 쉽지가 않아.
119를 불렀을 때 구급대원 분들만 오는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더라고. 응급구조사 자격을 지닌 분이 같이 오지. 이 분이 혈압도 제고 심폐소생술도 하고, 숨 못 쉬면 호흡기도 달고, 정신 못 차리면 링거도 꼽고 하는 거래.
환자랑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존재.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을 다루는 분들. 그러나 할 수 있는 거라곤 앞서 말한 게 전부야. 그 이상은 의사, 간호사 영역이라는 거지. 응급실 격무에 시달리지만 일 뺏기는 건 참을 수 없다 이 말이야. 어디 간호사 보조 따위가 환자 피를 뽑으려 해!
어렵네. 다들 입장이 있으니까. 에잇 알게 뭐야! 난 환자고 넌 의사야. 환자입장에서 봐야지! 일단 아주 뛰어난 응급구조사를 원해. 그 어떤 사람보다 중요하다고. 탁월한 응급처치와 분석, 거기에 내 무거운 몸뚱이도 거들 수 있는 체력까지. 이러려면 아주 유능한 사람이 와야 하는데. 그레이 아나토미에 메러디스 그레이 같은. 아, 메러디스 보단 헌트가 낫겠다. 힘이 좋아야 하니까. 아니지, 베일리 남편! 의사하다가 구급대원으로 전직했잖아. 어오, 그레이 아나토미 한번 봐 보라고. 시즌 15까지 나온 데엔 이유가 있어.
말해놓고 보니 응급구조사에 의사를 배치하라는 거네. 적어도 경험 많은 수간호사나. 그 분들이 과연 할까? 안 하겠지? 쩝, 아무튼 응급구조사가 의료계에서 당당한 한 축이 되면 좋겠어. 지금은 살짝 무시 받고 있는 거 같거든. 극복하려면 응급구조사분들도 노력해야겠지. 그 누구도 전문성에서 깔 볼 수 없도록. 공부하고, 시험도 받고.
전 이제 죽나보네요. 의사가 여기 있더라도 살릴 수 없어. 어 잠깐, 그 팔에 감긴 붕대는....특급구조사! 눈이 번쩍! 전설의 누룽지탕 링거를 맞아 봐라!
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