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안락사 기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왜 저 분들은 죽으려고 그렇게 애를 쓸까? 아, 또 오해할라. 그러니까 안락사 한번 하는데도 보통일이 아니잖아. 불법인지 합법인지 따지고, 안 된다 하면 되는 곳 찾아가야 하고. 교통비며 병원비며.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하는데 편안하게 죽는 거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두 분이 스위스행 안락사 신청을 해 놨다던데, 돈 없는 백수로선 뭐~? 딱 이런 표정만 짓게 된다고. 아이 그 분들 선택에 태클을 걸겠다는 게 아니고. 죽으러 스위스까지 간다는 게 이상하잖아! 굳이 스위스까지 갈 필요 없는데!
내가 안락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해 봤지. 외쿡? 비행기 값이 아까워. 죽는 거야 서울 마포대교, 부산 태종대만 가도 된다고. 병원비도 안 들고. 불법이라도 어쩔 거야. 죽은 사람한테 벌금을 물릴 거야, 수갑을 채울 거야? 못하잖아.
모르겠어. 롯데타워에서 뛰어내리거나, 손목 긋거나, 목매달거나 하는 건 고통스러워서 그런 거야? 신경안정주사는 편안하고? 본인이 의사다 손들어 봐요. 없...네. 아무리 의사선생님이 말한다 하더라도 100% 믿을 수 없어.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잖아. 뭐가 제일 편안한 방법인지 어떻게 알겠어? 귀신이라도 보지 않는 이상.
효녀, 효자가 있다면 안락사를 고려하겠어. 깨끗한 몸뚱이를 남길 테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면 굳이 죽음 투쟁을 할 필요가 있나? 흐음. 혹시 어쩌면....자살이 아닌 안락사를 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걸까?
그렇잖아. 이 영겹의 속세 속에서 작별하는 건 자살이랑 안락사랑 차이가 없거든. 근데 자살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기도 하거니와 패배감을 주지. 실패자! 나약한 놈! 무책임한 녀석! 안타까운 죽음의 뒤에도 묘한 원망이 남아.
그에 반해 안락사는 뭔가 프라이드가 느껴지잖아. 싸우고 싸웠는데 이젠 놓고 싶다. 살만큼 살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오늘까지 산다. 포기라기보다 놓아 준다 랄까. 여기에 변호사, 의사선생의 확인도 받고. 최종적으론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들으며 조용히 잠들지.
이렇게 보니 안락사 할 만 하구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최후의 순간까지 명예, 존엄을 지키고 있었어. 그래, 그냥 훨훨 털고 죽는거면 동의서나 약물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뭔가 지킬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투쟁하고 돈을 쓰는 거겠지.
결정했어! 자살보단 안락사를 하자! 어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스위스행 표값이랑 병원비랑 너무 부담된다고! 아니지, 우리 죽을 쯤엔 국가에서 허용하고, 어쩌면 지원까지 해 주지 않을까? 투표 잘 해야겠다.
그럼 언제 안락사를 하지? 여기에 대해선 선구자이신 구달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어.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점심때까지 앉아 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앉아 있다.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가?
...선생님! 그렇게 팩폭을 하시면! 컥! 나의 하루는 어땠지? 아침밥도 먹지 않고 점심때까지 앉아 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앉아 있다. 먹고, 싸고, 자고. 똑같은 날을 반복한다.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가! 어흑.
아냐, 괜찮아. 아직 재밌거든! 오늘은 어떤 신작이 나왔을까! 유튜브도 봐야 하고! 여러분과 만나는 이 자리에도 서고!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날 따라갈게요.
인생 마지막 곡은....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면 무엇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