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가면
탕수육은 부먹? 찍먹? 찍먹파가 대세인 거 같지만 궁극에 달한 자들은 가리질 않더라고. 맛있는 녀석들이었나, 부먹 찍먹 고민하는 동안 하나라도 더 먹는다. 역시.
어릴 땐 완전 찍먹파였어. 왜냐면 녹말소스를 못 먹었거든. 그 찐득하고 투명한 것이 다른 걸 연상시켜서 그런지 몰라도, 혓바닥에 닿기만 해도 속이 미식 거렸지. 특히 그 안에 있는 반쯤 숨이 나간 야채들! 당근, 오이. 오우!
그래도 어른이 되니까 조금씩 극복할 수 있더라고. 아직도 녹말소스 당근은 극혐하지만, 어떻게든 위장으로 꾸역꾸역 넘길 수 있어. 성장한 건가? 편식도 안 하니. 근데 왜 씁쓸하지.
탕슉소스 말고 찹쌀떡 허연 가루도 못 먹었거든. 유치원 때 선생님이 맛있다고 먹여준 걸 그 자리에서 꺼억꺼억하며 토했지. 그 하얀 거 뭐지? 밀가룬가? 아, 전분가루였어. 아하! 녹말소스랑 사촌이네? 여하튼 7살, 모든 것이 파릇파릇한 소년은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았지.
거울을 보지 않으니 주름이나 흰머리는 신경 쓰지 않아. 그럼에도 내가 나이 들어 가구나 확실히 느끼는 건! 바로 입맛! 갈수록 초딩 입맛을 벗어나고 있어. 지키려 노력해 보지만 너무 힘들어.
예전에 치킨은 무조건 양념이었지. 그 심심한 후라이드를 왜 먹는지 이해를 못 했어. 이렇게 매콤하고 달달한 소스가 있는데 왜 굳이. 지금은? 벌써 양념반 후라이드반 전선까지 밀렸어. 아이 이제 양념으로 한 마리를 먹으려니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야. 목구멍 속에서부터 단내가 올라온다고. 이러다 완전 후라이드파가 되겠지?
후라이드 라도 또 갈려. 메이저냐 시장이나 마트산이냐. 마트산 후라이드는 왜 그렇게 튀김가루가 두꺼운 거야? 중량의 50%는 튀김가루 같아. 고딩 때만 하더라도 튀김 부스러기가 좋아서 우동에 뿌려가며 먹었건만. 지금은 속이 니글거려서 감당이 안 돼. 으휴.
아이스크림도! 조안나 5리터짜릴 사면 항상 딸기맛, 쵸코맛을 샀지. 지금은 딸기고 쵸코고 다 버리고 바닐라를 선택해. 그 알 수 없는 딸기향이 이젠 콧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더라고. 그나마 친구들 앞에선 엄마는 외계인을 먹는 게 다행이랄까. 베스킨라빈스에서 아는 아이스크림이라곤 그거밖에 없기도 하지만. 엄마는 외계인.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주식인 라면도 예외일 수 없지. 뼛속까지 삼양라면 파였거든. 그 달짝지근한 햄맛이 없으면 뭔가 아쉬웠어. 그런데 점점 다른 라면을 찾게 되는 거야. 스낵면, 진라면 순한맛! 약간 흐리멍덩하다고 생각했던 라면들이 이젠 입맛에 맞아.
언제부터였을까. 피카츄 돈가스를 맛있게 먹을 수 없게 된 건. 군대에서 돌렸던 냉동도 이젠 뱉어버리겠지? 고기는 참기름이 아니라 설탕과 케첩에 찍어먹던 젊은 날이여 안녕. 흑흑. 이젠 포도당이며 단백질이 필요 없는 몸이 돼버린 걸까.
여기 아직 초딩 입맛 유지하는 젊은이 있습니까! 그 입맛 계속 유지하길!